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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은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남편이 아니라 텔레비전에서 흔히 봤던 슬픈 다큐멘터리의 줄거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어머니는 이야기를 끝마친 후에야 비로소 아기를 끌어안고 눈물을 찍어 냈다. 아기는 입을 오물거리며 가늘게 실눈을 뜬 채 태평하게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눈물을 마주하면서 남편이 측은하기보다 자신의 막막한 앞날에 대한 불안을 더 감당하기 힘들었다. 시어머니는 미안하다며 당분간 쓸 수 있는 생활비를 쥐여 주고 돌아갔다.
어미의 불안함을 함께 느꼈는지 아기의 투정은 점점 강도가 심해졌다. 어김없이 새벽 4시가 되면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선경의 신경을 아주 날카롭게 긁고 있었다. 남편은 선경이 모유 수유를 하러 방에 들어가 있거나, 그녀와 아기에게 시달리다 지쳐 잠든 시간에 슬며시 나와 화장실을 가고, 냉장고를 열었다. 여객선 침몰 사고는 많은 루머들이 쏟아져 나왔고, 진실 규명에 관한 공방이 한 달 넘게 이어졌다. 세상은 이 사건으로 인해 무기력증에 빠졌다는 기사가 보도되었고, 모든 매스컴에서는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슬픈 사연을 들려주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댔다.
선경은 인터넷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매일매일 남편의 휴대폰에 아기 사진을 찍어 보냈다. 너무 여리고 작아 만지면 부서질 것 같은 아기의 사진을 보내며 그의 슬픔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출산과 육아에 찌들어 퀭해진 눈을 하고 있는 자신의 사진도 보냈다. 한 집안의 가장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란 사실을 인지시켰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를 의지하고 있는 두 여자가 얼마나 나약한지 일러 주었다. 얼마나 애타게 그를 찾고 있는지 시도 때도 없이 각인시켜 주었다.
선경은 저절로 눈을 떴다. 늘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어야만 잠이 깨던 선경은 신기한 듯 시간을 보았다. 새벽 네 시를 몇 십 분이나 지나 있었다. 아주 가녀리게 들리던 아기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정적이 가져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웠다. 선경은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불을 켰다. 늘 침대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어야 할 아기가 없어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소스라치게 놀라 선경은 밖으로 뛰쳐나와 남편의 방문을 열었다. 온 집 안을 휘저어도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현관 입구에 남편의 운동화가 없어졌다. 수동으로 잠가야 하는 현관문 자물쇠가 모두 열려 있었다. 선경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남편은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건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새벽 네 시에. 선경은 선뜻 그를 찾아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지 못했다. 대신 현관 앞에 주저앉아 그를 기다렸다. 그녀는 도저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를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기가 울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아기는 빨개진 얼굴로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선경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꿈이었다. 베란다를 바라보자 스멀스멀 동이 터 오고 있었다. 거실의 시계는 이제 새벽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선경은 더 이상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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