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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늑대아이 Sep 14. 2023

울음소리_5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선정작 #단편소설





 어느 날, 선경은 남편으로부터 6시쯤 퇴근을 하게 될 거라는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함께 먹을 요리를 준비했다. 소원해진 분위기를 되찾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갈 우리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꾸려 보고 싶었다. 정말로 남편은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퇴근을 했다. 선경은 튀어나온 배를 뒤뚱거리며 분주히 저녁을 준비했다. 그녀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는 좁아터진 집 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잡다한 집안일을 도왔다. 남편은 시장했는지 아주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그는 설거지를 하고, 그녀는 함께 먹을 과일을 깎았다.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은 여전히 다정했다. 선경은 요즘 들어 계속 우울해지려는 기분을 거둬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아기에게 아빠의 목소리를 오랫동안 들려줘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이 설거지를 마무리하기도 전에 소파에 누워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더디게 가는 줄만 알았던 시간은 열 달은 꽉 채워 주었고 아기는 그녀의 배 속에서 세상에 나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첫아이라서 그런지 아기는 예정일보다 조금 늦게 태어났다. 남편의 쌍꺼풀 없이 큰 눈망울을 쏙 빼닮은 여자아이였다. 선경은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작은 손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남편을 제외한 처가와 시댁 식구들이 모두 모여 축하해 주었다. 남편은 아직 병원 근무가 끝나지 않았다며 퇴근하고 가겠다고 전화를 했다. 선경은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아기는 새벽 4시만 되면 늘 급작스레 분통을 터뜨렸다. 새까만 밤이 연속으로 펼쳐져 시간의 구분이 무의미한데도 아기의 울음소리는 새벽 4시만 되면 어김없이 귓가를 쟁쟁거렸다. 이런 식으로 아기가 선경의 기상을 알린 지 어언 두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기는 선경의 몰려오는 졸음에도 아랑곳 않고 더더욱 사정없이 보채며 어미의 손길을 찾아 헤맸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마냥 인상을 구기며 악을 쓰는 아기의 모습이 안쓰러워 선경은 냉큼 아기를 품에 안고 수유 티셔츠의 지퍼를 열었다. 아기는 신기하게도 자신의 먹을거리를 감각적으로 찾아내어 암팡지게 물었다. 그 순간 가슴에 얄팍한 통증이 찾아왔다 사라졌다. 아기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시작하자 방 안은 순식간에 고요로 뒤덮였다. 대신 젖을 빠는 소리만이 침착하고도 생생하게 들려왔다.  

  “이 새벽에 엄마 고생시키고 아주 효녀네, 우리 아가.”

 시간의 구분과 배려가 있을 리 없는 존재인 줄 알면서도 선경은 아기를 향해 사랑스러운 핀잔을 주었다. 순간 선경의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아기에게서 슬며시 미소 비슷한 것이 스쳤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 선경은 반쯤 감긴 눈으로 얼른 아기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선경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새벽 4시가 싫었다. 거실에서 남편이 버젓이 잠을 자고 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불안했다. 갑자기 누군가 불쑥 들어와 그녀와 아기를 해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저 잠이 부족해서 느끼는 기분이라고 치부하기엔 불쾌함이 매번 반복되었다. 새벽 네 시의 바깥세상 또한 아주 고약하고 무시무시한 일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을 것 같았다. 선경의 상상은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영화에서 봤던 잔인한 장면들이 지금 바깥에서 펼쳐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혹 그 영향이 현재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스며들어 단숨에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을 뒤엎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선경은 이 시간만큼은 더더욱 깊디깊은 잠에 빠져들고 싶었다. 아니, 빠져든 척이라도 하기 위해 매번 눈을 질끈 감고 쉽게 들지 못했다. 하지만 선경의 속을 알 리 없는 아기는 가장 깨어 있고 싶지 않은 시간에 그녀를 깨워 놓곤 늘 혼자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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