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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늑대아이 Sep 14. 2023

울음소리_6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선정작 #단편소설

 




 아기가 다시 칭얼거리며 젖을 빨기 시작한 시각은 오전 9시였다. 선경은 깜짝 놀라 잠을 깼다. 자기도 모르게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로 앉아 졸고 있었다. 졸음이라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굳게 닫힌 문밖에선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선경은 남편이 곯아떨어진 처자식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출근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아기는 스르르 잠에 빠졌다. 선경은 침대로 아기를 옮기고 뒤척이는 가슴을 몇 번 더 토닥였다. 굳게 닫힌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예상대로 잘 개켜진 남편의 이부자리가 보였다. 선경은 미역국이 그득 담긴 솥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리고 불을 켰다.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 주변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이제는 눈만 감으면 찾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이곳이 찬찬히 둘러보니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낯선 기분은 선경을 불안하게 했다. 그녀는 기분을 떨쳐 버리기 위해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출근 잘 했어? 맨날 한 집에 살면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보네요. 운전 조심해요.’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고 나니 스멀스멀 나른함이 밀려들었다. 선경은 어느새 식탁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사이 미역국이 담긴 솥은 성을 내며 굳게 닫힌 뚜껑을 정신없이 들썩거렸다.  




 선경은 남편의 얼굴이 보고 싶어 아기를 재우고 기다렸다. 그는 11시쯤 귀가했다. 아기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며 몇 번인가 볼을 만지작거리는가 싶더니 거실에 자리를 펴고 누웠다. 선경은 남편 뒤 소파에 앉아 연신 하품을 하며 계속 눈물을 훔쳤다. 둘은 아무 말 없이 텔레비전을 보며 각자 피식거렸지만 웃음을 공유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연예인들의 질펀한 입담을 놓치지 않으려는지 남편은 오늘따라 점점 더 볼륨을 키웠다. 

  “아기 깨. 소리 좀 줄여.”  

 그날 저녁 선경이 남편에게 했던 첫 마디였다. 남편은 볼륨을 줄이는 대신 채널을 돌렸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데 뉴스에서 지하철 화재 사고 10주기를 맞아 각종 행사가 열릴 거라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벌써 10년이나 됐어? 세월 빠르네.”

 걷어 온 빨래를 개며 그녀가 말했다. 선경은 남편이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지만 딴 생각에 빠진 걸 알 수 있었다. 빨래를 다 개고 난 선경은 소파에 앉아 남편의 뒤통수만 따분하게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눕자마자 온몸으로 피로들이 몰려들었다. 그녀는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아기는 어김없이 새벽 4시에 깼다가 한 시간쯤 칭얼거리고 잠이 들면 그제야 선경도 간신히 눈을 붙이곤 했다. 몇 달 내내 거의 매일이 그런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요란해 선경은 깜짝 놀라 일어났다. 다행히 아기는 깨지 않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귀를 쫑긋 세우자 텔레비전 소리였다. 아나운서로 들리는 목소리가 긴급하게 무언가를 보도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남편의 출근 시간은 이미 넘어서 있었다. 선경은 아기가 깰 것에 대해 전혀 아랑곳 않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얌전히 출근을 하면 되지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문을 열고 나갔다. 하지만 남편은 출근 준비는커녕 파자마 차림 그대로 누워 뉴스만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노려보고 있었다. 

  “출근 안 해?”

 남편은 선경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듯 꼼짝하지 않고 눈만 껌뻑거리며 텔레비전을 보았다. 화를 내기엔 남편의 표정이 너무 심각하고 진지해 보여 선경도 텔레비전을 내용을 주시했다. 화면에는 긴급 속보라는 선명한 글씨와 함께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하고 있는 여객선의 영상이 보였다. 아나운서는 격앙된 목소리와는 대조적으로 배 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면 아마 정지 화면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여객선은 아주 서서히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선경은 남편과 텔레비전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오늘 회사 쉬는 날이야?”

 남편의 이상 행동이 시작된 첫날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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