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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될 사람은 혼자 함을 짊어지고 선경의 집에 도착했다. 함 속에는 함께 장만한 예복과 패물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가 도착하기도 전에 술에 취해 있던 선경의 아버지는 곧 자신의 딸을 데려갈 사위를 향해 계속해서 나쁜 놈이라며 술을 권했다. 선경의 남편 될 사람은 나쁜 놈 소리가 아버지 입에서 나올 때마다 해맑게 웃었다. 아버지의 행동에 곤란해진 선경의 가족들은 그가 웃을 때마다 따라 웃으며 아버지의 입을 틀어막으려 애썼다. 그는 애지중지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로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거나 애틋한 말 한마디 꺼내 보지 못하고 곧장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가족들은 이제야 한숨 돌리며 말 없는 그를 향해 몇 마디씩 말을 거는가 싶더니 곧 상을 물렸다. 꽤 요란할 줄 알았던 함 맞이는 다소 심심하게 마무리되었다. 묵묵히 설거지할 접시를 나르는 그를 보면서 선경은 참 자상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은 어떻게 끝이 났는 줄도 모르게 끝났다. 수많은 인파가 그녀의 결혼을 축하하며 인사를 건넸지만 누구의 얼굴도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제대로 맞춰 보지 않은 신부 입장은 선경의 드레스에 걸려 고꾸라진 아버지 덕분에 제대로 웃음거리가 되었고, 돈으로 구입한 주례사 어르신은 자꾸만 신랑의 이름을 엉뚱하게 불러 하객들을 당황케 했다. 선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되기 위해 웃고 또 웃는 바람에 입에 경련이 일기도 했다. 두 사람은 부모님과 등을 토닥이며 부둥켜안고 눈물을 찍어 내기도 했다. 너무 흔해빠진 광경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자신이 주인공이 되고 보니 모든 의식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게 되고, 모든 표정 하나하나가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폐백은 생략하자는 시부모님의 말씀에 따라 부부가 된 두 사람은 일찌감치 옷을 갈아입고 내려와 피로연장을 돌아다니며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선경은 순식간에 허기가 몰려왔고, 오늘 하루를 위해 참아 왔던 식욕을 마음껏 드러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여느 부부들처럼 가장 핫(Hot) 하다는 곳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선경은 도착하자마자 먹었던 음식을 모두 뱉어 냈다. 드디어 입덧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잠을 자기 위해 여행을 떠난 사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남편에겐 정말 미안했지만 선경 자신도 밀려오는 잠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자 다음 날부터 남편은 잡혀 있던 관광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종일 선경과 함께 호텔에 머물렀다. 선경은 남편에게 훗날 아이가 태어나면 이 우스운 상황을 꼭 얘기해 줘야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다감하게 웃어주었다. 선경은 아쉽다고 느꼈던 자신들의 신혼여행이 다시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두 사람의 일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되풀이되었다. 남편은 밤 10시가 다 되어야 귀가를 했고, 토요일에도 오후 4시까지 근무를 했다. 일요일마저 격주로 출근을 해 오전 근무를 해야만 했다. 선경은 이전에는 늘 넘치게만 보이던 남편의 월급이 터무니없이 모자라게 느껴졌다. 남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매우 규칙적으로 일상생활을 지켜 나갔다. 남편의 생활은 자로 잰 것처럼 명확하고 깔끔했다. 알람이 울리면 머리가 그 소리를 인지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그를 깨웠다. 선경이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거나 일찍 잠이 들어 버리면 일주일 내내 남편의 얼굴을 보지 못하기도 했다. 잠결에 일어나 그의 잠든 얼굴을 보는 게 전부였다. 그가 출근을 하지 않는 일요일에도 둘만의 시간은 가질 기회는 그다지 없었다. 왜냐하면 시부모님의 부름을 받게 되거나, 친정 식구들이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홀몸이 아닌 선경을 위해 양쪽 부모들은 물심양면으로 아이의 출산 준비를 도와주었다. 하지만 선경의 남편은 점점 부풀어 오르는 그녀의 배에 가끔 손을 올려 보는 것 이외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밤이 돼서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저 요즘 유행하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며 웃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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