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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늑대아이 Sep 14. 2023

울음소리_3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선정작 #단편소설





 선경은 딱히 민망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결혼식을 코앞에 두고 임신을 하게 됐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워낙 자주 체하는 체질이긴 했지만 거북한 느낌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선경은 약국에 들러 소화제를 사 먹는 대신 임신 테스트기를 두 개 샀다. 이튿날 새벽, 선경은 사용 설명서에 적힌 대로 신속 정확하게 테스트를 마쳤다. 두 개의 임신 테스트기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던 두 줄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선경은 둘이 뭔가에 홀린 듯 모텔을 찾았던 그날 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관계를 가졌지만 매번 그때만큼 서로에게 충만함을 느끼지는 못했었다. 선경은 화장실에 걸터앉아 그때 자신이 느꼈던 기분을 하나하나씩 되짚어 나갔다. 때론 부드럽고 때론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감촉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이성을 잃고 몸 구석구석을 맹렬히 파고들던 모습들까지. 그때 그 충만함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자 선경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선경은 깜짝 놀라 테스트기를 얼른 챙겨 욕실을 나왔다. 그녀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밖에서 누군가 욕실로 들어가는 인기척이 들려왔다. 

 막상 자리를 마련해 놓고 보니 남편 될 사람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는 게 괜스레 망설여졌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확신이 서기도 전에 사랑을 나눴기 때문이다. 물론 그로 인해 훨씬 가까워졌고 결혼을 확신하게 됐지만 임신까지 하고 보니 자신이 괜스레 헤픈 여자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남자가 달가워하지 않을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자꾸만 부정적인 생각이 엄습하자 선경은 그를 앞에 두고도 식사가 다 끝날 때까지 임신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남편은 안절부절못하는 그녀를 보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 대신 두 줄이 명확하게 그어져 있는 임신 테스트기를 보여 주었다. 남자가 그것의 의미를 읽고 상황을 파악하는 동안 선경은 딴청을 피웠다. 그녀가 기대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가 조용히 웃고 있었다. 아니 미소 짓고 있었다. 선경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울기 시작했다. 남편 될 사람은 눈물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일 줄 몰랐다고 선경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두 사람은 선경의 배가 불러오기 전에 서둘러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 

 신혼살림은 남편 될 사람의 집에서 마련해 주었다. 그의 부모는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 몇 년 전 회사 근처에 있는 20평대 아파트를 장만해 두었다고 했다. 융자 하나 없는 깨끗한 남자 명의의 집이었다. 전셋집을 전전했던 선경의 부모는 딸자식이 자신의 명의로 된 아파트가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는 사실을 꽤나 기뻐했다. 욕실에 반신욕을 할 만한 욕조가 없다는 사실이 좀 아쉽긴 했지만 선경의 눈에는 나무랄 데 없는 구조였다. 그녀는 영원히 그 집을 벗어나지 않을 사람처럼 꼼꼼하게 도배지와 장판을 고르고, 그에 어울릴 만한 가구들을 세심하게 찾아다녔다. 부엌의 수도꼭지는 물론 방문 고리, 현관 전구까지 손수 하나하나 바꿔 나갔다. 

 선경은 임신을 핑계로 학원 일을 관두고 그녀가 바라던 대로 집에서 살림을 하기로 결정했다. 원장은 겹경사라며 이맘때 가장 몸조리를 잘해야 한다고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동료 강사들에게 일일이 청첩장을 전달했고 축하 인사를 받았다. 주말 수업이 있는 강사들은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아쉽다며 미리 축의금을 건네기도 했다. 강사들 중에는 그녀의 남편 될 사람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그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남편의 이목구비를 들먹이며 훈남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녀는 졸지에 두 살이나 어리고 직업도 탄탄하며 제 소유의 아파트까지 갖추고 있는 훈남을 남편으로 맞이하는 능력 좋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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