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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늑대아이 Sep 14. 2023

울음소리_2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선정작

 




 선경의 남편 될 사람은 수도권 대학의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한 뒤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재활치료사로 일해 오고 있다. 처음에는 대학 병원에서 일했다가 관절이나 척추 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이직을 했다. 한 병원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그가 좋아 찾아오는 환자들도 많았다. 노인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들은 선경의 남편 될 사람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꽤 깐깐하고 계산적인 원장도 그를 향한 신뢰를 아끼지 않았다. 한 번도 원장의 말에 토를 달거나 약삭빠르게 제 이익을 챙기려 하지도 않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잘 해내는 부하 직원을 내칠 상사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선경은 자신보다도 두 살이나 어린 그를 볼 때마다 말도 많고 쉬운 일만 골라 하는 친오빠를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비교하곤 했다. 선경은 그의 의젓하고 성숙한 어린 시절을 상상하면서 훗날 아이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아버지가 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경은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보습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녀는 영문과를 졸업한 후 각종 시험에 도전했지만 매번 흐지부지 끝을 맺었다. 시험공부를 관두고 취업 준비를 했지만 잘되지 않아 한참을 빈둥거렸다. 친구가 지금의 학원 일을 소개해 줬고 이제 겨우 3년을 채워 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선경은 그 짧은 와중에도 길게는 2년, 짧게는 한 달 정도 여러 학원을 전전했다. 원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제 발로 나오기도 했고, 학부모의 심기를 건드려 쫓겨나기도 했다. 아이들을 싫어하진 않았지만 가르치는 일이 선경에겐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그녀는 골드 미스로 불리며 전전긍긍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보다 결혼 후 남편의 벌이가 좋아 아이를 키우며 살림만 하는 친구들을 훨씬 부러워했다. 선경은 지금의 그를 떠올리며 어쩌면 자신도 부러운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남자의 직업에 대한 열정과 꾸준함이 그녀에게 많은 안정감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전혀 스쳐 간 기억이 없었다. 남편 될 사람은 선경이 근무하는 건물의 밥집에서 점심을 먹은 적도 있었다. 선경 역시 남편이 일하는 병원에 병문안을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선경은 왠지 모를 서운함이 느껴졌다. 자신은 몰라도 남편 될 사람만큼은 어디선가 봤을 선경의 모습에 한 번쯤 도취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욕심이 들었다. 운명처럼 서로 마주친 순간 첫눈에 반하지는 못할지라도 흔해 빠진 커피숍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자신을 눈여겨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괜한 것까지 트집을 잡는 선경이 귀엽게 보였는지 계속 웃기만 하던 남자는 미리 준비해 둔 커플링을 꺼내 그녀의 손에 끼워 주었다. 예고도 없던 이벤트에 선경은 어쩔 줄 모르며 눈물을 흘렸다. 한 남자에게 이미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라며 투덜거린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곧 남편이 될 사람은 선경에게 멋대가리 없는 프러포즈가 미안하다며 살아가면서 더욱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다. 선경은 이토록 황홀한 순간이 자신의 몫이라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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