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정세이스트 Mar 19. 2024

#3 아이를 향한 마음을 그러모아

매일 아침을 필사로 열고 있다. 필사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2년이 다 되어간다. 영문 책과 시집, 그리고 최근에는 팝송 필사까지 시작했다. 온전히 필사에만 집중하는 시간. 만년필의 잉크가 종이에서 아름답게 번져나가는 것을 보는 시간. 30분 남짓한 이 시간 덕택에 긴 하루도 무탈하게 보낼 수 있는 듯하다. 


최근 이 시간에 새로운 작업을 추가했다. 바로 '태교 일기' 쓰기. 아이를 향한 마음을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하루에 딱 5분, 내 아이를 위한 마음을 글로 남기는 시간. 때로는 오늘의 기분을 적기도 하고, 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기도 하고, 입덧이 심한 날에는 애교 섞인 원망을 남기기도 한다. 기분이 아주 들뜬 날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해주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기록하기도 한다. 


하루에 단 5분이지만, 오롯이 아이를 위해 할애하는 소중한 시간. 불과 5~6줄뿐이지만, 이 작은 기록들이 모이고 모여 방대해지고, 한 권의 책처럼 완성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매일 아침, 각종 유혹을 이겨내고 부지런히 기록한 일기들. 언젠가 아이가 글을 읽을 줄 아는 나이가 되어 일기장을 펼쳐봤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한 글자 한 글자 읽고, 또 곱씹으며 엄마의 사랑을 헤아려줄까? 아니면 키득키득 웃기 바쁠까. 


어제까지만 해도 지독했던 입덧이 오늘은 의아할 정도로 잔잔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금의 울렁임도 없다. 덕분에 모처럼 점심을 거하게 먹었다. 그동안 입에도 대지 못했던 까르보나라까지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비록 잠시 잠깐의 행복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렇게라도 영양을 보충하고, 기분 전환까지 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남편에게 모처럼 입덧이 없다는 소식을 전했다. 점심을 배부르게 먹은 뒤, 한껏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리고 있다고 말하니 그는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다. 


"꼬물아! 엄마 안 힘들게 계속 얌전히 있어~" 


아이를 향한 남편의 작은 부탁에 미소가 번졌다. 임신한 아내를 걱정하는 마음. 잠시라도 아내가 입덧에서 벗어나 편했으면 하는 염원. 남편의 다정함과 사랑을 가득 안고 다시 오늘의 남은 과업들을 처리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2 헤어나올 수 없는 그것 '입덧'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