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삼재인 24년을 어떻게 단단히 대비할 것인가.
#올해 마지막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다. 새해를 맞이하며 읽기엔 꽤 패배주의적인 책이긴 한데 근 한 달간 이 책의 제목이 마음을 떠도는 덴 이유가 있겠지 싶어 마지막 책으로 잡았다. 솔직히 인간실격하면... 인스타그램의 감성컷에서나 보던 제목, 에곤쉴레 특유의 허망함이 가득한 남자의 표정. 허무를 허세로 치장한 책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꽤 쉬웠고 마음이 쓰였다. 올해의 우울감을 머금고 읽어서일까?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의 불편하게 뛰는 심장보다 차분하게 읽을 수 있었다. 23년의 나는 열정보단 의무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그 감정에서 기인한 무력함이 올해는 나를 조금은 억지로 밝게 만들었다. 인간의 허무주의란 생각보다 가깝고 어렵지 않은 것일지도.
#올해는, 나의 역할과 소임에 대한 자각을 시작한 해였다. 작년만 해도 '왜 사람들을 나의 일을 잘 모를까? 너 T발C니?' 라는 불만이 가득했던 해였다. 그런데 올해는 'T들의 논리에 소화가 잘 되도록 기름을 발라주는 F가 되자'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실제로 작년보다 나를 찾아주고, 나의 생각을 들어주고, 경쳥해주는 회사들이 많아졌다. 내가 뭘 더 잘해서가 아니라 창업자가 처한 작금의 환경이라면... 가장 적은 시간, 적은 에너지, 괜찮은 결과를 얻게 돕는 게 필요하다. 문제가 터지기 전에 찾아오시지 그랬어요,가 아니라 문제가 터져도 어떻게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것인가.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하지 말고 '저 사람의 시계침은 나와 다르게 간다'라고 생각하면 언젠가 돌아와 의견을 묻는다. 결국 시간이 답이다. 그만큼 내 주변 사람들과의 라뽀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Personality hire'라는 단어를 보았다. 쉽게 말하면 분위기 해결사 같은 건데 회사에서 혼자 막 바쁘고, 여기저기 전화받고, 책상에 앉는 시간보단 주변 동료들과 말하는 시간이 더 많은데 어려운 질문과 답변으 꽤나 잘 받아오는 그런 역할. 회사생활에 윤활유를 치는 필요한 소프트스킬을 가진 사람이라고. 제법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고 자위해야만 해.
#연말 파트너들과 올해의 성과와 소회를 나눴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도 감사한 샐러리를 제안해주셨다. 신은 나의 말로에 어떤 불행을 주려고 하는지, 이런 회사가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훌륭하고 좋은 동료와 일을 주셨나 싶을 만큼 완벽한 곳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건... 감사한 마음과 달리 더이상 놀라지 않는 나의 모습이었다. 작년 이맘때 연봉협상때만 해도 '제가요? 왜요? 이렇게나 많이요?' 를 연발하던 나였는데, 올해는 심장의 요동도 없이 덤덤했다. (내가 엄청 부자라는 말 절대 아니다. 나의 그릇은 아주 작음) 작년인가 제작년인가 회사 사람과 '나는 이정도만 벌고 살면 좋아, 그 보다 더 많이 바라지도 않구' 라는 얘길 나눈 적이 있다. 그 순간을 이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연말 피드백을 통해 깨닫았다. 돈이 걱정을 덜어줄 순 있지만, 완벽한 행복을 만들어줄 수 없다는 걸 아는 순간이 온 것이다. 정말, 돈은 완벽한 행복을 줄 수 없었어. 그런데 반대로, 지금의 벌이를 절반으로 줄이면서 내 열정이 동하는 커리어를 찾아 미련없이 떠날 수 있는가? 아니, 그러기엔 이미 손에 잡은 걸 놓을만큼 나는 용기있는 사람도 커리어에 대한 열의가 가득한 사람도 아니다. 현실에 발 붙이고 살며 이상을 그릴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
#새해부터 기고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주 유명한 신문사는 아니라 온라인으로 아무도 모르게 나가는 글이 되겠지만, 매번 만날 때마다 '글 쓰라니까'하고 제안해 준 기자의 마음이 고마워서라도 그리하기로 했다. 누군가 세 번씩이나 나에게 같은 제안을 하긴 쉽지 않거든. 승낙엔 고마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속한 직장의 이름을 떼고, 나라는 사람만을 두고 보았을 때 쌓아둔 콘텐츠가 필요한 시기가 왔단 마음이 섰기 때문이다. 이 기고 해도 그 놀라울 정도로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을 것 안다. 아니면 은근히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안주거리를 던져줄 수도 있겠지? 아니 뭐, 될대로 되보라지. 사실 나의 밑천을 드러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승낙하기까진 꽤 많은 심호흡을 해야만 했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서 좋은 글귀, 데이터, 인용표현을 봐도 적절히 응용하고 버무려 내 것으로 소화하는 게 되게 힘든 사람이거든. 그래서 내 글은 오롯히 나의 생각과 나의 지식을 근간으로 써야만 하기에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나중에 포털에서 내 이름 석자 쳤을 때 등장할 글이 될텐데. 그런 밑천이 바로 드러날 글을 적는 게 맞나. 그래도 좀 더 나 자신의 매력도를 측정해보기로 했다. 안하면 모르니까.
#글을 쓰는 걸 미루고 싫어했다. 어렸을 때는 그래도 제법 글 쓰고, 꽤 빠르게 쓸 줄 알았는데. 글쓰기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만큼 배우고 공부해야한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나온 스마트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나의 논리에 항상 근거가 부족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더 말을 안하고 글을 안쓰고 더 생각이 꼬여 심장이 두근거리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 이슬아 작가의 책을 보며 '아우 뭐 죽기야 하겠어 해보자' 고 마음 먹게 됐다.
#이슬아 작가는 다작을 한다. 30살이 조금 넘은 나이에 수십권의 책을 냈고 많은 강단에 선다. 내가 나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사장이라 나는 이게 그녀가 겸손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이 어떻든 아주 용감하게 본인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거든.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완벽한 마감'은 없다. 마침표를 찍고 세상에 내 글을 내보이는 것이기에, 마침푤르 찍는 그 행위 자체가 아주 용감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작가의 서랍에 쓰다 만 글들이 가득 쌓여 있다. 이걸 누가 봐, 싶은 주저함 하나. 이건 무슨 말이야, 싶을 정도로 중구난방인 글 하나. 그런 글들이 쌓여 메모장과 서랍에 여기저기 흩뿌려져있다. 나중에 주워서 쓰려고 해도 그때 내가 어떤 생각으로 이런 메모를 해뒀는지를 기억하지 못해 결국 삭제되는 글의 조각들. 이제는 버리지 말고 살려볼 것이다.
#연말에 쉬면서 3권(프레임, 인간실격,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의 책을 읽고, 3개의 영화를 봤다. 이따가 오펜하이머도 볼 거니까 총 4개. 23년에 조금 잘한 건 그래도 한 달에 한 권의 책은 꾸준히 읽은 것. 읽은 책들을 또 다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희미하게 기억에 살아있는 문장들이 있다. 영화의 줄거리도. 그게 또 내년의 일하는 나의 먹거리가 되겠지. 내년은 올해보다 조금 더 닥치는대로 책을 읽고, 조금 덜 쇼츠에 빠지는 시간이 되길. 도파민 충전의 시간을 늦추는 방법을 찾을 것.
#23년은 용띠에게 눌삼재의 해였다. 눌삼재는 삼재의 두번째 해로, 삼재가 누워서 머무르는 때다. 삼재의 첫 해인 들삼재에 뿌려놓은 나의 행동과 말들이, 영향을 미치는 해이기도 하다. 22년은 막 이직해 자리 잡기 시작한 해였고, 말마따나 23년은 그때 뿌려둔 말과 행동들이 영향을 미쳤던 해였다. 그래서 여러모로 나의 한계를 자각한 해였다. 근데 또 '오... 근데 나 좀 통찰력 있을지도?' 라는 순간들이 발현될 때가 있었다. 역시 운세 이즈 사이언스. 조상님들의 빅데이터는 아주 근거가 있어... 그리고 24년은 삼재가 나가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날삼재의 해. 날삼재를 맞이하는 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24년은 '나를 남처럼, 남을 나처럼‘ 대하려고 한다. 진정한 지혜는 내가 나 자신의 행동을 설명하는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설명하는 마음의 습관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혜는 자기중심성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조금 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로 했다. 대단한 것들은 아니다. 예컨대 바쁜 와중에 울리는 전화벨에 감정을 싣어 전화받지 말기. 안된다고 단칼에 말하지 말고 '그래 저 사람은 이게 처음이니까', 처음의 자세로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거절에 직관이 아닌 명확한 근거를 담기.
올해의 숙제를 마치니 마음이 편해진다. 돌이켜보니 조금 고통스럽고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지만, 지나고 보면 나의 성장기였을 23년. 안녕!
#책리뷰 도 아니고 #회고 라기엔 애매한 #새해다짐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