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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Jun 20. 2022

없어서는 안될, 하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은

<안경>

안경잡이로 살게 되다


어린 시절, 안경을 쓴 친구를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투박한 뿔테 안경이 왜 그렇게 쿨해보였을까. 나도 안경을 끼고 싶어 부단히 노력했지만 나는 생각보다 눈이 나쁘지 않았고, 어린시절엔 안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쓰지 못했다고 하는 게 맞겠지.


처음 안경을 썼던 건 고등학교 때 였다. 잘 보였던 칠판이 점점 보이지 않았고, 영화관에 갔을 때 자막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안경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안경을 맞추었다. 호피무늬의 얇은 뿔테 안경이었다. 디자인이나 모양은 그닥 신경쓰지 않았다. 그 당시 내게 가장 중요했던 건 칠판의 판서가 잘 보이는지의 유무였다. 수업을 들을 땐 안경을 썼고, 엎드려 자기 위해서는 안경을 벗었다. 필요에 의해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첫 안경에 점차 익숙해져갔다.


대학에 입학한 후 콘택트 렌즈도 맞추었지만 여전히 제일 편한 건 안경이었다. 고등학교 때 썼던 얇은 호피무늬 뿔테 안경은 지나치게 고지식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안경을 맞추고 싶었다. 사실 굳이 새로운 안경을 맞출 필요는 없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이며 새 안경을 사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동그란 갈색 뿔테안경을 사게 되었다. 나의 두 번째 안경이었다. 지난 호피 뿔테 안경은 조금 각진 느낌이었는데, 이번 안경은 완전한 원형의 안경이다. 자칫하면 80년대 느낌이 나곤 했지만, 나는 그 안경이 좋았다. 촌스러운 그 느낌마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홋카이도 여행을 갔을 때 나는 그 안경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라멘을 먹을 때 안경에 김이 서리는 게 짜증나 안경을 내려놓고 먹었는데,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안경을 깜빡했던 것이다. 고작 10분사이에 내 안경은 완전히 사라졌다. メガネ(Megane)를 외치며 나의 안경을 찾았지만 라멘집에선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도대체 원형 뿔테안경을 누가 가져간 건지는 모르지만, 나는 내가 아꼈던 안경을 허무하게 잃어버리고 만다.


이후로도 두 번 더 안경을 맞추었다. 한 안경은 집에서 쓰는 용도로 맞췄다. 하도 막 다루어서 안경 알엔 기스가 여러번 났고, 안경테에도 상처가 수두룩하다. 하나는 회사에서 쓰는 안경이다. 모니터를 볼 때 인상을 찡그리는 걸 막기 위해 맞춘거라 회사 밖을 나오면 전혀 쓰지 않는다. 그 덕에 마치 새것처럼 아주 깔끔하다.





안경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들


그렇다 해도 안경을 쓰지는 않으려고요

하루 온종일 눈을 뜨면

당장 보이는 것만

보고 살기도 바쁜데


아이유, <안경>



아이유의 ‘안경’이라는 곡이 나왔을 때 나는 이토록 공감했던적이 없었다. 시끄러운 세상을 흐릿하게 보고싶을 때도 많았으니까. 


안경을 여러번 맞추고 그에 관한 기억들도 제법 많아졌다. 안경이 마치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 것만 같지만 사실 안경은 내게 있으면 좋고 없어서는 안될 계륵같은 존재다. 나는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안경을 잘 쓰지 않는다. 강의를 들어야 한다거나, 미팅이 있다거나, 영화를 봐야 한다거나, 아니면 정말로 보고싶은 세상이 있을 때, 안경을 쓴다. 콧잔등에 걸쳐있는 묵직한 느낌이 싫지만 렌즈 너머로 보는 또렷한 세상이 필요한 순간도 여럿 존재한다. 그럴 때, 나는 안경을 쓴다. 굳이 보고 싶지 않은 세상은 흐릿하게, 보고 싶은 세상은 또렷하게. 오로지 내 선택으로 나타나는 세상들이 존재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새로운 안경을 맞추고 싶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도 나는 선택적으로 세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흐릿하게 보고 싶은 건 흐릿하게, 또렷하게 보고 싶은 건 또렷하게. 모든 세상을 정직하게 바라봐야할 이유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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