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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굴러가는하루 Jan 18. 2024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고 싶어서

30대 백수의 러닝 도전기(1) : 계속 이렇게 살 순 없다!

2024년, 백수에게도 새해는 왔다. 지금 나는 퇴사한 지 3개월 정도 된 30대 초반이고 조그만 원룸에 혼자 살고 있다. 작년과 다름없이 엎드려 휴대폰 게임을 하던 새벽 2시의 어느 날, 문득 혼자 사는 사람이 백수가 되는 건 참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세와 관리비, 생활비처럼 경제적 문제그렇지만 일상이 불규칙을 넘어 무규칙 수준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다, 내 얘기다.


생각해보면 퇴사 전에는 직장을 나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루틴이었다. 지겹게 출퇴근을 반복하고 복잡한 업무에 머리를 싸매던 시절은 분명 힘들었지만, 견고할 만큼 규칙적인 삶이었다. 직장생활이라는 중요한 루틴을 무사히 마치고 집에 오면 뿌듯함과 만족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한 규칙성은 퇴사와 동시에 사라졌다. 하루하루를 받쳐주던 든든한 중심축이 쑥 빠져버린 것이다. 이제 나는 아무런 의무와 책임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출퇴근에 맞춰 가지런히 세팅해놓았던 일상을 이제는 마음껏 무너뜨려도 괜찮았다. 심지어 1인 가구여서 아무리 엉망으로 살아도 내게 잔소리를 할 사람이 없었다. 그야말로 자율성 100%의 세계.


퇴사 후 나는 정말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다. 평범한 날 일상은 대개 이렇다. 대충 오전 11시쯤 잠에서 깨지만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이부자리에서만 거의 1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다 누워 있는 게 지겨워지면 꾸물꾸물 일어나 방을 치우고 간단히 아점을 먹는다. 휴대폰 게임도 몇 판 하면 어느새 시간은 오후 2시. 그때부터는 활동적인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부랴부랴 산책을 나가고, 동네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가벼운 일기를 끄적거린다. 저녁 7시쯤에는 집에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고, 식사를 하고, 유튜브를 보고, 멍을 때리다가 씻고 새벽 2시에 잠든다. 루틴이나 계획, 규칙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말 그대로 '그냥 되는 대로'의 삶!


문제는 그런 식으로 사는 나를 스스로가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되는 대로 시간을 보내면 '잘 쉬었다, 정해진 것 없이 사니까 여유롭고 편안해'라는 생각보다 '아 이렇게 실속 없이 살아도 되나? 걱정된다'라는 찜찜함과 자책이 더 컸다.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었고, 알차게 사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며 자랑스러워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진 생활습관은 잘 바뀌지 않았다. 나에게 뿌듯하고픈 마음과 지금 당장 편한 것 사이에서는 늘 눈앞의 편안함이 승리했다. 그렇게 자유의 무서움을 깨달으며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의지가 필요하구나. 특히 혼자 사는 백수라면 더더욱.'


백수가 된 후 일상은 오롯이 나의 선택에 의해서만 굴러갔다. 몇 시에 잠들고 일어날지, 식사를 라면으로 때울지 간단하게라도 직접 만든 집밥을 먹을지, 설거지를 오늘 할지 내일로 미룰지 등등.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일들까지 모두가 내 의지에 따라 좌우됐다. 사실 다 알고 있었다. 지금의 하루하루가 불만족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실은 내 의지의 결과이고 내 책임이란 걸. 내가 좋아하는 나로 살고 싶다고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는 늘 게으르고 우유부단한 일상을 선택해왔단 걸. 


지금부터라도 내 하루에 좀더 좋은 루틴을 채워주고 싶었다. 앞으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지. 밥도 웬만하면 만들어 먹어야지. 이에 더하여 내가 나를 더 좋아하기 위해 무엇을 새로 해보면 좋을지도 생각해봤다. '나는 어떤 나를 좋아하지?' 난 '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달성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나'를 좋아한다.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는 나'도 좋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나'도 좋아한다. 해본 적은 없지만 시작만 한다면 '꾸준히 운동하는 나'도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 다양한 '나'를 고려해 1월에는 러닝을 시작했다. 달리기를 예찬하는 지인의 영향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커리어가 멈췄으니 몸이라도 부지런히 움직이겠단 마음이었다. 일단 주 3회 30분씩 가볍게 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혼자 하면 점점 흥미도 떨어지고 결국 흐지부지될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과 응원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러닝 모임에도 들어갔다.


나를  성장시키고 더 잘 살게 하고 싶다는 의지게으름이라는 관성과 싸울 , 삶이 조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믿는다. 지금의 사소한 선택들을 잘 모으고 모아 훗날 스스로를 좋아한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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