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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Dec 28. 2022

세 번의 소개팅과 세 번의 영화 그리고

올여름에는 세 번의 소개팅이 있었다. 어디서 소개팅이 그렇게 들어왔냐고 한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씨앗을 많이 뿌렸기 때문이다. 지인들에게 나의 현황을 알리고 지속적으로 그들 주변에 괜찮은 남자가 있는지 물으며 밑작업을 해둬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에는 좀 괜찮은 솔로만 보여도 ‘아! 내 친구! ㅇㅇ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들을 통해 구원받을 친구는 바로 나다.

그런데 문제는 소개팅은 꼭 한 번에 몰려온다는 것이다. 때는 7월이었다.



7월의 첫 번째 소개팅에서 착하고 성실한 것이 장점, 착하고 성실하기만 해서 단점인 남자를 만났다.

그와 만나고 하나 깨달은 게 있는데 '재미없으면 웃지 말자'다. 자꾸 웃으면 마음에 든 줄 안다. 할 말이 없을 때마다 빙긋 웃었더니 애프터신청이 왔다.

두 번째 만남에 함께 본 영화는 ‘탑건: 매버릭’. 멋지게 늙은 장년의 톰 크루즈와 화려한 비행장면, 청년들이 웃통을 시원하게 까고 땀 흘리는 해변씬까지 흠뻑 빠져서 보고 나왔는데 영화를 너무 열심히 봤던지 소개팅남과 대화하다가 졸 뻔했다.



두 번째 소개팅, 취향이 잘 맞을 거 같다고 주선자가 기대감을 왕창 불어넣었더랬다. 만나보니 좋아하는 게 비슷하긴 했는데 색깔이 정말 달랐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나는 독립영화, 그는 상업영화였달까. 친한 동료의 소개니까 두 번은 만나봐야지 싶었지만 그에게는 내가 까였다. 고마웠다.



세 번째 소개팅, 그는 내 친구 동천동불주먹의 회사 과장님이었다. 그는 헤어지기도 전에 다음 약속을 잡았다. 내가 ‘헤어질 결심’을 추천하며 두 번도 볼 수 있다고 했더니 두 번 째는 자신과 같이 보러 가자고 하는 게 아닌가.



영화도 사람도 두 번째가 더 좋았다. 나보다 더 얇은 손목에 자꾸 눈길이 갔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지 않나 싶었고, 나보다 몸무게도 덜 나갈 거 같지만 재보기 전엔 모르는 일이다 생각했다. 함께 있는 세 시간 중에 두 시간 정도는 나 혼자 떠드는 것 같았지만 잘 들어주는 쪽인가 보다 자기 최면을 걸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냐면 슬슬 포기하고 싶어 져서였다. 앞으로 몇 명을 더 만나도 비슷할 거 같았다. 더 괜찮은 남자가 있어도 이젠 궁금해할 여력이 없었다. 나를 예뻐해 주는 사람,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안정적인 사람을 따지면 이 사람이었다.



그리고 7월의 마지막 날. 소개팅도, 데이팅어플도 아니고 지난봄 독립 영화를 보러 가는 모임에서 만났던 연하남과의 약속이 있었다. 그날 보기로 한 영화는 ‘썸머, 필름을 타고’였다.

시간도 없고 체력도 없는데 뭔 영화냐 싶고, 얼굴도 잘 기억 안나는 사람과 보는 것도 귀찮아서 취소할 까 했는데 이미 한 번 취소한 전적이 있어서 귀찮음을 무릅쓰고 갔다. (이전에 취소한 영화는 헤어질 결심이었다. 혼자 봤다.)

솔직히 말하면 그의 인스타에 사진이 한 장 올라왔는데 웃는 얼굴이 예뻐서 덜 귀찮아졌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 사람이 이렇게 웃는다고!?' 당장 가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달까.



영화는 여름에 어울리는 청춘성장물로 영화를 사랑하는 청소년들이 나오는 이야기여서 귀여웠고, 같이 본 사람도 꽤나 귀여웠다. 내 브런치를 읽었다고, 정말 그만큼 만났냐고, 왜 한 명도 잘 되지 않았는지 물었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지를 남겨놓고 싶었나...? 보슬보슬 비가 오는 명동거리를 걸어서 헤어지는 길에 연하남이 물었다.



“누나는 주로 영화 혼자 보는 편이에요?”

“네. 재미없어할까 봐 신경 쓰여서요.”

“그럼 저랑 같이 봐요. 비상선언 재밌을 거 같던데.”

“언제 개봉인데요?”

“...다음 주?”



다음 주에 또 보자는 말인가?

핫한 연애프로그램 '환승연애'의 헝구가 '내일 봬요 누나'라는 명대사를 날리고 온 누나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이전에 나에게는 "다음 주에 봐요 누나"가 있었다.

이쯤에서 깨달음을 하나 더 얻고 가겠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다시 시작할 타이밍이다. 그리고 인연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나타난다. 세 번의 소개팅, 세 번의 영화 그리고 여름이었ㄷ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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