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고로 연락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상대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하염없이 궁금해하는 상태와 상황을 말한다.
자발적 연애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던 나는 6개월간 썸을 적어도 네 번은 탄 거 같다. 모든 썸이 연애로 이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7월에도 솔로였다. 정확히 말하면 다섯 살 연상의 소개남과 썸씽을 끝내고 연애인 데뷔를 앞두고 있던 상황. 그때, 다음 주에 또 보자는 연하남을 만났다.
연하, 동갑, 연상 중에 고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연상을 고르는 오빠충이었기에 연하남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짜식 좀 귀엽네'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하남과도 다섯 살 차이였다.
좀 귀여운 연하남은 내가 밤길을 걸으면 무섭지 않으냐며 전화를 걸어왔고, 보고 싶었던 영화를 랜선 단관으로 함께 봤다. 같은 드라마를 보며 수다 떨었고, 시시때때로 내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를 언급하며 “얘들아 내 말 좀 들어봐. 얘 이거 뭐니?” 자주 물었다. 썸이었다.
이전의 썸을 돌이켜보면 감정의 온도와 속도가 달라서 자주 어긋났다. 너무 뜨거웠거나, 너무 더뎠다. 자꾸 어긋났기에 연애로 이어지지 못하고 멈춰 섰다. 노력할수록 망했다.
나는 겁이 많았고,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 어색해서 낯을 가렸다. 아마 상대는 얘가 왜 이러나 싶었을 거다. 망한 썸만 타던 때의 나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제목은 love dive다.
[제목: love dive]
사랑에 빠지고 싶다고 생각할 때는 사랑에 빠질 수가 없나 보다. 풀장 앞에서 팔을 앞뒤로 크게 흔들며 곧장 뛰어내릴 것 같은 사람, 그러나 그 자세 그대로 준비운동만 열심히 하는 사람처럼. 심장의 준비. 몸의 온도를 올릴 것. 빠지는 순간, 감각이 날뛰고 정신이 혼미하다가 곧 적응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아직은 무섭다. 헛둘헛둘. 뛰어들지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나도 이젠 알 수가 없다.
나도 나를 알 수가 없었으니 이전의 썸은 괴로움이 8할이었다. 상대의 마음이 어디쯤인지 궁금해서 애가 타고, 노력해야 해서 괴로웠다. 500일의 썸머를 볼 때처럼 톰이었다가, 썸머였다가 했다.
그러나 이번 썸은 괴로움보다는 간지러움이었다. 실없이 웃어댔다. 연하남이 어떤 마음으로 자꾸 연락을 해대는지 알쏭달쏭해도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될 인연은 어떻게든 되고야 만다는 걸 아니까.
장기솔로인이 썸을 타게 되면 알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은 연애 면역력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썸의 묘미인 잡힐 듯 안 잡힐 듯, 알듯 말 듯, 안달이 나는 상황 자체를 견디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솔로인의 세계에서는 솔로와 비솔로라는 이분법만 존재했지 썸과 연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몇 번의 망한 썸을 겪고 나서 알았다. 썸이 끝난 건 마음이 거기까지였기 때문이었다는 걸. 썸에서 연애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한방이 필요했다.
"자 여기서부터는 연애, 연애 구간입니다."
썸의 종지부를 찍어줘야 한다.
몽글몽글하고 간지러운 상태가 싫지는 않았는데 그보다 애매한 걸 못 참는 솔로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해서 연하남을 만나러 가기 전에 굳게 다짐했다. 뭐가 됐건 종지부를 찍고 와야겠다고. 나에겐 연상의 소개남도 있었으니까. 노선을 확실하게 해야 할 것 아닌가.
저녁에 만나 술도 한 잔 하는 바람에 내 입에서 멋대로 나오는 말을 막을 수도 없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자꾸 연락하는 거 그린라이트인가?"
하필 전 날 마녀사냥 2를 봐서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연하남에게 뒤이어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나 내일 소개팅남 만나러 가야 하는데 가? 말아?"
애매한 썸을 끝내고 싶다면 확실한 한 마디, 자신감,
아니면 말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연애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