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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Sep 01. 2023

연애가 시작됐다

 솔로이던 7년 동안 나는 누굴 사랑할 여유가 없었다. 3포 세대, 5포 세대라며 자꾸 무언갈 포기하는 세대에 나도 끼어 있었다. 삶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 오랜 시간 절절히 짝사랑한 상대는 나였다. 사는 게 빚이라 성실한 채무자처럼 살았다.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 나를 갉아먹어도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큰소리 뻥뻥 친 부모님께 죄송해서 돌아갈 수 없었고, 매달 돌아오는 학자금 상환 걱정에 회사를 다니면서도 주말에는 알바하던 때도 있었다. 불안했고 방황했고 꾸역꾸역 살아내는 동안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서 아팠다.


  돌이켜보니 왜 그렇게 아등바등했는지. 그래도 그 시절을 겪고 나서야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면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예전이었으면 호들갑이었을 일에도 이젠 제법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꽤 마음에 든다. 넘어져도 완전히 쓰러지지는 않는다. 저질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다니고, 아침마다 영양제를 털어먹고, 힘들 땐 실컷 울고 일어나 고기 앞으로 스스로를 데려다 놓을 수도 있게 됐다. 혼자서도 나를 잘 돌볼 수 있을 때, 연애는 이럴 때 하는 거라고 그러던데. 그렇게 솔로 다이어리가 시작됐다.



 빈 연애 공백을 채우느라 작년은 쉴 새 없이 바빴다.

‘연애! 될 때까지!’란 표어를 가슴팍에 품고 썸의 굴레에 스스로 갇혀 열 명 넘게 만날 줄은 나도 몰랐다. 무한 썸을 표방하는 연애 프로그램 하트시그널에서도 나처럼 썸을 타면 욕먹을 테다.


"유교걸도 탈피하고, 마음 가는 대로 살 거야~ 아무나 막 사랑할 거야~!"


 오랫동안 연애를 안(못) 한 게 흠은 아닌데 흠같이 바라볼까 봐 쿨하게 행동하기로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가벼운 만남에도 마음을 다쳤고, 솔직한 게 겁이 나서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기도 했다. 그때마다 하나씩 썼다. 망한 연애에 대한 반성문이자 고찰로 시작했지만, 성장이야기이자 성공담으로 남겨보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성공은 모르겠고 성장은 한 것 같다. 마음이 들킬까 봐 방구석에서 끙끙 앓던 시절을 지나왔고 서툴게 다루던 감정을 잘 매만질 수 있게 됐다.



 연애를 시작하고 족저근막염에 걸렸다. 좋아하는 삼청동을 두 바퀴씩 돌고, 온갖 맛집과 최신 영화, 남자친구가 생기면 하고 싶었던 일 100가지 기타 등등을 섭렵하느라 주말마다 기어나갔더니 글 쓰는 일에도 소홀했다. 연애만 시작하면 소재도 팍팍 떠오르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로맨스도 술술 써질 줄 알았건만 내가 글을 쓰게 된 게 혹시 시간이 많아서는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 다행히 이젠 일주일에 한 번만 만난다.


 어렵게 시작한 연애는 순탄하지도 않다. 내 앞에 펼쳐진 길은 탄탄대로 고속도로가 아니라 비포장도로 연애다. 빨리 달릴 수도 없고 덜그럭거리며 간다. 연하 애인과의 연애란. 나는 갖가지로 이별하는 경우의 수를 떠올리다 종종 울곤 한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그래서 더 무궁무진한 것. 연애의 결말이 결혼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우리는 이대로 해피엔딩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중요한 건 혼자보다는 둘이 보는 세상이 충만하다는 거다. 애인은 다른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나와 다른 연인이 머리로 이해가 안 되면 마음으로 품고, 그러다 마음이 자꾸 넓어지는 바람에 이전과는 다른 너비로 세상을 대하게 된다.

 세상과 타인에게 기대하지 않으려는 나와는 달리 기대가 취미이고 긍정이 습관인 애인에게서 기대하는 법과 긍정하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무뎌진 감성이 다시 말랑해지는 기분. 나는 또 다른 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까 싶어 고민하다가 마지막 글을 올려봅니다. 이후에는 비포장도로 연애에 대해 써볼까 하고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거쳐 꽤 많은 글을 발행했는데 비자발적 솔로 다이어리가 지금까지 써왔던 에세이 중에서 가장 주제가 뚜렷하고 임팩트 있었던지 많이 읽어주셨어요. 감사합니다.

 쓰고 싶은 글과 팔리는 글 사이에서 고민하던 차에 솔로 다이어리를 쓰면서 깨닫는 점이 많았는데 드라마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좋은 거 같습니다. 계속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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