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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걷는 사람들 May 20. 2019

사실이 사실이 아닌 이유

#17 [민주경희 기고글-2019년 4월]

아래의 글은 경희대학교 총 민주동문회 동문회보 '민주경희'에 2019년 4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처음 학부 때는 사학을 전공했지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사회심리학 전공)을 졸업하고 10년 넘게 그와 관련된 일을 해왔네요. 경희대 총 민주동문회 사무국에서 제게 '심리학으로 바라본 세상'이라는 주제로 글을 써달라 말씀해주셔서 2017년 11월부터 2019년 4월인 현재까지 매달 기고하는 중입니다. 이 글은 원고에서 약간 수정을 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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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각해서 이민까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을부터 시작된 미세먼지의 공포는 겨울을 지나 봄이 돼도 여전합니다. 미세먼지가 심한 어느 겨울 아침, 제 아내는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고 집을 나섭니다. 등원하는 딸아이에게도 마스크를 쓸 것을 신신당부하고, 제게도 꼭 마스크를 쓰라고 얘기를 합니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서 ‘잠시라도 마스크를 벗으면 입안이 까끌까끌하다’면서 요새 들어 미세먼지가 점점 더 심해진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사실은 10년 전에는 더 심했어”라고 웃으면서 말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의아한 듯이 저를 쳐다봅니다. ‘정말 그런 것인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입니다. 

 

위의 도표를 보면, 미세먼지 농도는 현재 측정기준(PM10, 10㎛)으로 1995년부터 측정되어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현저하게 감소했고, 오히려 지금보다는 2001~2010년이 훨씬 더 심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아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10년 전보다 요새 미세먼지가 더 심하다고 느낍니다. 분명히 통계상으로 보이는 수치는 감소했음에도 왜 최근에 미세먼지가 더 심하다고 느낄까요? 


심리학이 밝혀낸 인간의 사고특성 중 하나는 인간이 인지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빠르고 손쉽게 처리하는 휴리스틱(heuritics)이라는 인지적 기술을 사용합니다. 몇 가지 휴리스틱이 있지만,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설명하기에 적합한 휴리스틱은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le heuristic)입니다. 가용성 휴리스틱이란 어떤 사실이 더 쉽게 떠오를 경우, 그러한 예들이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가용성 휴리스틱은 원래 생존과 적응에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위험과 관련된 가용성 휴리스틱의 사용은 경각심이나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예방이나 대책을 마련하게끔 하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가용성 휴리스틱은 실제로 미세먼지가 꾸준히 감소했음에도(사실, fact) 사람들은 점점 더 심해진다고 느낀다는 현상(인지적 판단)을 잘 설명해줍니다. 다시 말해서 실제 미세먼지가 감소 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서 ‘중국발 미세먼지, 탈원전의 결과’니 하면서 워낙 빈번하게 보도되고 노출되다 보니, 점점 더 심해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실제로 비행기 사고는 자동차로 인한 사고보다 훨씬 덜 발생하는 반면, 사람들은 그에 대한 위험을 훨씬 더 높게 판단하며, 더 자주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비행기를 탔을 때보다 공항까지 운전해서 가는 동안 자동차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또 다른 최근의 한 예로, ‘일부’ 연예인들의 마약사건과 성접대로 시작한 한 사건이 권력형 비리로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연예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또한 강해졌습니다. 마치 모든 연예인들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 성범죄가 가장 많은 전문직은 연예인일까요? 

2010년부터 5년간의 경찰청 통계자료에 위하면 성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전문직은 종교인(442건)이며, 2위는 의사(371건), 3위가 연예인 및 예술인(212건)의 순이었습니다. 전문직의 범위, 신고되는 범죄의 건수, 범죄율 등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하는 통계이지만 범죄의 빈도로만 본 사실은 종교인들이 가장 성범죄를 많이 일으킨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빠른 시간과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가용성 휴리스틱을 사용합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프레임들과 언론보도는 가용성 휴리스틱을 자주 사용하게끔 하는 적합한 도구들이기도 합니다. 흔히 'OO프레임'을 만들어 자주 노출을 시키게 되면 대중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프레임을 받아들여 더 쉽고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그런 휴리스틱에 휘둘리고 조종당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그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객관적인 정보를 찾고, 적합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보다는 가용성 휴리스틱은 조금 더 효율성을 고려한 적합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인지적 구두쇠임을 자각하고, ‘이미지’나 ‘허상’이 아닌 ‘사실’을 들여다 봄으로써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료출처] 

국립환경과학원

경찰청 범죄 통계(2010~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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