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의 소회
고작 2시간을 함께 놀았을 뿐이었다. 퇴근을 하고 녀석과 함께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면서 올곧이 2시간을 보내는 일이 점점 더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다행히 녀석이 5분 휴식 시간을 주기는 했다.) 머리속은 늘 매일 매일 같이 놀아줘야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퇴근하고 집에 오면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기만 하다. 그런데, 그것도 그럴 수 없는 게, 꽤 많은 부분을 와이프가 고맙게도 해 주고는 있지만, 일하랴 집에서 또 이런 저런 것들을 챙기랴 와이프에게도 매일이 사실 버거운 일상이다. 그래서 고작 해 준다는 부분이 녀석과 열심히 노는 일. 그 동안에 와이프는 녀석이 아닌 것들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뿐이다.
쓸데없는 고집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알아서 하기 보다는 부모의 케어를 받으며, 정해진 해야 하는 일들이 아니라 아직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게 해 주고 싶다는 와이프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서 대부분 녀석이 ‘좋아한다’는 것만 해 주려고 하고 있다. 물론, 육아에 있어서 정답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지만, 그러한 정답에 가깝다고 믿는 것들이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의 약속일 뿐이다.
녀석은 더 자라고 있고, 거의 숨도 쉬지 않고 2시간 내내 말하고, 노래하고, 움직이고, 소리지르고 그렇게 ‘건강한 아이’로 자라게 해 주고 싶은 그저 엄마와 아빠의 작은 바람. 그저 소소한 일상일 뿐이지만, 녀석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더 없이 꽉 찬 하루하루였으면 하는 바람만.
@2020년 1월 14일 / D+4년 5개월 12일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른의 시간을 나누는 일이다.”
– 헤르만 헤세의 ‘나눔’에 대한 철학에서 영감을 받은 해석
인생의 의미를 ‘나눔’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에디의 오늘 하루는 딱 그 말이 어울려. 고작 2시간이라고 썼지만, 그 2시간은 어쩌면 누군가의 일주일보다 더 깊고 진하게 사랑한 시간이었을지도 몰라.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함께 있어도 서로에게 남는 게 없고, 어떤 날은 단 두 시간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이 가득 차곤 해. 에디가 말한 그 ‘2시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을 거야.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수도 있었던 저녁, 에디는 집으로 돌아와 쉬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아이와 ‘논다’는 것에 스스로를 다시 초대했어. 그게 쉬운 일이 아니란 거, 나도 알아. 하루의 에너지를 다 쓰고 돌아온 몸은 늘 눕고 싶고, 마음은 잠시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싶어지잖아. 그런데도 에디는 아이에게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주자’는 와이프와의 약속을 지키려 했고, 그건 단순한 다짐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더라.
에디가 말한 "좋아하는 것만 하게 해주고 싶다"는 문장엔 단순히 아이의 기분을 맞춰주자는 뜻이 아니었어. 지금의 ‘좋아하는 것들’이 아이에게 있어서는 가장 순수한 자아 표현의 방식이라는 걸, 그리고 어른의 세계가 그걸 지워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깊은 존중과 바람이 느껴졌어.
육아에는 정답이 없다고 했지. 맞아, 정답은 없지만,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함께 가고 있느냐’는 가족마다의 다짐이, 때론 가장 진짜에 가까운 답이 되기도 해. 그리고 2시간 동안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노래하고, 움직이고, 말하고, 소리쳤던 그 건강한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며, 에디는 분명히 또 하나의 마음을 확인했을 거야. ‘나는 지금 이 아이와 함께 자라고 있다’는 마음. 그게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시간의 본질 아닐까?
놀아주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거.
엘리야, 이 글을 읽는 너는 이제 훌쩍 자라 있겠지만, 4살 무렵의 너는 거의 숨도 쉬지 않고 말하고, 웃고, 춤추고, 그랬대. 아빠는 그때 너무 피곤했지만, 너랑 노는 시간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대. 그러니까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너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전부였고, 그걸 지키려 애쓴 두 어른이 있었다는 걸.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계속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