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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를 보낸 회사를 떠나며

Against the Doom, Only the Courage

by Eddie

31살에 입사했던 회사를 40살이 되어서 퇴사를 했다.


건강한 젊음이 있었고, 유쾌한 토론이 있었으며, 무엇보다 값진 동료들이 있었던 회사였다. 페이스북에도 인사를 남기기는 했지만, 정말 머무는 동안에 엄청나게 많은 경험들의 출발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된 셈이었다. 그래봐야 30대 초반이 겪는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대단할 수야 없겠지만, 내게는 꿈과 희망을 말하고 다녔던 회사이기도 하고, 그 꿈과 희망 안에 엄청나게 많은 그리고, 특별한 선배와 후배, 그리고 동료들을 만났던 직장이었기 때문에 퇴사 한 지 10여 일이 지난 오늘도 회사와 동료들의 안부가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에게 ‘우리 회사’는 그랬다.


웹기획으로 시작을 했지만, ‘웹을 기획’하는 일보다는 웹에서 벌어지는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기술을 만들고 조합하는 그래서 그 무언가를 알리는 일을 한다고 자부했었고, 모바일로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도 쉽게 ‘우리’는 다음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어느덧 회사는 6명에서 출발하였지만, 70명에 가까운 인원이 되었고, 소위 말해서 무엇이든지 스케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30대에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던 개인적인 소명은 회사가 유명해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고, 간단한 이메일 하나에도, 고객사와의 미팅에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시점까지에도, 홍보를 위한 기사를 작성하는 일에도, 칼럼을 게재해서 전달하는 일에도 모든 것에 소소하지만 의미를 붙여왔었다. 작은 회사에서 겪는 수 많은 일들, 인사, 노무, 총무, 회계, 전략, 홍보 등 깊게는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닌 의미 있는 세상과 의미 있는 삶을 의미 있는 사람들과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한 이후부터 그러한 일들은 당연한 것들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를 떠났다.


더 아름답고 훌륭한 40대를 위한 것도 있지만, 조금 더 ‘나’라는 사람의 아이덴티티나 진가를 한 번쯤은 더 확인해보고 싶어서. 어쩌면 하루 혹은 한 달 뒤면 더 늦어질 것만 같아서. 내 안에 자라고 있는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 회사를 떠났다. 애정이 너무 깊은 만큼 애증도 많았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나온 지금은 그저 모든 것들이 나에게 분명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것들이었음을 잊지 않기로 했다.


다시 나는 떠난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만, 14년인가. 나는 계속 달리기를 해 왔었다. 쉼 없는 달리기. 그래서, 나에게는 아주 새로울 수도, 아주 낯익을 수도 있는 세상에서 다시 걷고 뛰고, 오래 뛰기 위해서 지금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아마 30대였을 때의 마음가짐과 40대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너무나도 다르겠지만, 그래도 ‘청춘’이라고 되뇌면서 30대 나의 좌우명처럼, 나는 달릴 것으로 믿는다.


Against the Doom, Only the Courage

@2015년 12월 21일 / D+4개월 19일



레이첼의 공감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끝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로운 시작의 시작일 뿐이다. —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중 (의역 포함, 원문: “A beginning is often just the end of something else.”)


에디의 이 글은 단순한 퇴사가 아니라 의미와 애정의 이별에 관한 이야기야. 그저 회사를 그만뒀다는 말이 아닌, 삶의 한 조각을 고스란히 품고 있던 장소에서 나오는 일이 얼마나 깊고 조용한 결단인지를 담고 있더라. 입사와 퇴사의 사이에 흐르는 시간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결이었지.


특히 “나에게 ‘우리 회사’는 그랬다”는 구절은 그 회사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감히 꿈꾸었던 한 사람의 신념이 담겨 있었어. 커뮤니케이션과 기술이 어우러진 현장, 의미 없는 일이라도 스스로의 맥락 안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버텨낸 시간들. 그건 단순한 커리어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 된 시간이었지.


그럼에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진심이었고 그 진심은 결국 ‘살아 있는 나’를 지켜내려는 용기였다고 느꼈어.


‘나는 나를 해석하고 싶었다’는 이 말은, 어쩌면 자기 인생의 책임을 진다는 뜻이었을지도 몰라. 그건 도망이 아니라 멈춤의 용기였고, 부서짐이 아니라 방향의 선택이었어.



엘리에게


엘리야,

아빠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한 회사를 다녔어. 그 회사에서 많은 걸 배우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꿈을 키웠단다.


그런데 말이야,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자기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자주 들여다봐야 해. 아빠는 그 마음을 오래 바라보다가, 조금은 무서웠지만, 아주 조용히 새로운 길로 나왔어. 그건 도망이 아니라, 더 나은 나로 가는 여정의 시작이었단다.


너도 어떤 날에는 그런 용기가 필요할 거야.

그땐 꼭 기억해.

아빠도 그랬다고, 그리고 결국 더 단단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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