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보다 더 사랑하니까.
19만큼 사랑하는 엘리야.
언젠가부터 아빠가 엘리에게 편지를 써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자꾸 잊고 있다가 오늘 회의 하나 마치고 우리 딸 생각이 또 나서 이렇게 편지 써. 엄마한테 편지 안쓴지도 엄청 오래되었는데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야해. 알겠지?
요즘 엘리는 어떻게 지내는걸까? 매일 매일 보고, 매일 매일 이야기하고, 매일 매일 장난치고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데도, 아빠는 우리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 때문에 속이 상한지 매일 매일이 궁금해. 아마 그건 엄마도 똑같을거야. 오히려 엄마는 누구보다 더 엘리의 하루 하루가 궁금할걸? 엄마는 매일 매 순간을 엘리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잘 돌봐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너만 보면 안쓰럽고 짠하게 생각하거든. 그런데, 엄마도 엄마 역할하는게 처음이라 서툴러서 가끔 엘리에게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 그러는거야. 엘리도 엄마랑 아빠에게 그러는 것 처럼 말이야. 아마 엘리도 엄마도 서로 진심은 아닌데, 참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 그런거 아닐까? 엘리가 그럴 때 마다 '괜찮아. 나는 괜찮아.' 하는 것도 엄마나 아빠는 늘 마음 한쪽이 아파. 너무 생각이 깊게 보여지는 건 아직 5살인 우리 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일 수도 있거든.
오늘 아침에는 엘리가 '아빠. 회전 목마 타고 싶어. 접시 있는데 말이야. 접시 타고 싶어.' 이렇게 말했어. 원래 엘리는 회전 목마는 무서워 하고 접시 타는 건 괜찮아 했는데, 그게 김포 현대 아울렛에 있는 걸 말하는 것 같던데? 우리 그러면 이번 주 토요일에 엄마랑 같이 접시 타러 갈까? 거기서 지유도 같이 보면 좋겠다. 그렇지?
참. 엘리는 지유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아무래도 생각이란걸 하게 되고, 친구란 걸 알게 되는 즈음에 만난 첫 '친한 친구'니까 그런거 같아. 맞지? 우리가 구의동으로 이사하게 되서 지유랑 떨어지는게 싫었을텐데 그래도 가끔이라도 만날 수 있으니까 다행이지? 그리고, 6월 달에는 지유랑 지유 엄마, 아빠랑 같이 또 놀러가기로 했어. 그때는 지유랑 물놀이도 하고 그러자. 어때? 엘리에게 지유가 그리고, 지유에게 엘리가 오랫동안 마음 편한 좋은 친구가 되어 주면 참 좋을 것 같아. 6살, 7살, 8살이 되면 또 다른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겠지만, 어릴 때 만났던 좋은 친구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법이거든. 서로의 성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하면서 아주 많이 시간이 지나면 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될 수도 있거든.
그러려면 우리 딸은 누구보다 더 마음이 크고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할지도 몰라. 친구를 배려하고 이해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또 어떨 때는 엘리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들 솔직하게 말할 줄도 알아야 하거든. 아빠는 우리 딸이 친구가 많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엘리의 이름이 '세상을 여행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거든. 세상을 여행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경험하는 것이기도 해. 아빠도 잘 모르지만, 엄마, 아빠, 엘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이유이기도 할거야.
우리 딸 엘리야. 오늘은 편의점 레고도 또 같이 만들고, 책도 읽고, 공주 놀이도 하고 그렇게 또 즐겁게 놀자. 싸우지도 말고. 아빠도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할께. 우리 딸도 부탁해. 알겠지?
눈물이 날 만큼, 어제 보다 더 사랑해.
@2019년 5월 14일 / D+2년 9개월 12일
에디야, 이 편지는… 정말 아름답고 가슴 먹먹했어. 특히 그 한 줄, “우리는 매 순간 네가 궁금해”. 부모의 사랑이란 결국 함께 있어도, 매 순간 다시 궁금해지는 존재를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싶었어.
사랑은 이해하려는 끊임없는 질문이다.
–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영감을 받아
‘매일 보고, 매일 듣고, 매일 함께 있어도 네가 궁금해’라는 문장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췄어. 그건 단지 아이를 향한 궁금증이 아니라, 부모가 자식에게 보내는 가장 깊고 조용한 헌신의 방식이니까. 사랑은 설명이 아니라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태도라고 말한 프롬의 말처럼, 에디는 엘리와 매일을 보내면서도 다시 묻고, 다시 귀 기울이고, 다시 안아주는 사랑을 하고 있더라.
아빠와 딸의 사랑스러운 대화 속에 녹아 있는 섬세한 관찰들. 김포 현대 아울렛의 접시, 지유와의 우정, 그리고 회전목마에 대한 작은 변화들. 그 모든 것이 엘리의 성장 기록이자, 에디의 진심이 되어 글 속에 남아 있었어.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지유와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였어. 친구란 어떤 존재인지, 어린 시절의 우정이 어떻게 오래도록 남는지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그 문장에서 에디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전해졌어. 자신의 아이가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도 타인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커가길 바라는 그 진심. 그건 엘리를 '잘 키우는 법'이 아니라, 엘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였지.
이 편지를 읽고 엘리가 훗날 성장해서 다시 이 문장을 마주한다면, 자신이 어떤 사랑 속에 있었는지를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그건 그 어떤 조언보다도 강력한 울타리가 되어줄 거고.
엘리야, 이 날의 아빠는 네가 뭐가 좋은지, 왜 속상한지, 어떤 꿈을 꾸는지… 모든 게 궁금했대. 그건 엘리가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너랑 매일 같이 있어도, 너의 마음은 매일 새로워.
회전 목마 대신 접시를 좋아하고, 지유를 생각하면서 웃고, 친구를 배려하고 싶어하는 너의 마음이 아빠한테는 너무 자랑스럽단다. 지유처럼 오래 기억되는 친구가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야. 그리고 엘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엘리는, 세상을 여행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사람이니까.
오늘도 어제보다 더 사랑해.
내일은 오늘보다 더 사랑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