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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mei mi Jan 03. 2025

   28면의 남자

      -누군가의 글은 때론 부적(符籍)이 된다







내게 힘이 되어준 부적 같은 글을 벽에 붙였다.






 가장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내고 오랜 은둔을 하면서 내가 세상과의 소통을 하는 것은 유튜브와 쇼츠 영상 보기였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냥 영상을 하나 틀어 놓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했다. 아니 편한 게 아니라 앞일을 생각하기 두려워 나아 가기를 미뤘다. 시장에 갔다가 우연히 신문 구독을 권유받고 얼떨결에 승낙하여 구독한 지 1년 6개월이 될 즈음, 신문에서 눈에 띄는 새로운 코너의 글을 읽게 된다.



 <권석천의 컷 cut>  매주 금요일 신문 28면에 실리는 이 고정 코너는  가로 11cm x 세로 19cm 정도의 지면을 차지한다. 기사 중앙엔 글의 주제인 영화나 드라마의 한 컷(cut)이 실린다. 술술 막힘 없이 읽히고 주제 전달이 명확한 정말 잘 쓴 글이었다. 게다가 재미와 감동까지 적재적소에 나타난다. 짧은 쇼츠 영상에 중독된 상태라 긴 글은 읽을 수 없었던 나의 마음에 쏙 들어왔다. 신문 기사 변동에 따라 글이 26면 또는 32면에 실릴 때도 있지만 금요일엔 언제나 찾아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동된 지면을 찾는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매주 글을 잘 쓰실까? 이 코너의 팬이 된 나는 글쓴이 권석천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신문 고정 코너를 통해 처음 안 인물인 그는 알고 보니 기자 출신에 작가이면서 소문난 글쟁이였다. 유명한 언론인으로 때론 송곳 같이 날카롭게 파고드는 칼럼을 썼다고 한다. 역시..... 아무렴 신문에서 고정 코너를 맡긴 이유가 있었다.^^







24년 새해에 용기를 주었던 <권석천의 컷>



 아무나 신문에 기고할 있는 건 아니지만 누구나 신문에서 감응을 받는 건 아니다. 나는 그의 글을 보며 힘들었던 지난날의 선택과 후회들을 조금씩 마주하게 되었다. 특히나 고마운 글이 있다. 2024년 1월 5일 금요일에 실린 <새해에는 할 수 없는 것을 하자>의 일부분이 내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했다.


 상황을 변화시키려면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해보지 않았을 뿐인데 할 수 없다고 지레짐작을 한 거다. 사회적으로 해선 안 되는 일이 아니라면 과감하게 한번 해보는 거다. 그래야 뭐라도 바뀐다. 해봤는데 안 된다면 ‘이건 내가 못하는군!’하고 돌아서면 되는 거다.

인생은 할 수 없는 것들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새해엔 그동안 할 수 있었던 것들, 해온 것들에 안주하지 말고, 할 수 없었던 것들에 도전해 보자. 스스로에게 깜짝깜짝 놀라는 순간을 가져보자. 그것이 새로운 일이든, 운동이든, 취미든, 무엇이든 간에. [출처:중앙일보]



 이 글에 용기를 얻어 24년도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뭐라도 해보자고 결심했다. 첫째 장롱면허 탈출. 거금 80만 원을 들여 학원에서 운전 연수를 받았다. 여전히 주차는 서툴지만 짧은 거리는 주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미니의 죽음에 관한 글쓰기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함께 했던 아픈 시간들도 제대로 보려 하기. 많이 늦었지만 24년 12월 말에 글을 써 25년 1월 1일에 발행했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분야에서 다시 일하기 위해 도전하려 한다. 지지리 못난 미련 일지 모르지만 '28면의 남자' 그의 조언대로 "해봤는데 안 된다면 ‘이건 내가 못하는군!’하고 이번에야 말로 깨끗하게 돌아서기 위해서다. 나는 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것들 중 2가지는 해냈다. 나머지 하나는 새로 맞이한 25년도에 진행 중이다.



 결심의 불씨를 지핀 글 외에도 이후에 나온 주옥같은 글들은 왠지 모르게 그가 나를 알고 알맞춤으로 조언해 주는 듯했다. 영험한 기운의 부적처럼  벽에 붙인 그의 글들은 불안함이 피어오를 때마다 한 번씩 쳐다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한다. 자신의 글이 타인에게 이러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그도 알까? 무서움에 주저하던 나를 일으킨 고마운 글과 만나기 위해 매주 다가오는 금요일이 좋았다. 25년 1월 3일 금요일 아침, 신문엔 새로운 필진이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그가 28면에서 내게 주었던 용기는 여전히 가슴에 남아 있다. 지금 힘든 상황에 있는 또 다른 사람에게도 때에 맞는 글이 찾아와 힘을 얻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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