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 카즈에의 <마법의 여름> 안 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라고 세상에 외치고 싶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제가 여름 방학에 시골 외가에 놀러간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인데, 책을 읽으면서 여름의 행복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여름 방학, 부모님은 일하느라 집에 없고 형제는 수영장에 다녀와서 게임 한 판을 하고 감자칩을 먹고 보리차를 마신다. 책 속 아이들이 보리차를 먹는 장면을 보면서, 어린 시절 우리집 냉장고에 있던 델몬트병에 담긴 보리차가 떠올랐다. 엄마는 다 끓으면 삐 소리가 나는 주전자에 보리 티백을 넣고 물을 끓인 뒤 식으면 델몬트 유리병에 담았다. 학교에 다녀와서 냉장고를 열어 그 델몬트병에 담긴 보리차를 보면 보기만 해도 갈증이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시골에 계신 외삼촌이 아이들을 초대한다. 이발소를 하는 외삼촌은 아이들이 도착한 날 직접 머리를 잘라준다. 아이들은 빡빡이가 되어 밖으로 나간다. 발가락까지 새카만 동네 아이들과 친구가 되고 같이 곤충 채집을 한다. 숲에 들어가 나무를 타고 냇물에서 장수잠자리도 잡는다. 아이들은 냇물에 여러번 빠지는데 "신발에 물이 들어가, 걸을 때마다 삐칙삐칙 소리가 났다."고 한다.
쫄딱 젖은 데다 모기에 엄청나게 물린 아이들은 온몸이 흙투성이였다. 지친 동생은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때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진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이런 비는 처음 맞아 보았다.
소나기는 마치 하늘에서 뿌리는 샤워 같았고,
진흙은 밟을수록 자꾸자꾸 더 밟고 싶었다.
-<마법의 여름> 18쪽-
집으로 돌아오니 외삼촌, 외숙모가 목욕물을 받아놨다. 샤워를 하고 먹는 저녁 밥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텃밭에서 따 온 토마토랑 오이, 옆집 두부가게 아저씨가 만든 두부에다, 아침까지 바다에서 헤엄치던 싱싱한 생선을 먹었다." 아침까지 바다에서 헤엄치던 생선이라니. 건강한 밥상으로 속을 채운 아이들은 갑자기 졸음이 몰려온다. "보송보송하고 해님 냄새가 나는" 이불을 덮고 잠이 든다.
그래, 여름은 뜨거운 햇볕에 땀을 주륵주륵 흘리고 웽웽 거리는 모기를 쫓느라 짜증이 나지. 그리고 계곡이나 바다에서 놀 때는 모르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피곤하고 지치지, 맞아. 그런데 그런 고생 때문에 그토록 밥맛이 달고 보리차는 뼛속까지 시원한 거다. 무엇보다 꿀잠, 그렇게 바깥에서 놀고 돌아와 바삭거리는 침대에 폭 안겨 잘 때는 어떤 포만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여름의 행복은 쾌적한 침구에 달려 있다!
다음 날 아이들은 바닷가에서 수평선 너머로 지는 커다란 저녁 해를 바라본다. 아이들은 어느새 완전히 이곳에 동화되어 새까매졌다. 그 다음날은 방파제에서 낚시를 해서 정어리를 이백마리나 잡는다. 할머니가 잡아온 정어리로 튀김과 생선 완자를 만들어준다. 아이들은 계속 이곳에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날 밤 동생이 커다란 물고기한테 쫓기는 꿈을 꾸고 울음을 터뜨린다. “집에 갈래, 내일 집에 가자.”
다음날 아침 외삼촌이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또 놀러오라고 한다.
“네, 또 놀러 올게요!”
아이들이 손을 흔든다.
굴곡 없이 편하기만 하고 쾌적한 여행이 가장 좋은 여행은 아닌 것 같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아이와 함께 다랑쉬오름을 올랐다. 이마에서 땀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아이는 힘들다고 언제 끝나냐고 오 분마다 물어봤다. 정상에서 야호! 를 외치고 높고 푸르른 하늘과 초록의 분화구를 한껏 눈에 담고 내려왔다. 아이와 함께 올라 더 좋았다.
그런데 그게 하이라이트는 아니었다. 하이라이트는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간 근처카페의 청귤에이드와 디저트들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고 달콤할 수가. 그 카페에 있는 블루베리 푸딩, 당근 케이크, 녹차 쇼콜라 등을 모두 조금씩 맛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같이 간 친구에게 “어떻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지?“ 했더니 친구가 오름에 올라가느라 힘들었다가 갑자기 당 충전이 돼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요런 꿀맛을 맛볼 수 있다면야 나는 얼마든지 다시 올라갈 수 있다. 그리고 밤에는, 숙소의 바스락거리는 침구에 폭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