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친구를 가졌는가
관계의 질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한다.
1. 상투적 대화와 인사 정도 나누는 사람
2. 객관적 정보를 나누는 사람
3. 자기 견해의 수준을 교류하는 사람
4. 감정과 정서를 나누는 사람
5. 깊은 교감을 나누는 극치적 수준의 사람
5번으로 갈수록 깊은 우정과 신뢰의 관계다.
극치는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취나 경지를 뜻한다.
내게 극치적 수준의 관계는 얼마나 될까. 나이 먹어갈수록 친구는 대충 아는 여럿과 깊이 아는 극소수로 굳어진다. 30년 이상 알고 지낸 친구도 상투적 대화와 인사뿐이며 더 이상의 정서적 교감은 어려울 수 있고, 반면 최근 몇 년 사이에 알게 된 사람과 극치적 수준의 관계성이 가능하기도 하다.
관계 중심적인 나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내게 절실한, 극치적 수준의 사람을 원하여, 몇 단계 건너뛰고 속 얘기를 풀었다가 다친 적이 많았다. 오프 만남에서도 페북에서도 가급적 마음이 무너진 이야기는 하지 않고 싶어졌다. 그래서 드라마나 책 이야기를 많이 하는지도 모른다.
어제는 극치적 수준의 대화가 가능한 분과 반나절 이상 따뜻한 교제를 나눴다. 김포공항 롯데몰의 딘타이펑에서 맛난 딤섬을 대접받았고, 바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그분이 가르치시는 대학에 같이 가서 강의가 끝날 때까지 교내 카페에서 노트북 열어 일하다가 연구실에서 재회해 저녁까지 대화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아 운동할 시간도 없는 요즘이지만, 힘이 났다. 깊은 교감의 대화로 충전받는 내 특성상 고속 충전 콘센트에 연결된 기분이었다.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나눈 뒤 귀가한 시간이 9시가 넘었다. 그리고 새벽 3시까지 일하면서 힘든 줄 몰랐다.
재택근무하는 오늘, 오전에 대청소를 했다. 일주일에 두어 번 특수청소 알바를 뛴 지 넉 달째다. 집 청소는 하기 싫어질 법한데 아이들 방까지 구석구석 빛이 나게 청소했다. 어제 선물받은 달콤한 빵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지금 별로 피곤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깊은 교감에 대한 갈망이 있다. 줌과 스마트폰 시대에 대화 수단은 편해졌어도 대화의 질은 떨어져 있다. 평생 일만 하고 돈만 버는 삶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극치적 관계성의 유익을 주는 사람, 누군가에게서 깊은 교감을 느끼는 시간이, 만만치 않은 이 시대를 견디는 비법이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