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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fter (2023)

넷플릭스 단편 영화, 상실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

by 황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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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보다가 나와 비슷한 고통의 이야기를 만났다. <The After>라는 제목의 영국 드라마로 2023년 공개된 단편이다. 영화는 18분 정도밖에 안 되는 러닝타임이다. 갑자기 끝나서 깜짝 놀랐다. 넷플릭스에 이런 짧은 영화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주연은 데이비드 오예로워(David Oyelowo)로, 그는 이 영화의 공동 프로듀서다.


흑인 가장이 발레를 하는 어린 딸과 이야기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딸을 무척 사랑하는데 아빠는 딸의 공연을 보러 갈 시간이 없다. 아내도 남편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공연장 부근에서 만난 아내에게 딸을 맡긴 뒤 갑자기 일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는 생각에 회의 시간을 미루고 아내와 함께 딸의 발표 무대를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칼을 든 미친 강도가 달려와 딸을 찌르고 건물 아래로 밀어버린다. 아내는 비명을 지르며 딸이 떨어진 곳으로 뛰어내리고, 그 모습을 곁에서 본 아빠는 비명을 지르며 범인에게 달려들어 제압하지만, 이미 딸과 아내는 세상을 떠나고 없다.


다음 장면에서 그는 우버 기사로 나온다. 직장도 잃고 우버 택시를 운행하며 겨우 살아 있는 모습으로 절망이 가득하다. 핸드폰에 녹음된 지인들 목소리를 듣는다. 다들 걱정한다. 파티에 오라고, 꼭 얼굴 보자고, 네가 오는 그날이 우리에게 최고의 날이라고… 그렇게 마음 써주는 이들의 음성 녹음을 끝까지 듣고 그는 다시 차를 운행한다.


차에 오른 여러 승객을 보다가 가정이 깨진 자기 현실이 되살아나기도 하고, 살아갈 의욕을 챙기기 힘들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의 딸과 꼭 닮은 아이와 어느 부부가 차에 오른다. 뒷좌석 가운데 앉은 그 여자 아이의 표정은 우울하기만 하다. 양쪽에 앉은 부부가 계속 심각하게 싸우기 때문이다. 그 딸에게서 죽은 딸이 살아 있으면 저만큼 컸겠구나 싶은 그는 겨우 감정을 참고 그 부부의 집에 다달아 짐을 내려준다. 집 현관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싸우는 부부를 보며 딸은 뒤늦게 차에서 내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운전기사인 그를 백허그한다.


갑자기 오열하는 그.


현관에서 그 모습을 본 부부는 자기 딸이 무슨 짓을 당하는 줄 오해하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딸을 데리고 들어간다. 그 아이는 우울해 보이는 기사를 왜 뒤에서 허깅했는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을 사이 안 좋은 엄마아빠에게서 구원해 달라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딸과 아내를 잃은 그의 고통스러운 가슴을 크게 건드렸다. 그는 자리에 쓰러져 한참을 통곡한다.


길바닥에서 펑펑 울다가 정신을 차린 그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담겨 있다. 옷의 흙먼지도 털지 않고 운전석에 오른다. 그리고 영화 끝.


18분의 이 영화에서 운전석에 오르고 난 뒤 주인공이 희망을 찾았는지 새 삶을 살아가는지는 설명돼 있지 않다. 다만 그 말싸움뿐인 부부의 딸이 포옹해 줄 때 하늘로 간 자기 딸의 위로를 느꼈을 것 같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러길 바라지만, 알 수는 없다.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이 사라져버린 사람에게 필요한 게 뭘까? 주변 사람들은 이게 다 네 잘못이다고 힐난한다. 특히 크리스천은 욥의 친구 같은 이가 은근히 많다. 광주 518을 보고 북한의 소행이라고 하는 자들과 같은 맥락이다. 어떻게 국가가 국민을 해칠 수 있냐는 이념처럼 어떻게 믿는 사람이 그런 불행을 겪을 수 있냐며, 하나님을 잘못 믿고 살아온 네 죄 때문이라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에서 지금도 마주하는 어느 대형 교회 현수막 글귀처럼.


당사자는 그냥 둬도 자책감에 시달린다. 네가 잘못한 거라고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자기 잘못으로 생각하고 무리한 자책감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자칫하면 극단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에게 필요한 위로는 ‘얼마나 괴롭겠니. 난 헤아릴 수도 없지만 하루하루 살아 있으면 좋겠어. 너를 위해서 좀 살아봐’ 이런 말일 것이다.


어쩌면 그 소녀는 처음 만난 기사 아저씨에게 그런 뜻을 전하는 포옹을 해 준 게 아닐까. 그는 딸을 닮은 소녀, 부모의 싸움에 지친 그 소녀가 뒤에서 팔 벌려 안아준 것에서, 이런 순간이라면 살아 있어도 괜찮겠다 싶은 마음을 느꼈을 것이다.


매일 살아 있자는 마음보다 오늘 하루 그냥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일에 파묻혀 살다가, 주말에 넷플릭스에 빠지는 것 외에는 큰 위로를 못 느끼는 내게 깊은 감정이입을 해준 영화였다.

202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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