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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Sep 08. 2022

누군가에겐 키오스크 보다 사람이 필요하다

냉육수가 자작하게 부어져서 나오는 냉쫄면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인데도 테이블은 거의 만석이었다. 익숙하게 내 테이블 번호를 확인하고 키오스크로 향했다. 냉쫄면과 사이드 메뉴로 닭튀김을 주문했다. 자리로 돌아와 귀에 이어폰을 꽂고 유튜브로 좋아하는 동영상을 보기 시작했는데 유일하게 비어있던 대 옆 테이블에 한 여성이 앉았다. 7분짜리 동영상을 다 본 뒤 셀프바에서 된장국을 퍼오기 위해 일어나는 순간 옆자리에서 고개를 쭉 빼고 두리번거리는 그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 직원 한 명이 쟁반을 들고 내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셀프바로 향했다. 테이블에 냉쫄면과 닭튀김이 놓이는 소리가 들렸고 짧은 대화 소리도 들왔다.



"만둣국 하나 주세요."

"저쪽에 키오스크 이용하시면 돼요."



그 대화를 듣고 나는 일부러 셀프바에 계속 서있었다. 키오스크가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머뭇머뭇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온 그녀는 이런 물건을 처음 접하는 것처럼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는 직원이 해야 할 일을 대신했다.



"만둣국 시키시게요? 테이블 번호가 제 옆이니까 3번 누르시고, 식사류에서 만둣국 선택하시고, 음료나 다른 메뉴는 안 하실 거예요? 그럼 바로 결제 버튼 누른 다음 카드 꽂으시면 돼요. 음식은 직원이 테이블로 가져다 줄 거예요. 된장국이랑 단무지는 여기에서 직접 가져가시고요."



나의 능숙한 안내에 그녀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줍게 웃었다. 영수증이 길게 뽑혀 나오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날 쳐다보았다. 할머니라고 하기엔 젊고 아주머니라고 하기엔 우리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아이고, 복잡하네. 세상이 이렇게 됐어. 고마워요."



나는 냉쫄면과 닭튀김 다섯 조각을 해치우고 가게를 나섰다. 만약 된장국을 뜨러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주문을 못하고 곤란해하는 걸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직원이 코앞에 가져다주는 음식에 바로 얼굴을 박았을 테니까. 물론 내 도움 없이도 더듬더듬 음식 주문에 성공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주문에 실패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외식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괜한 걱정도 과민 반응도 아니다. 할아버지 세 분이 카페에 들어오셨다가 키오스크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나가시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 카운터 안쪽엔 일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다. 아마도 직원 전용 공간에서 머물다 주문 빌지가 들어오면 카운터로 나와 음료를 만드는 것 같았다. 무더운 여름, 냉커피 한 잔이 절실했을 노인들을 흔쾌히 돕지 못하고 머뭇 거렸던 게 두고두고 후회됐다.



키오스크뿐만 아니라 영어뿐인 메뉴판도 마음이 불편하다. 젊은이들만 찾는 가게, 외국인 밀집 지역의 가게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이것도 어디까지나 내가 이해심을 발휘하는 것이지 당연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나는 한글과 영어가 함께 쓰여있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영어 사용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대형 마트 주차장까지 'IN, OUT'이라고만 표시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말이다. '입구, 출구'라는 글자 아래 외국인을 위해 작은 글씨로 영어를 붙여주면 안 되는 걸까? 내가 일하는 카페에도 쟁반을 반납하는 곳에 'Return'이라고만 적혀있다. 엄마 나이대만 돼도 그게 무슨 단어인지 몰라 쟁반을 엉뚱한 곳에 가져다 놓는 사람이 허다하다. 나는 카운터에서 근무하지 않기 때문에 손님 응대를 할 일이 없지만 카운터 업무를 보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여기 아니에요. 저쪽에 두세요."하고 딱딱하게 말하는 걸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저기에 뻔히 'Return'이라고 쓰여있는데 왜 여기에 두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게 뻔하다.



대한민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고령 사회로 규정되었고 60대를 넘어서도 여전히 경제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경우가 많다. 꼭 경제 활동이 아니어도 우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하루'를 각자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기계를 다루지 못해서, 영어를 읽은 줄 몰라서 무더위 속 냉커피를 포기하거나 식당에서 점심 먹기를 포기하는 일이 그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키오스크나 영어 사용이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함께'가 빠져있다는 게 아쉽다. 키오스크가 있어도 카운터엔 사람 한 명쯤 있어줬으면 좋겠고 메뉴판에 한글도 같이 써주면 좋겠다. 누군가 키오스크 사용을 어려워한다면 기꺼이 도와줄 친절한 직원도 한 명 없이 가게를 운영하는 건 내 상식에서 조금 벗어나는 일이다. 우리말이 단 한 글자도 적혀있지 않은 메뉴판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지금 외국에 나와있는 건지 착각이 든다.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세상은 더욱 복잡해져만 간다. 모든 세대가 그 복잡한 변화에 발맞춰 가지는 못한다. 원한다면, 누구든지 어느 곳에나 들어가 자기가 원하는 걸 간단히 얻었으면 좋겠다. 기계 앞에서 머뭇 거리고 도와줄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Return 옆에 퇴식구라고, IN 옆에 입구 OUT 옆에 출구라고, Ice Coffee 옆에 냉커피라고 함께 쓰여있는 게 아직은 중요하다. 누군가에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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