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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 Aug 22. 2023

내 인생 첫 정신의학과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별로였다. 요즘은 병원을 찾을 때도 리뷰를 꼭 확인한다. 나는 오히려 음식점보다 병원 리뷰에 예민한 편이다. 환자가 너무 많아서 대기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던지, 시설이 너무 노후됐다던지, 의사가 혼내는 타입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주로 확인한다. 그런데 정신과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병원 리뷰 중에 의사가 별로라는 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딱 한 군데 있기는 했다. 내가 간 곳. 하필 내 진료를 본 그 의사.


병원 후보 세 곳 중 한 곳은 여름휴가 기간이고 다른 한 곳은 예약이 11월까지 꽉 차있고 시간과 거리가 딱 맞는 병원이 하나 남았다. 리뷰에 '젊은 의사가 너무 별로예요. 얘기를 듣는지 마는지 모르겠어요. 1분도 안 돼 끝났어요.'라던 곳. 그 병원에 의사는 두 명인데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고 한 명은 그 젊은 의사였다. 예약 없이 오셔서 대기 시간이 길다는 말을 듣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께 진료를 받고 싶었지만 나는 3번 방에 들어가게 됐다. 구겨진 반팔, 부스스한 머리가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 뒤에 이어진 진료 내용 때문에 역시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


"왜 오셨어요?"

"감정 조절에 어려움이 있어요."

"어떻게요?"

"아... 짜증이 많고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기분이 엉망이 되는데 그걸 다른 사람에게 표출하게 돼요. 최근에는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숨이 모자란 느낌이 들어요."

"예... 평소엔 기분이 어때요?"

"보통은 무기력하고, 음..."

"예... 알겠습니다. 도움이 되는 약을 두 가지 드릴게요. 3주 치. 속 쓰릴 수 있는데 그럼 반만 드세요."


1분 만에 끝났다는 리뷰는 거짓말이 아니었다. 난 그래도 3분 정도는 걸린 것 같지만. 일단은 정신과라는 첫 문턱을 넘었다는 것과 나도 뭔가 절제가 안 될 때 먹을 수 있는 약이 생겼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고 바로 공황장애,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찾았다. 나는 늘 정보 공유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찾아보는 편이다. 초진 환자에게 3주 치 지어주는 병원이 어디 있느냐, 초진인데 3분 진료는 너무하다, 약 처방이 전문인 병원이 있긴 하지만 심하다, 다른 병원 가보셔라. 나는 다시 불안에 휩싸였다. 일단은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해 공황 증상이 올 때 먹는 약을 한 알 먹었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30분 정도 지나니 릴랙스가 됐다. 그리고 원래 끊임없이 생각을 하며 돌아다니는데 희한하게 별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물론 서너 시간 뒤엔 다시 생각의 늪으로 빠졌다.


숨이 잘 안 쉬어질 때 먹는 약과, 매일 밤 자기 전에 먹는 약을 받았고 나는 그 약을 먹기 위에 물까지 떠놓은 상태에서 한참 고민했다. 이 약을 먹고 내일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 날 12시간 재워버리는 거 아니야? 그냥 먹지 말까? 나는 의심이 많다. 그래도 애써 처방받은 약이니 먹어는 보자,라는 생각이 한참 고민 끝에 내려져 꿀꺽 삼켰다. 그리고 내일 퇴근과 동시에 바로 다른 병원에 가야지,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아쉽게도 그 약은 수면 유도제아니고 수면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신경안정제일 뿐이라 잠드는 데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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