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지 않았다.
조바심이, 하는 일 없이 나를 들들 볶기만 한다. 그만 만나고 싶은데, 녀석은 오장육부에 들러붙어 있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시간은 곧 흘러가고, 나는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돌아가야 한다. 신데렐라처럼 왕자가 내민 손을 잡고 춤이나 춰봤으면 덜 억울할 텐데, 멍-하니, 조마조마한 마음만 멀미처럼 간직한 채 나도 흘러간다. 내가 나에게 얼마나 더 잘해주고 싶어서 이러는 걸까. 그냥, 대충은 사랑할 수 없는 걸까. 나란 인간은 얼마나 많은 정성과 에너지를 들여야 만족하는 걸까.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나의 면면이란.
이렇게 5년을 나를 위해 오롯이 쓰지 못해 절망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가고, 결코 연민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
어느 여름, 어둠의 구렁텅이에 겁 없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법을 알고 있다.
적어도 하루에 한두 번은 아이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내가 배우지 못한 사랑을 나는 노력으로 실천하려 한다. 그건 매일 하지 않으면 증발하는 물과 같다.
기억나지 않는 건 지우고 싶은 기억이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더 깊이, 저 깊은 곳에 들어차 있는 슬픔을 지긋이 바라볼 준비가 어느정도 된 것 같다.
그대들에게 결코 말할 수 없는 그런 시간을 견뎌내고 기어이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고야 말았다.
다만, 사랑이 넘쳐나 현실에 홍수를 일으킬 때마다 작게 절망한다. 이 사랑은 형태도 일정치 않으며, 시도 때도 없이 일상을 괴롭힌다. 해야 하는 일들이 파도가 되어 내 사랑을 덮쳐 허우적대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면, 시계는 어느새 자정을 향하고 있고, 눈꺼풀이 무거워지다 못해 나는 이내 내일로 가는 불결한 침대칸에 누워있는 부랑자 같은 신세로 하루를 마감하고 만다.
뒤늦게 나를 너무 사랑한 죄다. 제때에 나를 사랑해주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할수록 이룰 수 있는 건 적어지는 이상한 반비례 곡선이 생채기처럼 그어지고, 일시에 마음이 가난해지기도 한다.
다만 나는 가라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