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렇게 살아도 된다면
꽃을 보며 부른다. 이리 와보라고, 이리 와서 이 꽃을 보라고, 아침에 피어났다가 저녁에 지는 저 작고 여린 잎을 함께 세어 보자고. 우린 서로에게 자꾸만 뭘 보라고, 들으라고, 손을 번쩍 들어 가리키는 사이구나. 함께 보자고, 같이 듣자고, 이리와 곁에 있자고.
넉넉한 미혹
지금부터 말해주는 이 아이는 작고, 몰랑몰랑하고 또 그만큼 연약해. 단단하지 않은 녀석은 때가 되면 당연하다는 듯 또 제멋대로가 되지. 주물러지다 물러 터지고, 부서지고, 축 처져서 정신을 못 차리게 하거든. 그럼 나는 나름의 노련함으로 녀석을 대하곤 했어. 나의 것이 아닌 척, 나를 울게 했던 모든 게 없던 일인 척 사는 데에는 도가 터 있었지. 얼마 못 가 무너지고 말았지만. 그건 노련한 게 아니라 도망치는 것에 불과했어. 뛰고 또 뛰다 지쳐 숨이 막히고 무엇도 생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 한 달 정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 기분의 질이 무한 추락하고 있었어. 치기 어린 방랑이라 하기엔 내가 걷는 길이 너무나 무서운 낭떠러지 위라서,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지. 그래서 난 병원을 찾았고, 상담센터를 수소문 했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낼 돈은 있으니, 차라리 이쪽 계통에서는 형편이 나은 쪽이라 해야 할까. 어쨌든 난 그들 앞에서 펑펑 울고, 토하듯 이야기를 지껄였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아서.
쉽게 말한다는 게 이렇게 복잡해졌구나.
제때 돌보아주지 못해 추락해버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세상 아이들은 자라나고, 꽃은 피고 졌어. 아이들은 또 꽃과 같아서, 팔랑팔랑 뛰놀고, 알록달록 피어나고, 달콤하고, 그렇더라. 아이들아, 너희가 다 꽃이라는 말만큼은 추락한 마음속에서도 물리지 않았어. 너희가 꽃이 아니라면, 세상 무얼 가져다 꽃에 비길 수 있을까.
제주에서 맞는 다섯 번째 여름이 시작하자마자, 나는 병원과 상담소, 꽃 무더기 앞을 정신없이 헤매다 지금 여기, 8월에 닿았어. 이 여름에 뱉어낸 말들은 흙밭에 뒹구는 하얀 꽃잎처럼 여전히 미련이 많고 질척거리지만.
지난날 꽃 앞에서 지껄인 이야기들을 풀어놓아 볼게. 이젠 펑펑 울 필요도 없고, 토하듯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아니, 용기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울거나 토하더라도 내 연약한 마음을 돌볼 수 있게 됐다는 그런 말 대신 꽃을 빌어 이야기를 전할게.
귤꽃
5월이 막 시작된 어느 토요일엔 위미까지 갔어. 거기서 표선까지 20분밖에 안 걸리니까, 참 멀리도 갔더랬지. 특별한 계획 같은 건 없이 무작정 길을 나섰는데, 아마도 나의 오감이 그곳으로 가라고 등 떠민 것 같았다면 믿을 수 있겠니. 나는 그런 사람이야, 몰랑몰랑한 마음으로 사소한 오감이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맘때 온화한 남쪽 마을로 가면, 귤꽃 향에 물든 산소로 숨 들이켤 수 있다고 문득 떠올린 거야.
이 섬에 온 지 얼마 안 됐던 때였어. 아직 덥지도 않은데 자고 일어나면 화르르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 창을 열었지. 그때 훅 달려드는 그것. 분명 향기였는데, 열감을 느꼈어. 참 이상하지. 온 마을을 포위한 귤꽃 내음. 위성 사진으로 찍으면 섬 한 부분이 이글이글 향기인지 열기인지를 내뿜고 있을 것 같았다고.
그때부터 난 앞으로 찾아들 5월의 나에게 전할 말이 생겼지. 지금이 아니면 놓치게 된단다. 귤꽃 향으로 숨쉬어 보지 않고서 귤을 따 먹을 순 없는 거야, 이제부턴.
수국
마음이 이렇고 저럴 땐 나와 내가 거닐어 보곤 해. 그나저나 언제 다 피었을까. 제주에선 이른 여름을 맞이할 때마다 늘 이 생각을 하곤 해. 오늘은 밤비가 많아. 물을 듬뿍 머금은 수국이 잔뜩 부풀어 오르고 있을 테지. 느리지만 꽉 차 있는 삶이라 생각해보고 싶은 밤.
올해 첫 수국이 피어난 날, 서귀포에 살 적 사진을 뒤적였어. 그땐 아이를 꼬옥 안아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았어. 잘 모르고 괜히 낯간지럽고 피곤하고 힘든 것만 생각했지. 오랜만에 서귀포에 놀러 간 오늘은 아이가 먼저 와서 안아달라 했어. 어화둥둥 내 아기, 어여쁜 우리 아가. 품에 안길 때 많이 안아줘야지. 참 좋은 말 사랑한다 많이 말해줘야지. 언제고 안아줄 품이 늘 네 곁에 있을 거라 끝없이 알려줘야지.
아이는 땡볕에 아스팔트에 말라붙은 지렁이들을 세었어. 흙으로 보내준 지렁이에게 인사도 하랬더니 쑥스러워하면서도 예를 다했어. ‘안녕 지렁아, 나중에 다시 태어나라.’ 죽고 나면 다시 태어날 수 있으리란 어린아이의 막연한 희망을 엿보았어. 나는 언젠가 들이닥칠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이 아이에게 설명해 줄 준비가 되어있는지 점검했어. 알아, 늘 과한 생각이 문제라는 거.
사랑이 어디 있을까, 그런 게 있긴 한 걸까 늘 의문스러웠지만, 한동안 작은 아이와 노랑 빛을 맞으며 걷는 동안 어렴풋이 깨달았어. 그건 믿음과 불안 사이, 생과 죽음 사이에 깨끗하고 맑은 상태로 존재한다는 걸. 이 여름, 바라는 건, 그저 평안과 사랑, 그뿐이지만 들어주시려나, 이 바람.
능소화&해바라기
이제 저녁밥 먹고 나서 그릇은 대충 물에 불려두고 산책하러 나올 수 있을 만큼 해가 길어졌어. 한여름엔 설거지를 다 마치고 나가도 괜찮을 거야. 담장엔 노을빛을 닮은 능소화가 길게 늘어져 있고, 해바라기는 때맞춰 고개를 숙이겠지.
5년 전 이맘때 앞으로 펼쳐질 5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날 줄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미역국을 맛있게 먹었더랬지. 초유가 뭔지도 모르고 신생아실에 있는 그 아기가 내 아기인가보다, 하고 조리원 갈 생각만 하고 있었더랬지. 어제는 제법 기다래진 만 다섯 살 아이와 미역국 색을 꼭 닮은 저 냇가에 돌을 던지며 놀았어.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선 까맣게 모르지만 크게 궁금해하지도 않은 채, 퐁당퐁당. 그저 넉넉하게 푸르르길 바라며, 퐁당퐁당
잘들 떠나오고 떠나가는 섬에서 그런 건 모른다는 듯 살고 있어. 얼핏 고여있는 것 같지만, 고요하게 넘실대는 중이야.
다시 여름이었어. 이보다 더 넉넉하게 미혹된 적은 없었지.
‘나는 매우 무덥다’라 써두고, ‘나는 매우 무섭다’라 읽었던 한여름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