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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NA Aug 13. 2021

숲 속의 흡혈귀

감정소품집

Love and Pain(1893-1894), Edavard Munch

1.


인간은 왜 아름다움 앞에 나약한 것일까. 남자는 생각했다. 아니 내가 나약했던 것이지. 인간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야. 남자는 다시 생각했다. 그 순간에도 남자와 여자는 말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숲 속의 바위는 모두 단단했다. 부드러운 것은 오로지 그녀의 살결뿐이었다. 바람은 차가웠고 그녀의 품은 너무나 따뜻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일제히 그녀의 반대로 방향을 돌리며 그녀를 유일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까마귀의 불길한 울음소리마저 낭만적으로 들려왔다.

아 나도 드디어 사랑이라는 것에 빠져 버렸구나. 남자는 생각했다. 남자는 늘 사랑이 두려웠다. 사랑이 존재의 틈을 발생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존재는 그곳에서 나락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모든 행복과 환희 혹은 슬픔마저 내 손에서 벗어나 통제할 수 없는 우연 속으로 내던져진다. 


2.

보이는 것이 없으니 걸을 필요도 없었다. 두 사람은 제자리에 멈춰 부둥켜안고 있다. 벌써 백 년이 지나도록. 이게 사랑이라는 걸까. 남자는 생각했다. 


3.

남자는 여자를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여자는 모든 영화 속의 흡혈귀가 그러하듯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생김새를 묘사하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매혹적인 눈빛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담한 포즈를 취하며 나른하게 내려다보는 그녀의 시선에 당당하게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 그것이 그녀가 영원이라는 벌과 함께 받은 유일한 보상이다. 


4.

지하 생활자의 눈처럼 나의 시각은 퇴화했다. 나는 두더지처럼 눈을 감고 다른 감각에 의존한다. 그녀는 향기롭지만 가끔 피비린내를 풍긴다. 그녀의 동굴 같은 입에서 뱀 같은 혓바닥이 튀어나와 내 몸을 휘젓고 돌아다닌다. 그녀와 키스를 나눌 때 그녀의 혀에서 녹슨 쇠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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