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에 만 원씩 내세요
나와 여자친구가 데이트를 하다 보면, 길거리에서 낯 뜨거운 시선들과 마주한다. 우리를 그냥 쓱 보고 지나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는 시선, 우리가 지나치길 기다렸다가 뒷모습을 훑는 시선, 때로는 우리를 보기 위해 멀리서부터 찾아와서 빤히 쳐다보는 시선이 있다. 길거리에서 보기 힘든 낯선 광경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발걸음은 빠르다. 마치 동물원에서 사자 우리에 제일 먼저 달려가는 아이들처럼.
그것은 ‘관광’의 시선이다. 그런 시선은 보통 중년 남성들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내가 지내면서 경험상 일반화할 수밖에 없는 수치다. 그런 시선이 익숙한 여자친구는 지나치기도 하지만, ‘관광’의 정도가 지나치면 한 마디를 일갈한다. 시선의 권력은 그때 약해진다. 몇몇 중년 남성은 “죄송합니다.” 라든지 자신이 결례를 저지르는 상황을 인식한다. 그때 우리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시선을 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정말 그 사람이 미친 사람이라면 나는 자리를 피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미친 사람보다 보통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혹시라도 칼에 찔리면 어쩌나, 노파심에 일갈조차 하지 않는다. 피하는 쪽은 도리어 우리다. 그러나 미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대뜸 소리부터 치는 경우가 있다. 나이도 어린놈이 어른에게 소리친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미친 사람들과 동급으로 취급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나는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은 복종과 권위란 걸 잘 알아서다.
그들의 시선을 통해 내가 확인한 것은 권위는 신기루 같다는 점이다. 이는 권력을 잃어버린 전직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감옥에 가는 경우 확인할 수 있다. 권위는 누군가를 자연스레 따르게 만드는 힘이다. 그 힘은 마치 초능력과도 같아서, 선한 쪽이든 악한 쪽이든 자기 사람을 만든다. 그러나 나는 일반적으로 권위를 동반하는 권력이 '빌린' 힘이라는 것을 안다. 권력은 임기가 끝나면 잊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이 권력자를 따르는 이유는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지, 권위에 자연스레 따르는 게 아니어서다. 나는 권력도 없이 권위만 찾는 그 사람이 불쌍하다 생각했다. 그의 권위은 곧 죽어 없어질 것이므로.
국제 커플이 되어서야 시선의 권력을 휘두르려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걷기만 하면 양 옆에서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지나가며 우리를 쳐다본다. 나는 국제 커플로 살아가며 한국에서 동양인 남성이 가지는 권위와 외국인을 보는 시선을 한 번에 확인했다. 그리고 동양인 남성, 백인 여성이 아닌 다른 인종의 커플은 어떤 대우를 받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이 지겨운 시선에 우리는 이제 커플티라도 맞춰야 할 지경이다. 10초 이상 쳐다보면 만 원씩 내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