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여러분은 절대 홀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지지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사실 그것조차도 "나는 지지받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믿음에 의해 우주가 여러분을 지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주는 여러분의 믿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믿든, 그 믿음에 맞는 현실을 경험하도록 지지할 뿐입니다. 따라서 "나는 지지받지 못한다"는 믿음을 가지면, 우주는 여러분이 지지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진실은, 여러분은 항상 완벽하게 지지받고 있으며, 그 지지는 여러분이 가장 강하게 믿고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모든 믿음에는 그것을 강화하는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믿음이 스스로를 강화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특정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독립적인 현실을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은 배우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믿음을 바꾸는 것이 어렵다"는 기본적인 믿음을 "믿음을 바꾸는 것은 쉽다"로 교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의 시대에서 여러분이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은 여전히 원하는 특정한 믿음을 경험할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믿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를 언제든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이 바로 삶의 유연성이고, 아이들이 가진 즉각적인 변화의 능력입니다. 아이들은 순간순간 믿음을 바꾸고, 경험을 바꾸며,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삶을 창조해 나갑니다.
즉, 매 순간은 ‘제로 포인트’이며, 이전 순간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단지 여러분이 그렇게 믿지 않는다면 말이죠. 이것이 핵심입니다. 여러분은 매 순간 스스로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온전히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 흥미진진한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입니다.
실제로, 여러분은 매 순간 완전히 새로운 사람입니다. 방금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지 않습니다. 거울을 보면 같은 얼굴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편리함을 위한 ‘연속성의 착각’일 뿐입니다. 사회 속에서 ‘정신이 온전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입니다. 그러나 만약 여러분이 원한다면, 그 순간순간의 차이를 극적으로 만들어 거울을 볼 때마다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과학적으로도, 의학적으로도 이와 관련된 사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중인격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한 인격이 특정한 질병(예: 암)을 가지고 있다가도, 다른 인격으로 전환되는 순간 그 질병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그 새로운 인격이 애초에 암을 가진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그 병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기 때문이죠.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얼마나 강력한 변화를 순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모습으로 즉각적으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여러분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매 순간 변화하고 있으며, 완전히 새로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도 일정한 연속성을 유지하는 믿음을 선택해왔을 뿐입니다. 그래서 겉보기에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매 순간 완전히 새로운 현실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매 순간 여러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있으며, 완전히 새로운 우주 속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변화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본래 가진 창조자의 능력입니다. 우주는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관점,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와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개념을 창조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의 아이디어, 하나의 개념, 정의의 시스템, 신념의 시스템을 창조하여 지구에서의 물리적 현실이라는 특정한 경험을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일정한 가이드라인과 매개변수를 설정했고, 그 규칙을 따르기로 모두가 동의했습니다. 그 결과, 마치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을 여러분이 실제로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의 과학자들은 흔히 "우리는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분은 뇌의 100%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 100%를 사용하여 ‘마치 10%만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매 순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10%를 선택한다.” “나는 또다시 10%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한다고 내가 정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은 선택을 통해 ‘연속성의 환상’을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언제든지 이 연속성을 깰 수 있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속한 패러다임의 신념 체계로 인해 ‘연속성을 깨뜨리는 것’은 두려운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그 개념을 ‘위험한 것’으로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연속성을 창조적으로 깨뜨리는 방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사실 예술가들이 하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술가이며, 여러분 모두가 천재입니다. “천재와 광기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중인격 장애와 같은 심리적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나 여러분이 ‘정신 이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유일한 차이는,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연속성을 깨뜨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며, 그것을 창조적으로 활용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은, 같은 일을 하지만 ‘의도적이고, 의식적으로, 예술적으로, 창조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재성과 광기의 차이입니다. 광기로 가는 길은, 자신이 연속성을 깰 수 있는 존재임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나는 연속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 순간, 그 믿음이 여러분을 제약하고, 결국은 혼란과 두려움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연속성을 깰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다면, 그 순간, 천재성과 창조성이 꽃피우게 됩니다. 핵심은 ‘스스로 연속성을 깰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이해와 수용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기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지의 영역과 친구가 되십시오. 알려지지 않은 것과 친숙해지십시오. 미지의 영역을 두려워하기보다, 그곳에서 펼쳐질 새로운 가능성을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가십시오. 여러분이 아직 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장소는, 바로 그 ‘미지’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곳으로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전력 질주하십시오.
미지를 끌어안으십시오. 그곳에는 오직 ‘더 많은 나 자신’이 있을 뿐입니다. 미지는 언제나 여러분 자신을 더 발견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만약 두렵다면, 그것은 그 미지를 두렵게 만든 여러분의 신념 체계를 돌아볼 기회입니다.
미지 그 자체는 두려움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오직 여러분이 미지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두려움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작동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미지를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연속성을 창조적으로 깨뜨리는 선택을 할 때, 여러분은 오랫동안 ‘마법’이라고 불러온 것을 진정으로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한 순간과 다음 순간이 반드시 연결될 필요가 없는 현실, 시공간이 유동적으로 변하는 현실을 경험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갑자기 어떻게 거기에 도착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장소에 있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이전에는 절대 불가능했던 짧은 시간 안에 어떤 곳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여러분이 더 이상 모든 연속적인 순간을 필수적으로 경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할 것입니다.
순간이동이라는 개념, 시간을 이동하는 개념, 다양한 삶과 평행 차원의 현실을 확장하여 인식하는 개념—
이 모든 것들은 결국 ‘연속성을 창조적으로 깨뜨릴 용기’에서 비롯됩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변화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특정한 상황에서 우연처럼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대는 ‘변혁의 시대’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더 많은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으며, 물리적 현실을 더욱 유연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현실은 매우 유동적이며, 매우 가변적입니다.
기억하세요. 그것은 단순한 환상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거울일 뿐입니다. 그것은 단지 여러분이 발산하는 것을 반영할 뿐입니다. 거울 속의 반영이 실체가 없듯이, 물리적 현실도 실체가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부여하는 의미와 신념에 의해 형태를 갖추는 것일 뿐입니다.
즉, 물리적 현실은 여러분의 정의와 믿음이 만들어낸 견고함만큼만 실재하는 것입니다. 진짜 현실은 ‘경험’입니다. 경험이 곧 현실입니다. 현실이란 곧 경험입니다. 경험 속의 도구나 배경이 현실이 아니라, 그 ‘경험’ 그 자체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무엇’인지, 여러분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그 모든 것이 ‘경험’ 속에 존재합니다. 여러분은 의식을 가진 존재이며, 그 의식은 가능한 모든 관점에서 스스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의식이 스스로를 가능한 모든 관점에서 경험하는 것 그것이 현실이며, 그것이 창조의 본질입니다.
이 개념을 이해하고, 연속성을 깨뜨릴 용기를 가질 때, 여러분은 이전에는 물리적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무한한 가능성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물리적 현실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말해왔으며, 필요하다면 다시 강조하겠습니다. 차원의 이동, 의식의 상승, 다른 현실로의 전환— 이 모든 것은 결국 여러분이 깨닫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즉, 여러분은 더 이상 ‘물리적 현실 안에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 여러분이 바로 ‘그 현실 자체’라는 것. 여러분이 이전까지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현실 자체가 사실은 ‘여러분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상승의 본질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은 물리적 현실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곧 물리적 현실입니다. 그것은 단지 여러분의 의식의 연장일 뿐입니다. 그것은 단지 여러분의 경험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온전히 깨닫게 될 때, 여러분은 물리적 현실의 본질을 완전히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에 대한 개념을 확장할 때, 여러분은 ‘현실’에 대한 개념 또한 확장된 방식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이, 여러분이 ‘상승(Ascension)’ 또는 ‘발전(Advancement)', ‘성장(Growth)’, 혹은 ‘확장(Expansion)’이라고 부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는 그렇게 배우고 익숙해진 개념에 따라, ‘물리적 현실’이란 여러분이 존재하는 하나의 ‘공간’ 또는 ‘차원’이라고 여깁니다. 즉, 여러분은 물리적 현실이라는 차원 안에서 개별적인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여러분이 물리적 현실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현실이 여러분 ‘안’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물리적 현실은 단지 ‘하나의 개념’일 뿐입니다.
실제로 ‘밖’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밖(out there)’이라는 개념 자체가 환영(illusion)입니다. 그것은 단지 투영(projection)일 뿐입니다. 모든 것은 오직 여러분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물리적 현실 안에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물리적 현실이 여러분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 순간, 그 ‘자각(Awareness)’ 자체가 곧 확장(Expansion)과 상승(Ascension)의 경험인 것입니다. 즉, 이 깨달음의 순간이 곧 여러분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으로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_바샤의 말
교황선출 과정에 대해 다룬 영화 '콘클라베'를 딸들과 함께 보고 왔습니다. 교황 후보권과 선출권을 가진 100여명의 추기경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상과 격리된 채 과반수가 넘는 득표를 얻는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투표를 계속합니다. 전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추기경들이 모여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이 물리적 현실 세계의 축소판과도 같았습니다.
수녀인 여성의 역할을 보조자로 제한하는 오래되고 강력한 종교 조직의 모습은 어쩌면 이 현실세계를 대변하는 가장 근본적이고도 오래된 믿음체계이자 가장 경직되고 낙후된 시스템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직자의 근엄한 권위를 두른 그들은 권력추구와 사익을 추구하는 집단, 제 3세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력, 타종교와 낙태 등 변화와 다양성을 거부하는 집단, 혹은 이를 옹호하는 세력으로 나누어져 자신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이를 교황으로 선출하려고 합니다.
큰 득표수를 얻었던 이들이 하나 하나 자격을 박탈당하고 결국 의외의 인물이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현실의 모습을 충실히 그렸지만 약간은 판타지같은 의외의 인물을 선택한 것은 성직자의 근원인 사랑과 인류애로 돌아가라는 작가의 간절한 요청이었을까요? 아니면, 아직은 종교라는 오래된 시스템에 희망을 걸어보겠다는 희망의 표현이었을까요? 영화의 결말에는 이 근엄한 현실세계의 믿음체계와 권력을 대표하는 조직에게 근원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영화 이야기가 이 현실세계의 권력체계, 경제구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딸이 말합니다.
"엄마가 사회초년생일때는 언젠가는 집을 사고 자산을 쌓아가리라는 믿음이 있었지? 지금은 부가 너무 일방적으로 소수에게만 집중되고 다수는 점점 더 가난해지는 구조라서 이 세계에 대한 희망이 별로 안보이네. 백살이 넘도록 살면서 경제적으로 안전하게 살아가리라는 확신이 잘 안들어."
딸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다수가 점점 더 가난해지는 세상에 대한 믿음체계를 가지고 있으면 세상살이가 점점 더 고달프게 여겨질 것 같아 이를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샤는 우리의 믿음체계대로 우리가 현실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어. 그리고 우리는 원래 풍요로움을 타고 났다고도 했지. 아직은 답을 모르겠지만 다수가 함께 잘사는 세상, 아무도 결핍되게 살지않아도 되는 지속가능한 세상이 올 수 있다고 믿어보자."
딸은 현실세계인 경제를 이야기하는데 왜 갑자기 영성을 들이미느냐고 황당해합니다. 하지만, 이 물리적 현실은 내 의식의 연장, 내 믿음체계의 연장임을 모두가 믿는다면 풍요로움이 사회의 기본 구조가 되는 물리적 현실세계가 우리의 미래로 나타날 수 있겠지요.
내가 믿고, 우리 딸들이 믿고, 여러분이 믿는다면 우리는 결핍이 아닌, 풍요로움의 세계를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의식 하나 하나가 모여 함께 창조해나가는 현실세계이니까요. 영화 '콘클라베'의 새로운 교황은 여성성과 남성성, 분쟁 속에 피어난 인류애와 사랑을 대표하는 인물이자 우리 모두의 소망을 대변하는 인물입니다. 영화 속 통합된 새로운 교황을 꿈꾸는 것처럼 나역시 이 글에서 모두가 풍요로운 새로운 미래를 꿈꿔봅니다.
정치와 사회, 경제 구조 속에서 오래되고 낡은 시스템들이 삐걱거리며 새로운 시스템, 새로운 구조가 나타나야 할 때임을 알려줍니다. 이미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세상의 엔진과 바퀴들을 발견해내고 발명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같은 꿈을 모두 함께 꿔서 그 현실을 빨리 실현시킵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