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복
카페
[스페인은 그리움이다] 책 표지와 안의 내용 그리고 삽화만으로도 벌써 스페인 현지 여행을 온듯한 착각에 빠지는 글 ,, 아주 전문가의 필체는 아니지만 나름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한 일가견과 식견을 가지고서 현지에 접한다.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본 내용이고 도시 곳곳에서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중세의 고딕 양식부터 바로코 양식 그리고 문화도 그리스도와 가톨릭 ,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이 섞여 탄생한 조각상과 도시 들은 세계 문화유산에 올려놓을 만한 이류를 무색게 한다.
한 인물의 일대기가 아닌 여러 세대에 걸쳐 완성된 혹은 지금도 작품을 구가하고 있는 가우디의 도시 건축은 대를 이은 혹은 세대를 어어온 문화유산 그 자체가 아닐까 ,,,
도시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가보지 않아도 알법한 바르셀로나 , 코르도바, 그라나다의 일함 브라 궁전 ㅡ 론더의 투우사 ,, 그리고 올리브 나무의 검은 지평선이 펼쳐져 잇는 안달루시아 그리고 흰 핵 빛이 고색 찬란한 미하스 꺼지 ,,
다시 도시로 돌아와 곳곳에 펼쳐진 프라도 미술과관 별도의 피카소 미술관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더욱 격상시킨다.
세비야의 플라멩코를 보라 , 집시의 애절한 음색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수반 세게의 역사... 어린 시절 돈키호테 명작 동화를 읽어본 사람은 저절로 고향에 온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라만차 풍차와 나지막한 기와의 집들...
마지막으로 그 깊은 협곡에서 수도원을 만들어 세상과의 벽을 세운 , 그러나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구원과 신의 답신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곳 몬 테라토 수도원.
도시 곳곳과 보는 성당과 건축물들 자체가 하나의 역사 교과서이다. 아니 살아 잇는 문화이다. 바닥돌 하나하나에도 500여 년 이상의 숨결이 씌워져 있다...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엤 전통을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들 , 그리고 그런 자부심 위해 세워진 도시들 ,,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축이자 , 한때는 미주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마을 이기도 했던 세비야 그리고 톨레도...
몇 년 사이에 두고 혹은 10여 년을 사이에 두고 다시 방문하더라도 그라나다 알함브라의 궁전의 기억은 쉬이 잊어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혹은 바르셀로나의 도시 야경과 론도의 투우장의 모습 또한 사람들의 뇌 레에 오래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
스페인은 그리움이다라는 책의 부제처럼 늘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ㅡ 다시금 돌아오는 반복적인 생에서 이따금 다시 한번 찾아가 볼 수 있는 로망이 있는 것 또한 정신 건강에 혹은 육체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책력 거 99 적다.
아래 스페인 내전은 별도 Tip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Value Up Tip : 스페인 내전 , 프랑코 등.
스페인 내전(스페인어: Guerra Civil Española, 문화어: 에스파냐 공민 전쟁)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스페인의 내전이다.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고,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인 국제 여단이 반파시즘 진영인 인민 전선을 지원하고, 파시스트 진영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 그리고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집권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프랑 코파를 지원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띠었다. 아울러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 교회[주해 1]와 왕당파는 프랑 코파를 지원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공화국 정부에 군수 물자를 지원하였으나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이유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스페인 제2공화국과 지원국 소련 측에는 비행기를, 스페인 반군 측에는 가솔린을 팔았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레콘키스타와 로마 가톨릭 교회 외의 종교들을 탄압한 스페인 종교재판으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중세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왕정과 특권화 된 로마 가톨릭 교회를 탄생시켰다.
레콘키스타란 718년부터 1492년까지 무려 774년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스페인의 전신(前身)인 카스티야 왕국 와 아라곤 왕국은 당시 무어인을 상대로 770년간 전쟁을 벌였다. [1] 레콘키스타가 완료된 후 스페인 왕국은 스스로를 로마 가톨릭의 수호자라 자처하였으며, 교황에게 요청하여 국왕이 종교재판을 관할하는 특혜를 얻었다. 1834년 이사벨 2세가 중지할 때까지 스페인 종교 재판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였다. [2]
스페인 제국은 오랜 전쟁과 종교 재판의 지속으로 봉건 군국주의적인 성격을 뗬다. 중세 후기 1,400만 명이었던 스페인의 인구는 18세기 후반 700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도 스페인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토지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경제구조가 원인인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했다. [3] 이에 더해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에 반발하는 지역주의 운동이 16세기 이래 계속되고 있었다. [주해 2] 이러한 갈등은 결국 왕정 종식의 요구로 이어졌고 1873년 스페인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3]
스페인 제1공화국은 분리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제를 표방하였으나,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스페인 내 각 지역의 분리 독립운동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쿠바에서 무장 독립 투쟁이 발생하자 스페인 연방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였다. 분리주의 운동과 더불어 갈등을 겪으면서 군부가 세력을 키우게 되었다. 1874년 1월 2일, 마드리드의 군사 총독 파비아 장군은 의회를 해산시켰다. 이로써 스페인 제1공화국은 군부 독재로 변질되었다. [4]
[스페인은 그리움이다] 책 표지와 안의 내용 그리고 삽화만으로도 벌써 스페인 현지 여행을 온듯한 착각에 빠지는 글 ,, 아주 전문가의 필체는 아니지만 나름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한 일가견과 식견을 가지고서 현지에 접한다.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본 내용이고 도시 곳곳에서 에너지가 넘쳐흐른다. 중세의 고딕 양식부터 바로코 양식 그리고 문화도 그리스도와 가톨릭 ,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이 섞여 탄생한 조각상과 도시 들은 세계 문화유산에 올려놓을 만한 이류를 무색게 한다.
한 인물의 일대기가 아닌 여러 세대에 걸쳐 완성된 혹은 지금도 작품을 구가하고 있는 가우디의 도시 건축은 대를 이은 혹은 세대를 어어온 문화유산 그 자체가 아닐까 ,,,
도시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가보지 않아도 알법한 바르셀로나 , 코르도바, 그라나다의 일함 브라 궁전 ㅡ 론더의 투우사 ,, 그리고 올리브 나무의 검은 지평선이 펼쳐져 잇는 안달루시아 그리고 흰 핵 빛이 고색 찬란한 미하스 꺼지 ,,
다시 도시로 돌아와 곳곳에 펼쳐진 프라도 미술과관 별도의 피카소 미술관은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를 더욱 격상시킨다.
세비야의 플라멩코를 보라 , 집시의 애절한 음색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수반 세게의 역사... 어린 시절 돈키호테 명작 동화를 읽어본 사람은 저절로 고향에 온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라만차 풍차와 나지막한 기와의 집들...
마지막으로 그 깊은 협곡에서 수도원을 만들어 세상과의 벽을 세운 , 그러나 지금은 세상 사람들이 구원과 신의 답신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곳 몬 테라토 수도원.
도시 곳곳과 보는 성당과 건축물들 자체가 하나의 역사 교과서이다. 아니 살아 잇는 문화이다. 바닥돌 하나하나에도 500여 년 이상의 숨결이 씌워져 있다... 불편함을 감내하면서도 엤 전통을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들 , 그리고 그런 자부심 위해 세워진 도시들 ,, 이베리아 반도의 중심축이자 , 한때는 미주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마을 이기도 했던 세비야 그리고 톨레도...
몇 년 사이에 두고 혹은 10여 년을 사이에 두고 다시 방문하더라도 그라나다 알함브라의 궁전의 기억은 쉬이 잊어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혹은 바르셀로나의 도시 야경과 론도의 투우장의 모습 또한 사람들의 뇌 레에 오래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
스페인은 그리움이다라는 책의 부제처럼 늘 우리는 어디론가 떠나고 ㅡ 다시금 돌아오는 반복적인 생에서 이따금 다시 한번 찾아가 볼 수 있는 로망이 있는 것 또한 정신 건강에 혹은 육체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다 ,,,,책력 거 99 적다.
아래 스페인 내전은 별도 Tip을 통해서 알아보도록 한다.
Value Up Tip : 스페인 내전 , 프랑코 등.
스페인 내전(스페인어: Guerra Civil Espanola, 문화어: 에스파냐 공민 전쟁)은 마누엘 아사냐가 이끄는 좌파 인민전선 정부와 프란시스코 프랑코를 중심으로 한 우파 반란군 사이에 있었던 스페인의 내전이다.
1936년 7월 17일 모로코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내전이 시작되었고, 1939년 4월 1일에 공화파 정부가 마드리드에서 항복하여 프랑코 측의 승리로 끝났다. 내전으로 인해 스페인 전 지역이 황폐화되었다.
소비에트 연방과 각국에서 모여든 의용군인 국제 여단이 반파시즘 진영인 인민 전선을 지원하고, 파시스트 진영인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 정권, 그리고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가 집권하고 있던 포르투갈이 프랑 코파를 지원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초전 양상을 띠었다. 아울러 스페인의 로마 가톨릭 교회[주해 1]와 왕당파는 프랑 코파를 지원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공화국 정부에 군수 물자를 지원하였으나 국제 연맹의 불간섭 조약을 이유로 스페인 정부에 대한 지원에 미온적이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중립을 표방했지만, 스페인 제2공화국과 지원국 소련 측에는 비행기를, 스페인 반군 측에는 가솔린을 팔았다.
이슬람 세력을 몰아낸 레콘키스타와 로마 가톨릭 교회 외의 종교들을 탄압한 스페인 종교재판으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중세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왕정과 특권화 된 로마 가톨릭 교회를 탄생시켰다.
레콘키스타란 718년부터 1492년까지 무려 774년에 걸쳐서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로마 가톨릭 왕국들이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이슬람 국가를 축출하고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스페인의 전신(前身)인 카스티야 왕국 와 아라곤 왕국은 당시 무어인을 상대로 770년간 전쟁을 벌였다. [1] 레콘키스타가 완료된 후 스페인 왕국은 스스로를 로마 가톨릭의 수호자라 자처하였으며, 교황에게 요청하여 국왕이 종교재판을 관할하는 특혜를 얻었다. 1834년 이사벨 2세가 중지할 때까지 스페인 종교 재판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였다. [2]
스페인 제국은 오랜 전쟁과 종교 재판의 지속으로 봉건 군국주의적인 성격을 뗬다. 중세 후기 1,400만 명이었던 스페인의 인구는 18세기 후반 700만 명으로 감소하였다. 20세기 초반에 이르러서도 스페인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토지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경제구조가 원인인 빈부의 격차가 극에 달했다. [3] 이에 더해 카스티야-아라곤 연합왕국에 반발하는 지역주의 운동이 16세기 이래 계속되고 있었다. [주해 2] 이러한 갈등은 결국 왕정 종식의 요구로 이어졌고 1873년 스페인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3]
스페인 제1공화국은 분리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제를 표방하였으나,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스페인 내 각 지역의 분리 독립운동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쿠바에서 무장 독립 투쟁이 발생하자 스페인 연방 정부는 군대를 파견하였다. 분리주의 운동과 더불어 갈등을 겪으면서 군부가 세력을 키우게 되었다. 1874년 1월 2일, 마드리드의 군사 총독 파비아 장군은 의회를 해산시켰다. 이로써 스페인 제1공화국은 군부 독재로 변질되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