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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est cyclist Feb 09. 2019

나는 AB형이었다

현직 B형이 밝히는 AB형 체험기


 얼마 전 엄마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내 출생증명서였다. 그것으로 케케묵은 억울함이 풀렸다. 나는 진짜 AB형이었던 거다. 지금은 B형이지만. 


 내가 B형인지 알게 된 건 스물 한 살이었나, 헌혈할 때 였다. 간호사 선생님은 혈액형을 물었고 난 AB형이라고 했다. 피를 유리에 묻히더니 ‘네, B형이네요.’하고 수혈팩에 ‘B형’이라고 적었다. 혼란스러웠다. 문과였지만 B형 환자에게 AB형 혈액이 들어가면 죽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다음 날 눈 뜨자마자 보건소에 가서 혈액형을 검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의 혈액형 검사가 그렇게 흔할 것 같지는 않은데, 담당자는 역시나 또 감흥없이 1분만에 B형 판정을 내렸다. 억울한 역사의 시작이었다. 


 아무도 안 믿어줬다. 혈액형이 어떻게 바뀌냐고 했다. 그거야 나도 모르지. 뭐 다행히 드라마는 없었다. AB형에서 B형으로 바뀐 거니 출생의 비밀 같은 건 있을리 없었다. 내 피가 다 바뀌어도 일상에 변함은 없었다. 하지만 난 답답했다. 분명 내가 AB형으로 알고 있는 이유가 있었다. 엄마도 옛날에 그렇게 말했고, 결과지는 다 어디로 사라졌지만 학교 다니면서 받은 그 수많은 건강검진은?  


 과학적으로 혈액형과 성격은 관련이 없다. 그리고 난 문과다. 그래!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내 성격이 이유없이 많이 바뀌기는 했다! 그 때는 남들한테 인정받는 직장을 다니며 큰 돈을 벌 거라고 생각했다. 원치 않아도 성격 상 어쩔 수 없이 그런 길을 걸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많은 문학이 가르치듯,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지만 행복하지 않아도 나는 자본의 항로를 따르리라 생각했다. 


 나는 와이파이도 없는 내 원룸에서 음악을 듣는다. 좀 멍한 상태로 출근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입사한지 10개월이 되어가는 꼬꼬마지만 아직까지 회사 가기 싫은 적은 없었다. 늘 짜릿해. 재밌다. 가끔 따릉이를 타고 영화관에서 가서 혼자 심야영화를 보고, 친구들을 집에 불러들여서 술을 마신다. 같이 마신 와인 코르크에 이름과 날짜를 남기고 어딘가에 쌓아둔다. 밖에서 마시면 훨씬 비쌌을 거라면서 가끔 좋은 와인도 마신다. 


 요즘애들(나)는 열정이 없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담보 잡히는 삶은 싫다. 난 늘 내일을 위해 오늘 밤을 고통스럽게 지새우는 삶을 살거라고 예견했는데. 늘 내 능력 이상을 요구한 치열한 입시에서 벗어나고 학교를 떠나 혼자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니 나도 몰랐던 관성이 올라오나보다. 늘 사랑받고야 싶지만, 대단하다는 이유로 사랑받고 싶지는 않다. 여유있게 매력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여러분, B형은 소박하다. AB형이었던 내가 안다. 


  

Photo by Erol Ahme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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