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입문기 7.
1부 완제가 끝났다. 1부의 주제는 '인신매매'다.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극악 범죄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범죄 자체보다는 범죄가 가진 시대적 맥락을 탐구해보고 싶었고, '범죄의 사회사'를 주제로 한 기사를 검색하다가 80년대 횡행했던 인신매매에 관심을 갖고 스크랩해 두었다가 언젠가 90년대 후반생인 막내 작가와 밥을 먹으러 가다 나눈 대화에서 이 주제를 꼭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PD님, 90년대 패션이 지금도 유행하는데 그때가 좋아요? 지금이 좋아요?"
(뭔가 멋있는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멋있는 사람이 아니므로....)
"아이고 이 양반이 클날 소리 하시네. 그때는 아주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고 길거리에서 마누라 때리고, 지금은 MZ세대가 이기적이니 이상하니 해도 조금은 문명화되었죠. 님, 옛날에 봉고차로 여자들 잡아가던 거 모르죠?"
"봉고차? 그게 뭐예요?",
"아이 이 아이템 해야겠네."
이 주제를 다루는 나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옛날처럼 여성들을 백주대로에서 잡아가는 일은 없어졌지만, 정말로 여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왔는가." <PD수첩> "문고리를 흔드는 손"을 연출할 때, 1인 여성가구의 안전 실태를 취재한 적이 있다.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하고, 선팅 필름으로 창문을 막고, 문 앞에는 남자 신발을 놓고 '곽두팔'의 이름으로 택배를 받고 있었다. 내게는 이런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보다도 내게 주어진 사회적 기득권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 무지를 자각함으로써 오는 충격이 더 컸다. 한 사회의 절반이 공포로 숨죽이며 사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세상은 절름발이 세상이다.
사람이 어떤 이론적 태도로 대오각성하는 일은 드물다고 본다. 오히려 직접적 경험이나 분노나 연민과 같은 일상적 감정을 통해서 스스로 잘못된 생각을 깨닫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소위 2030 여성들이 '극혐'한다는 '중년 한남'이지만, '극혐'의 이유를 인지하고 연대의 감정을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파업과 유배 과정을 통해서 이 사회에서 약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른다. 관련 서적이라고는 학부 때 읽어본 벨 훅스의 입문서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생물학적 차이로 주어지는 불리한 여건은 사회적 조건과 관계로서 극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신체적 우월성을 빌미로 벌어진 범죄는 특별히 가중처벌해야 하고, 동성 간 결혼에 찬성하고, 생리대 같은 위생용품은 사회적 비용으로 소화해서 국가에서 지급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데이트 비용으로 5천원을 내면, 여자친구도 5천원을 내서, 만원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더치 페이 사회가 공정이고 정의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기획안에는 '여성 인권의 현주소를 묻겠다'라고 거창하게 썼지만, 나는 이 다큐를 본 젊은 사람들이 '봉고차로 사람을 상품처럼 팔아넘기던 시대'가 엄존했음을 깨닫고, 현재를 반추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사고할 수 있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