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체를 속여 두려움을 없앤다
새로운 일을 마주할 때 우리는 판단한다. 싸우거나 도망친다. 둘 중에 하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지. 할 수 있다면 맞서 싸우고 할 수 없다면 바로 도망친다. 예전에는 애들이 푸는 산수 문제는 쉽게 풀고 가르쳐 줄 수 있었다. 만만하기에 쉽게 싸워볼 만한 상대였다. 지금은 수학문제를 들고 오면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다. 내가 머리 써봤자 풀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답을 보고 푸는 과정을 이해한다면 알려줄 수 있지만 힘이 많이 든다. 이럴 땐 도망치는 것이 현명하다고 뇌는 판단한다.
원시 시대부터 생존의 방식은 싸우거나 도망치는 것이었다. 나보다 힘이 세고 날카로운 발톱의 맹수는 보자마자 도망쳐야 할 상대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으면 이미 늦다. 그런 방식의 인류는 생존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지금 호모사피엔스는 그 판단을 잽싸게 할 수 있는 인류다. 잽싸게 판단해서 싸워서 쟁취하거나 도망쳐서 살아남았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금도 똑같이 적용된다. 직장 상사, 카드빚, 운전 중 다른 차와의 신경전, 동료와의 갈등 모든 게 싸워야 할 상대다. 맞닥뜨렸을 때 싸울 수 없다면 꼬리를 내려야 생존한다.
이런 판단을 하는 곳이 대뇌변연계의 편도체다. 편도체는 감정을 관장하는 곳으로 공포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는 곳이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되면 모든 이성적인 사고를 멈추고 편도체가 두 팔 걷고 나선다. 반면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곳은 대뇌피질이다. 대뇌피질은 뇌를 감싸고 있는 껍질 부위를 말한다. 뇌 부위 중 가장 늦게 발달한 곳으로 이곳에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행하는 등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 모든 일에 목소리는 편도체가 제일 크다. 두려움, 공포와 같은 감정은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호기 때문이다. 발표에 앞서 공포가 밀려오면 그동안 연습했던 내용들이 까맣게 생각나지 않는다. 편도체가 무대에 선다는 행동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여 대뇌피질을 꽉 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뤄야 할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활동이다. 이성적인 사고를 해야 현재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이는 대뇌피질이 잘 발달되어 있을수록 원활하게 작동된다. 하지만 해야 할 일에 압도되거나 실패할지 모른다는 마음이 들면 즉시 편도체가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그 힘이 커지면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되며 우리는 싸우지 않고 도망치는 것을 선택한다. 좋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두려움(편도체 작동)은 대뇌피질을 마비시킨다. 작은 결과는 두려움(편도체 미작동)을 작게 만들어 대뇌피질을 정상 작동시켜 해내게 한다. 편도체의 기능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를 멈춰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편도체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는 작게 시작한다. 어려운 과제,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등 그 크기에 압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건강을 위해 러닝머신을 하기로 했다면 1시간을 목표로 하지 않고 5분만 달린다. 매일 5분만 달리는 것은 힘들지 않다. 5분이 운동이 되겠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처음에는 편도체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 작게 시작해서 두려움을 없애고 매일 성공의 경험을 얻어 시간을 늘려가면 된다. 5분이 10분이 되고 30분이 된다. 두려움에 도망치는 것보다 시작이라도 하는 게 낫다.
워크래프트 게임에서는 처음 시작하는 유저에게 많은 보상을 준다. 아직 게임이 서툰 유저를 위해 아이템과 레벨을 쉽게 올려 시작의 저항을 줄여준다. 이때 뇌는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네라고 느끼며 게임을 지속할 수 있다. 또한 1개월 무료 서비스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첫 달부터 사용료를 내지 않고 시작할 수 있도록 부담을 줄여준다. 그리고 사용할 만한 서비스라고 느끼게 하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한다. 이런 마케팅 역시 편도체의 저항을 줄이는 영업전략이다.
나는 한때 스마트 팜에 관심을 가졌었다. 기후 변화와 건강한 먹거리를 원하는 수요가 커지고 있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스마트 팜이 미래산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시작은 집에서 간단한 작물부터 심고 길러보는 것이었다. 가전회사에서 판매하는 미니 스마트팜을 와이프에게 얘기했다가 바로 반려당했다. 그래서 우선 새싹삼을 구매해 스티로폼에 심어 키우기 시작했다. 설명서에 있는 대로 물을 주고 키워보았지만 모두 썩어 죽어버렸다. 무더운 여름이라 온도와 물 조절에 실패했던 것이다.
와이프는 평생 식물을 키워본 적 없는 남편이 열심히 키우는 것이 기특했는지 중고로 미니 스마트팜 기기를 사 왔다. 휴대폰 앱을 통해 빛을 쪼이는 시간과 밝기를 조절하고 물 수위 조절과 청소 알람을 해주니 관리가 편리했다. 그리고 씨앗이 싹을 틔우고 풍성하게 자라니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고 수확을 통해 건강한 먹거리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미니 스마트팜이 3대다. 와이프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더 큰 스마트 팜을 구매하려고 한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라는 말이 생각난다. 집이 스마트 팜 농장이 될 것 같다.
이렇듯 우리는 큰 일을 하기 위해 그 일을 작게 시작할 필요가 있다. 뇌가 일의 크기와 중요성에 놀라 도망치지 않고 한번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속여서 하나씩 실행하게 해서 결국에는 성공을 거두게 하는 전략인 것이다. 우보천리(牛步千里), 마보십리(馬步十里)라는 말이 있다. 느린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가고 말의 빠른 다리로 십리밖에 못 간다는 말이다. 느리지만 한 걸음씩 가다 보면 언젠가 천리를 가있는 우리를 만날 수 있다. 반면에 의지에 불타 전속력으로 달리지만 이내 지쳐 포기할 수도 있다. 큰 목표일수록 소의 걸음으로 천천히 한 걸음씩 작게 만들어 시작하는 현명한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