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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20. 2018

풀 세팅, 풀 착장 병

초보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들

초보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  

저는 풀 세팅, 풀 착장 하는 병이 있었어요. 뭐에 꽂히면, 그에 관련된 걸 모두 사고 시작합니다. 주로 삽질하는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 일단 다 사고 봅니다. 제과 제빵에 관심이 있을 땐 전자저울, 빵 틀, 쿠키 틀, 파이 틀, 파운드케이크 틀, 식빵 틀, 피자 팬 다 샀어요. 심지어 이스트도 국산, 프랑스산 다 사요. 막상 구우면, 먹을 사람이 없어 제가 다 먹어요. 그러다 보니 너무 뚱뚱해져서 이젠 굽지 않습니다.


양재도 그래요. 갑자기 어느 날 옷 만들어 입기에 꽂혀 재봉틀과 오버 로크 머신과 재봉 책과 초크와 줄자와 가위를 다 삽니다. 재봉틀에 들어가는 노루발도 종류별로 다 사요. 기계는 좋은 걸 사야 한며 비싼 걸 사요. 그리고는 만든 게 하나도 없어요. 양재는 시간과 노력이 엄청 필요한 거더라고요. 아직도 재봉틀과 오버 로크 머신은 자리만 차지하고 그냥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괴감으로 몸부림쳐요. 세상에,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하겠다고 해 놓고, 잔뜩 재료부터 사고, 결국은 또 다 버리고. 버릴 때가 더 괴로워요. 아껴 써도 시원치 않을 지구에 펑펑 낭비하는 죄를 지은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젠 잘 안 삽니다. 스스로 인내심이 없는 걸 인정하고, 일단 있는 거로 시작해요. 진짜로 열심히 하면 그때 사요.  


글쓰기에 꽂혀 뭔가 쓰자는 마음을 먹었을 땐, 굴러다니는 노트를 모아 130장짜리 습작 노트를 만들었어요. 다 쓰면 새 걸 사자. 하고요. 130장짜리 노트를 글씨로 다 채우고, 새 걸 사러 갔어요. 기분이 얼마나 좋던지요. 굴러다니는 만년필을 모아 팔레트를 만들었어요. 새벽마다 만년필로 쓰는 제 습작 노트는 벌써 세 권 째 채워지고 있고요. 그래도 이런 삽질의 경험을 통해, 통제하는 법을 훈련합니다. ‘행복한 삶이란 절제를 통한 명석한 판단을 통해 가능하다.’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씀하셨어요. 저도 좀 더 초연해진 마음을 느낍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 소파에 누워 하늘을 보면, 생각이 구름따라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얼마 전 식물 200여 개를 한 번에 들였다가 모조리 죽인 어떤 분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분은 아마도 다시 식물을 키우는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거예요. 식물은 사다 놓는 그 순간부터 관리가 필요해요. 내 공간 안에서 보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데려왔으니, 외롭지 않게 밥도 주고 물도 주고 마음도 줘야 해요. 공감하고 알아봐 줄 때 식물도 공간에 적응하고, 씩씩하게 자랍니다.  


같은 종류끼리 여러 개를 키워보는 것도 좋습니다. 일이 만 원어치 구입해서, 공간마다 배치해 보세요. 어디서는 잘 자라고, 어디서는 시들시들 한지 경험으로 알 수 있어요. 잘 자라는 곳에는 그 식물, 그 식물과 모양이 비슷한 애들을 놓아주는 방식으로 한 개씩 한 개씩 알아 가는 거예요. 단, 처음 집에 데려온 식물들을 너무 예뻐하지 마세요. 지나친 관심은 식물에게 독이 됩니다. 무심한 듯 친절한 정도가 좋아요. 늘 문제가 되는 건 갑자기 자주 주는 물이에요. 절대, 그러시면 안 됩니다. 습한 건 절대 금물입니다.


시작할 때에도 차라리 물 주고, 영양분 주고 관리하는 것은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어요. 그런데, 분갈이는 조금 더 도전이 필요했고, 스타일링은 과연 완성이 있을까 싶을 만큼 여전히 어려워요. 식물은 계속 자라기도 하고, 새로운 애들을 계속 데려오니 가장 아름다운 최적의 지점이 계속 달라져요. 인테리어와 동선까지 고려하면 복잡한 수학 방정식 같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 싶으시면, 전문가에게 SOS 치시길 권해요.   


최선을 다했는데 혹시 세상을 떠났다 해도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 아무리 잘 해줘도 식물은 죽을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생명체니까요. 그렇지만, 물을 안 줘 말려 죽이는 건 안 됩니다. 나의 게으름으로 생명을 소멸시키는 건 좀 너무 한 것 같아요. 사랑받고 있는 생명체는 반짝반짝해요. 나와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환하게 빛나는 것.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사랑 많이 받은 식물들을 만나길 바라며, '반려식물 200개 온실 같은 집'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싱싱한 식물의 에너지를 전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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