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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Jun 13. 2018

공간을 살리는 식물의 힘

식물이 살리는 데드 스페이스

이끼 낀 선큰을 되살리기 

작년 가을, 회색 벽돌이 깔린 바닥 채 방치되어 이끼가 끼기 시작하는 선큰 공간을 살려 쓰자 마음먹었어요. ‘미세먼지가 이렇게 심한데 피크닉이 웬 말이야.’ 하는 냉소적인 태도를 버리고 ‘잠시 잠깐 좋은 공기일 때라도 충분히 즐기자.’라고 마음을 바꿨어요. 나중에 피크닉도 가고, 나중에 바비큐도 해야지. 하면 그 나중이 결국은 잘 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나중 말고 그냥 지금 하기로 했어요.  


외면하고 들여다보지 않았던 선큰에는 그사이 이끼가 두꺼워지고 있었습니다. 이끼를 벗기려고 물에 불리니 시궁창 냄새 같은 악취가 나요. 이런 건 피해갈 방법이 없습니다. 정면 돌파. 아들과 둘이 쇠수세미와 솔을 들고 락스를 몇 방울 떨어뜨려 박박 벗겨냅니다. 우리 손이 지나갈 때마다 이끼는 벗겨지고, 벽돌은 다시 원래의 색깔을 되찾아요.  


걸으면 몇 발자국 안 되는 콩알만 한 공간이지만, 쇠솔을 들고 쭈그리고 앉아 이끼를 벗기니 해도 해도 끝이 안나는 거예요. 벽돌 사이사이 솔질하는 수고로운 청소였지만, 이끼가 다 벗겨지고 나니 성취감이 굉장합니다. 시궁창 냄새 대신 보송보송한 햇빛 냄새가 가득 찬 선큰 공간이 되었어요. 선큰에 나갈 때마다 아들은 “엄마, 이거 우리가 청소했지.”하고 뿌듯한 얼굴로 말합니다.  


뽀얗게 단장한 선큰은 ‘여기서 뭘 좀 해 줘’하고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아요. 뭐가 좋을까. 나무가 나란히 있으면 좋겠는데. 측백나무라면 괜찮겠지. 마음이 바뀌면 위치를 옮길 수 있도록 화분에 심기로 합니다. 여주에 있는 농장에 좋은 측백나무가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요. 차에 싣고 오는데, 나무만 오는 게 아니라 나무에 딸린 무당벌레, 거미, 개미가 다 같이 한꺼번에 이사 오는 거예요.  


자연이 좋다며 호기롭게 산속에서 살자던 아들은 나무에서 거미가 드르륵 줄 타고 내려오니 무섭다고 울더라고요. 가던 차 멈추고 자리를 바꿔 앉아 다시 출발했습니다. 덕분에 우린 떠올릴 추억 한 자락이 생겼습니다. 나무를 볼 때마다 무당벌레, 개미, 거미를 싣고 달구지처럼 타고 오던 그 순간이 떠올라 재미있어요.  

왼쪽 ) 측백나무 여섯 그루가 살린 선큰. 오른쪽 사진과 같은 공간이에요. 커보이지만, 사실은 몇 걸음 안 되는 공간입니다.
선큰에서 찍은 하늘 사진. 이런 날이 자주 오지 않으니 더 귀해졌어요. 오른쪽은 식물을 그려 공간을 살린 하동 벽화마을이에요.
측백나무 여섯 그루가 살린 선큰


나무에는 초록색과 선명한 대비를 주는 흰색 화분이 예쁩니다. 흙 색깔과 비슷한 둥근 화분을 사다 여덟 그루의 나무를 심었어요. 가족의 도움 없이는 힘든 일입니다. 혼자 하면 나무가 화분 중심에 서지 않아 삐딱해져요. 화분 하나에 50 리터짜리 흙이 두 봉지 들어가는 힘든 일이에요. 남편이 적극적으로 도와 얼른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분갈이 많이 해 본 남편 솜씨는 이제 꽤 숙련된 조교 같아요.  


남편과 아들의 수고에 힘입어 예쁜 화분에 심어주고, 깨끗한 선큰에 조르륵 세우니 마음에 들어요. 이사하고 일 년이 넘도록 잘 나가지도 않던 공간인데, 새파랗게 빛나는 측백나무가 있으니 자꾸 밖에 나가게 되는 거예요. 나무 몇 그루 가져다 놓았다고 자꾸 나가고 싶으니, 참 신기하지요. 식물은 죽은 공간을 살리는 힘이 있어요. 내친김에 잘 어울리는 캠핑 테이블과 의자도 가져다 놓기로 합니다.  


측백나무 여섯 그루가 살려 낸 공간을 보며, 식물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남편은 옆에서 “그걸로 되겠어?” 했지만, 나무가 나란히 있는 걸 보고 “이쁘네.” 합니다. 뭐든 해 보지 않으면 결국 모르잖아요. 인생은 한 번인데, 저는 제 마음과 생각에 빼곡한 나이테를 그리고 싶어요. 실패도 성공도 지나고 나면 그저 하나의 경험이에요. 나무는 제게 너무 좌절할 필요도, 너무 기뻐할 필요도 없다고 소곤거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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