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노력도 재능이다
2016년 말부터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2018년도 봄에 추천작에 선정됐다. 덕분에 첫 책 출간의 기회를 얻었고, 어떻게 어떻게 여섯 권의 책을 썼다. 그중 두 권은 4~5쇄, 한 권은 중쇄를 찍었다. 브런치에서 상을 받고 책을 출간하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았지만 달라지는 게 별로 없었다.
그건 내가 그렇게까지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50만 부, 70만 부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50만 부면 대한민국 사람 대부분이 아는 베스트셀러다. 책을 1만 6천 원으로 잡고, 인세를 10%로 계산하면 8억이다.
몇 년에 걸쳐 나누어 수령하게 되는 걸 감안해 5년이라고 계산해 보면 일 년에 1.6억의 수입인 셈이다. 물론 큰돈이지만 인생을 바꿀만한 많음인가 생각해 보면 그 정도는 아니지 싶다. 출판 관계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50만 부, 70만 부를 팔아도 작가의 인생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천만 부 정도 팔리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아널드 새뮤얼슨의 《헤밍웨이의 작가 수업》를 보면 글을 잘 쓰기 위해선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도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쓰기로 했다. 가방에도, 침대 머리맡에도, 책상 위에도, 식탁 위에도, 욕실 화장대 위에도 늘 수첩과 펜을 두고 떠오르는 생각을 채집했다. 자다가 깨서 꿈을 옮겨 적기도 했다.
첫 책의 편집자가 여섯 번째 책을 읽고 내게 해 준 말은 그동안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상상이 가 눈물이 어렸다고 했다. 그러나 천만 부는 고사하고, 만 부도 어렵다. 이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최고일까? 어떻게 해야 천만 부 정도 파는 작가가 되는 걸까? 아, 진짜 답답하다.
답이 나오지 않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 나는 운동화를 신고 나무 아래를 달린다. 귓가에 뽀로롱 새소리가 들린다. “재경아, 천만 부가 팔린 다음은 뭘 할 거야?”라고 묻는 것 같다. 나는 대답한다. “모,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모닝페이지 쓰고 요가하고, 간소하게 먹고, 책 읽고 글 쓰겠지.” 참새가 말한다. “그럼 지금과 똑같네. 그냥 천만 부 작가인 셈 쳐.”
그건 그렇다. 나는 천만 부 작가가 된다 해도 지금처럼 살 것 같다. 다만 달리는 위치는 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동네 운중천을 달리지만 천만 부 작가가 된다면 온천이 있는 스위스 호텔에 묵으며 알프스를 달릴 것 같다. 그럼 더 생생한 글이 나올 것만 같아서.
인생이 달라지진 않았어도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강연도 많이 했고, 올핸 신간 두 권을 내며 처음으로 추천사를 부탁드렸다. 이해인 수녀님, 정세랑 작가님, 오유경 작가님, 정제영 대표님, 송사랑 대표님, 우종영 작가님, 김광진 과장님, 그린티카 님, 정혜윤 님이 소중한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셨다. 추천사를 읽으며 나는 내가 하는 일과 내 글의 의미를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올여름엔 강남역 사거리, 포스코 사거리, 종각역 전광판에서 내 글을 만났다.
남편이 물었다.
“왜 자랑하지 않아? 요즘은 자랑도 필요한 세상이잖아.”
“내가 언제 자랑을 하나. 나는 아무 자랑도 하지 않지.”
그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기억 한 방울이 보르르 떠오른다.
“엄마, 나 100점 맞았어. 이거 봐봐!”
가방 속에서 답안마다 빨간 동그라미가 쳐진 시험지를 꺼낸다.
“저리 치워! 남들 다 맞는 백 점, 그게 뭐 별거라고!”
기억조차 흐릿해진 지난 일을 꺼내 잘잘못을 가리려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사람의 마음에 남아 수십 년 동안 영향을 줄 수 있다. 우린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친절할 필요가 있다.
좋은 것이 너무 많아진 이 시대, 사람들은 웬만한 일엔 감흥이 없다. 멋지고 예쁜 것은 AI가 3초 만에 만들어낸다. 그 멋짐과 우리의 멋짐이 다른 것은 우리 몸의 움직임과 흘린 땀이다. 우린 그 사람의 노력에서, 메마르고 혹독한 사막에서 피워 낸 꽃을 보며 눈물 흘린다. 여러분들도 흙수저이기 때문에, 여자라서, 남자라서, 몸의 불편이 있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때때로 힘겨움이 감사한 이유가 있다. 극한 상황을 만나면 잠자고 있던 우리 생존 유전자에 불이 켜진다. 생명은 그렇게 진화해 왔다. 내가 이 위기를 어떻게 뛰어넘을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몸속 70조 개의 세포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올봄 두 권의 책을 출간하고 나는 이렇게 힘겨워선 책을 또 쓸 수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해도 안 되는데, 이제 그만 포기할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추천사를 써주신 이해인 수녀님께 감사를 전하러 찾아뵈었다. 해인글방에서 수녀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말했다.
“너무 힘들어서... 다음 책을 또 쓸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얼마나 썼는데?”
“7년이요.”
“나는 48년을 썼는데?”
“…….”
살아간다는 것은 계속 자기 한계를 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이 시작되었던 브런치로 다시 돌아왔다.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많은 것들은 내가 정할 수 없지만, 얼마나 노력할 것인가 그것만큼은 내가 정할 수 있다. 노력도 재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