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증을 호소하는 사람을 종종 만난다. 나도 그랬다. 일 년에 약 200여 권의 책을 읽지만 모든 책이 머릿속에 쏙 들어오진 않는다.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도, 세상에 둘도 없는 전문가가 썼더라도 검은 것은 글씨고, 흰색은 종이구나 싶을 만큼 지식이 물과 기름처럼 뇌 속 정보와 섞이지 않는다.
난독증이 아닐 수 있다. 첫 번째는 쓰는 사람의 문제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아도 독자가 잘 이해하도록 쓰는 것과 그냥 쓰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전달하는 일에도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을 땐 한 주제를 다룬 다섯 권의 책을 몰아 읽는 게 좋다.
다섯 권 모두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그중 한두 권은 이해가 잘 되는 책이 있다. 전달력이 좋은 작가다. 그런 책을 만나면 작가의 이름과 출판사를 기억해 둔다. 책 속 인용 도서를 함께 읽으면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식이 거미줄처럼 확장된다.
이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번 찾아 읽게 되는 작가와 출판사가 생긴다. 그렇게 이름을 익혀 둔 출판사가 있었다. 그 출판사와 새로운 책 작업을 함께 하고 싶었다. 출판사의 담당자를 만나고 싶어 아는 인맥을 총동원했고, 드디어 편집자와 미팅을 잡을 수 있었다. 선물로 자그마한 식물도 하나 준비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장대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편집자는 식물이 가득한 카페로 안내했다. 책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물었다.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느냐고. 식물과 함께 살며, 좋은 점을 알리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으나 박완서 작가를 보며 용기를 냈다고,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며 눈도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그런 분들이 많으시죠. 그런 작가가 우리 문단에 또 나올까요?” 그는 시선을 커피잔으로 옮기고 두 손으로 컵 표면을 감싸 만지작거리며 덧붙였다. “저는 박완서 작가는 100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나도 속으로 말했다. 나도 백 년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작가일 지도 모르잖아요.
박완서 작가는 마흔이던 1971년 《여성동아》 장편 소설 공모전에 〈나목〉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여든 영면에 들 때까지 폭포수 쏟아지듯 작품을 써 내렸다. 아이 다섯을 키우고 글을 쓰기 시작한 작가의 삶은 수많은 여성 작가들에게 등대가 되었다.
나도 도전해 볼 수 있겠다는 계산을 한 데에 박완서 작가의 삶이 큰 동기 부여가 되었다. 박완서 작가의 시절은 20세기이고, 지금은 21세기가 아닌가. 나도 박완서 작가처럼 생이 끝나는 날까지 현역을 꿈꾸며 어제보다 나은 글을 쓰고 싶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그는 내게 어떤 글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좋아하는 글은 <우동 한 그릇>, <마지막 잎새>, <노인과 바다>다. D 단조의 글들. 나의 감수성이 어딘가 서글픈 정서를 띄고 있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그는 그는 “모두 명작이네요….”라고 말했다. 앞 질문과 연계해 유추해 볼 때, 말없음표에 “당신이 명작을 쓸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이 숨은 것 같았다.
어떤 말을 들었을 때 뭔가 긁힌 기분이 든다면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긁힌 기분이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김예지 선수가 은메달을 땄을 때, “와! 저 선수 어쩜 저렇게 과녁을 잘 맞혀?”라고 생각할 뿐, 나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사격 선수가 되진 못할 거라 말해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 그런데 “모두 명작이네요….” 하는 말에선 무엇인가 명치 저 깊은 곳에서 고개를 불쑥 쳐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이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의 생각이 사실일지 그렇지 않을지, 또 다른 어떤 이가 나타날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가 물어준 덕분에 나는 깨달은 게 있다. 기분 나쁜 말을 듣는다면 그 말이 기분 나쁜 이유를 샅샅이 살펴보고, 내게 필요한 것을 취하면 그뿐이다. 모든 일에서 배울 점이 있다. 자연계에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돌연변이가 세상을 바꾼다. 가장 강한 사람들은 모든 것에서 배우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