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한 콘크리트 벽 사이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계단으로 오를까, 에스컬레이터를 탈까 몸이 왼쪽으로 가다 다시 오른쪽을 향했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 천정에서 소리 없이 내려오는 꽃 조명을 감상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산을 거꾸로 매단 듯하지만 아주 매끄럽게 미끄러져 나를 향해 꽃을 피운다. 네덜란드 디자인 스튜디오 드리프트의 ‘샤이 라이트’다. 고개를 뒤로 젖혀 천정을 보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른다. 꽃송이가 얼굴로 뚝뚝 떨어진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의 디자인, 질감, 조명, 공간감,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미감이 뚝뚝 떨어진다.
안내 포스터에 연극 ‘벚꽃동산’이라고 쓰여 있었다. 배우가 누군가보다 눈이 동그래졌다. 주연배우가 전도연이었다. 6월 4일부터 7월 7일까지, 하루 두 시간 반 공연이었다. 더블 캐스팅인가 확인했더니, 원 캐스팅이었다. 왜 굳이 그가, 연극 무대에?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연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기사를 찾아보니 27년 만의 연극 무대라 했다. 첫 무대 때는 죽고 싶었다는 인터뷰가 있었다. 아무래도 스스로 발등을 찍은 것 같다고도 말했다. 최고의 배우에게도 새로운 도전은 두렵고, 심장이 조이고, 숨이 멈출 것만 같은 일이다.
두려움이란 익숙한 것과 멀어지는 데에서 온다. 역설적으로 가장 두렵게 느끼는 일을 했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왜냐하면 그 일을 했을 때 너무 잘 되어서 익숙한 모든 것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무의식이 저항하는 것이다.
전도연 배우가 유튜브 채널 ‘요정식탁’에 나와 이야기한다. 칸 여우주연상을 받고 시나리오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아 놀랐다고. 거의 10년을 쉬었다고 했다. 그래서 젊은 감독들과 자리를 마련해 소통하고, 하나씩 둘씩 일을 하다 보니 일이 늘어났다고. 그는 누군가 다가와 주길 기다리는 대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
‘배우’ 커리어로는 에베레스트 같은 세계 최고봉에 올랐는데도 그는 개의치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을 두드린다. 다른 산을 탐색하고 처음부터 다시 올라가는 걸 선택한다. 여기서 커리어에 대한 전략을 도출해 보았다. 과거의 성취는 지나간 영광으로 툭 털어내고, 다양한 세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체력과 실력을 연마한다.
다음 커리어 스텝을 고민하는 소식이 요즘 부쩍 많이 들려온다. 가장 두려운 선택을 하라. 그게 여러분을 가장 좋은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