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문학나눔도서 사업과 발표
어제 저녁을 먹고 초록색 앞치마를 둘렀다. 설거지하며 오디오 북을 들으려고 밀리의 서재를 켰는데,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작가님, 좋은 소식이 있어요. 가 문학나눔도서에 선정됐어요. 정말 기뻐서 연락드려요.”
“이 책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애써 담담한 척 회신했지만 휴대폰 화면 위로 눈물이 툭 떨어졌다. 11월 18일. 내 수호신의 생일이었다. 고마워라. ‘녀석, 물심양면으로 애쓰고 있구나. 네 생일날에도 내게 좋은 소식을 만들어 주려 애썼구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이 책을 쓸 때의 시간이 되살아났다. 작년 계약서 작성 후 올해 초까지 원고를 쓰고 다듬는 동안 이사를 세 번 했다. 원고를 마무리할 물리적인 시간도, 마음의 에너지도 없었다. 도저히 끝내지 못할 것 같아 계약을 해지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윤여정 배우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는 배우가 가장 연기를 잘할 때는 돈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그래서 예술은 잔인하다고. 어쩌면 마감의 압박에 이사 스트레스가 있는 상황이 좋은 글을 쓰게 하는 어떤 잠재력을 깨울지도 모른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겨우겨우 원고를 탈고했다.
이 책이 생명력을 지니게 된 데에는 오랫동안 내 글을 아껴주던 편집자의 공이 컸다. 원고를 구석구석 재단하고, 솔기를 박고 뒤집고, 실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다림질해 마음에 맞춤한 코트처럼 딱 떨어지게 만들었다. 내 글을 좋아하던 김예빈 작가님은 결혼과 신혼여행이라는 인생 큰 이벤트와 마감이 겹치는 일정에도 사랑을 가득 담아 그림을 그렸다.
이해인 수녀와 정세랑 작가, 오유경 아나운서이자 갤러리 평창동 1번지 대표, 한국교육학술원장 정제영 박사, 송사랑 대표가 추천사를 써 주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 에너지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얼마나 많았는지. 그중 하나가 CGV와 샘터사가 함께 하는 프로젝트로 서울 시내 전광판과 지하철에서 글의 문장이 송출된 일이다.
한참을 울다가 뭔가 탁 들어맞는 느낌이 들며 눈물이 그쳤다. 어떤 사람에 대한 원망, 내 선택에 대한 후회와 자책, 잘 풀리지 않는 일들은 모두 글의 소재로 쓰라는 우주의 뜻이다.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를 생각해 보자. 주인공이 어떤 일에 휘말려 죽을 고생을 하다가 결국 극복해 내는 스토리이다. ‘죽을 고생’이 죽음에 가까울수록 수록 관객 수가 많아진다.
험난한 울퉁불퉁한 길 한가운데 서 있다면 그대로 옮기기만 해도 흥행에 성공할 일을 실화로 겪는 중이다. 내게 있었던 크고 작은 스트레스도 역시 더 좋은 글을 쓰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스트레스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편안한 글은 탄산이 날아간 페리에처럼 밍밍하다. 팽팽하고 톡 쏘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없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자신을 있는 대로 들볶으며 고행의 길로 들어서지 않나. 걱정 없는 상태에선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마녀체력 이영미 작가님께 문학나눔도서 선정 소식을 알렸더니, 쉬운 게 아니라며 축하한다고 전하셨다. 원래도 어려운 것인데, 그나마 올핸 예산이 대폭 삭감되어 더욱 어려워졌다. 세종도서 선정과 문학나눔도서 사업이 통폐합되며 20억의 예산이 사라졌다. 어쩐지 문학나눔도서 선정된 소식이 아무 데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5개 분과에서 총 4,835종이 접수되었고, 추천위원 101인의 검토를 거쳐 373종이 추천되었다. 작년까지는 ‘선정’이라는 표현을 썼으나 올핸 ‘추천’이라고 쓴다. ‘선정’보다 ‘추천’이라는 단어는 힘이 약하다. 문학의 현재 위치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작가란 누군가 알아주고 인정받기 위해 쓰는 것은 아니다.
물론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작가란 누가 본다고 해서 쓰고, 아무도 안 본다고 해서 안 쓰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작가로 태어났기 때문에 써야 살 수 있다.
언니, 그 얘기를 써 봐. 이제 그 얘기를 쓸 차례야. 나의 수호신이 말하고 있다. 지금도 여러 가지 일로 압박이 되지만, 그저 쓰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모른다. 바다 위에 몸을 던져 파도를 타듯 또 한 번 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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