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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경 Nov 12. 2024

나에게 맞는 건 나만 알아

영원한 나의 뮤즈, 우리 엄마


엄마, 아빠, 나


청주 도서관 강연에 갔다 현대미술관 청주에 들러 귀가하는 길이었다. 고속도로와 하늘이 맞닿은 곳에서 노을이 빨갛게 올라오고 있었다. 친정에 들렀다. 엄마와 아빠가 반갑게 마중하신다. 엄마 집은 4년 전 겨울 내가 인테리어 해 드렸다. 그 모습 그대로 깨끗하다. 벽엔 엄마가 그린 민화가 가득 붙어 있다. 류머티즘이 있는 엄마의 손으로 작은 붓을 쥐고 물감을 찍어 종이 위에 한 번씩 선을 그어 나간 것이다. 


엄마는 나가서 먹자 하고, 나는 그냥 평범한 집밥을 먹자고 한다. 엄마, 아빠, 나,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먹는 저녁 식사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릿속으로 사진첩을 촤르륵 돌려 아무리 찾아도 그런 날은 없었다. 어떤 날은 엄마, 아빠, 동생들, 어떤 날은 엄마, 나, 나의 아들, 명절엔 엄마, 아빠, 내 가족 그런 식이었다. 엄마, 아빠, 나. 이렇게 셋의 조합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겨우 20분 거리에 살면서도 말이다. 



듣고, 듣고, 또 듣고


아빠는 고학생이었던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이야기를 하고, 하고 또 하신다.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듣고, 듣고, 또 듣는다. 마음속에 맺힌 타래는 풀고, 풀고, 또 풀어도 남아 있다. 


쌀누룩 요구르트를 해 먹었는데 속이 편하고 좋더라 말하려는데 엄마가 냉장고에서 뭔가 꺼내오신다. “이거 내가 만든 건데 한번 먹어볼래?”하는데 엄마도 쌀 요구르트를 만드신 거다. 유행도 빠르고, 다 해보는 우리 엄마. 나는 안다. 그 마음이 자식들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는 걸. 


어젠 엄마가 전화하셨다.

“큰딸, 모오해? 오늘 아빠 친구들하고 치악산에 다녀왔거든. 그런데 내가 1등 했어.” 

“우리 엄마가 연세가 좀 적은 편이신가?”

“아니지. 내 나이가 제일 많지.”

“와, 근데 1등이야. 우리 엄마 대단하시다!”



대단하고, 담대한


세상의 모든 어머니처럼 우리 엄마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엄마는 두 해 전 이맘때도 산에 가셨다. 앞장서서 걷다 바위 턱에 등산 스틱이 걸리는 바람에 대자로 넘어져 팔을 크게 다쳤다. 손목부터 팔꿈치 사이의 뼈가 동강이 났다. 그때 사고는 뒤에서 바라보던 아빠는 ‘아이코… 죽었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불행 중 다행을 겨우 찾으면 반듯하게 부러진 것이다. 병원에선 나이가 있어 뼈가 잘 붙지 않을 수 있으니 철심을 박는 게 좋겠다고 했으나 엄마는 그러다 뼈가 으스러지면 더 큰 일이라며 마다하고 그냥 깁스하고 가을부터 봄까지 견뎠다. 다행히 뼈는 잘 붙어 일상을 찾았다. 


사고를 당하거나 좋지 않은 일을 생기면 뇌는 그 일을 저장하고 방어 기제를 작동한다. 나의 경우는 눈이 많이 오던 날 큰 교통사고를 당해 눈이 오는 날엔 눈앞이 새하얗게 되며 호흡이 가빠져 운전을 하지 못한다. 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본능을 거스르고 또 산에 올라 1등을 해 내고야 만다. 나는 엄마의 그 담대함이 존경스럽고, 내가 엄마의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한다. 



나에게 맞는 건 나만 알아


등산에 같이 갔던 다른 어르신들 이야기하던 끝에 엄마가 말씀하신다. 

“딸, 보니까 잘 먹는 게 정말 중요해. 그게 비싸고 고급 음식을 많이 먹으라는 말이 아니라, 나한테 맞는 거를 먹으라는 거야. 사람마다 체질이 다 다르잖아. 그런데 딱 나한테 맞는 걸 사 먹을 수 있는 데가 잘 없어. 그래서 내가 할 줄 알아야 하고, 내가 해 먹어야 해. 딸도 강의 다닐 때 꼭 도시락 싸서 다녀. 그게 남는 거야. 

알레르기 증세는 장에서 오는 거야. 장 속 미생물이 참 중요하더라. 참, 쌀누룩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어 봤어? 화장실에서 황금색이 일자로 나오지?” 엄마는 그 얘기를 하며 사춘기 소녀처럼 키득키득한다. 


지난번 통화에서 엄마는 동대문에서 맞춰 입은 투피스를 자랑하셨다. 흰색 아일릿 원단으로 만든 최신형 투피스였다.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동대문에 가서 옷감을 끊고, 단추를 구경했던 생각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그려진다. 엄마는 일본 잡지를 보며 옷본을 뜨고, 가위로 오리고, 재봉틀로 박아 내 옷을 만들어 주셨다. 예쁜 옷만 입혀주던 젊은 날의 엄마가 눈앞에서 보이는 것만 같다. 


다섯을 낳아 열 살에 떠난 자식을 가슴에 묻고도 40년을 살아낸 사람. 남은 넷의 인생사를 다 지켜보면서도 꼿꼿한 사람. 그 유연함과 인내심을 생각하면 나는 죽을 때까지 엄마 발끝에도 따라갈 수 있을까 싶다. 나의 영원한 뮤즈, 우리 엄마.


그림 |  박윤 작가 @__parkyo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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