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예술화 전략》78번째 소제목
에릭 메이젤의 을 읽고 있다. 에릭《일상 예술화 전략》 메이젤은 40권 이상의 책을 쓴 창의력 전문가이자 창조성 코치로, 《일상 예술화 전략》은 창의적으로 사는 방법 88가지를 다룬 408페이지의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이유는 일상을 모두 예술에 쓰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때때로 작가의 일은 일상과의 경계가 모호해 나 아닌 다른 이들이 보면 놀고 있는 것 같이 보이곤 한다. 주로 하는 일이란 틈만 나면 책을 읽고, 생각하고, 또 책을 사고, 또 책을 읽고, 글을 쓴다. 한강 작가도 매일 하루에 두 권의 책을 읽는다고 하지 않던가. 일상의 많은 시간을 좋은 작품을 수혈하고, 창작하는 데에 쓴다. 그러나 당장 금전으로 치환되지 않는 축적은 꽤 자주 쓸모없는 일로 보인다.
리빙 페어에 화가의 작품을 빌려 함께 전시했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벽에 걸린 100호 작품을 보며 관람객 몇몇은 “이거 그린 사람은 할 일이 되게 없나 보다.”라고 말하며 그림을 지나쳤다. 예술가의 일은 종종 그런 오해를 산다. 《일상 예술화 전략》은 그런 눈치를 보지 않고 일상을 예술에 알차게 쓸 수 있는 비법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354페이지를 읽고 있었다. 이제 50여 페이지만 더 읽으면 두툼한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다. 400페이지가 넘는 책은 성취감도 400페이지만큼이다. 두꺼운 책을 끝까지 정독했다는 의미는 책의 내용도 알찼다는 뜻이다. 겨우 50페이지 남은 책을 읽어치우려는데 78번째 소제목에서 ‘성욕’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성욕과 일상을 예술화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에 있는 것인가.
에릭 메이젤에 따르면 창의력과 성욕은 공통점이 많다고 한다. 눈이 크게 떠졌다. 많은 예술가가 창조적 작업을 섹스에 비유한다고 말한다. 에릭 메이절은 작품이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는 등장인물의 ‘밤’을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막혔던 글이 풀리기도 하고, 안 그려지던 그림이 그려지기도 한다고.
실전 예제에선 연인과 함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시를 쓰거나 조각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부추긴다. 이 연습을 하고 나면 분명히 작품에 커다란 발전이 올 거라고 적었다. 에릭 메이젤의 말은 사실이다. 사랑은 가장 큰 에너지를 품고 있으니까. 헤밍웨이는 네 번 결혼했으며 여자 친구는 몇 명이었는지 모른다. 피카소는 함께 산 여성만 일곱 명으로 확인된다. 여성 중엔 가브리엘 샤넬이 있다. 샤넬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지만, 함께 산 남자친구도 6명으로 확인된다.
작품을 위해선 뭐든 하는 예술가도 있다.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가 쓴 《나의 사랑_백남준》에선 이런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1965년 7월에 열릴 퍼페추얼 플럭서스 페스티벌이 열렸다. 이 페스티벌에서 백남준은 구보타 시게코에게 은밀한 곳에 붓을 꽂고 관객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본인은 남자라 할 수 없으니 여자인 구보타 시게코에게 대신해 달라 요청했다.
구보타 시게코는 기겁한다. 백남준을 매우 사랑하던 구보타 시게코는 수치심 대신 백남준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마음먹는다. 예술가라면 수치심에서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퍼포먼스 당일 구보타 시게코는 짧은 치마를 입고, 그곳에 붓을 꽂은 다음 핏빛처럼 붉은 물감을 묻히고 흰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렸다. 시작할 때 관람객은 20명이었으나 퍼포먼스가 끝났을 땐 5명만 남았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이었다.
몇 명 보지도 않았고, 그나마 혹평을 받은 이 퍼포먼스는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았다. 이 사진이 매체에 실렸고, 강렬한 인상 때문에 구보타 시게코는 대담한 전위예술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슬아슬하고 팽팽한 에너지로 뭐든 예술로 만들어 버린다.
일상을 예술화한다는 말은 일상의 모든 것을 예술화한다는 의미다. 막혀있는 작품처럼 답답한 게 또 있을까. 혹시 창작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계신다면 354페이지를 응용해 보신 다음 후기를 들려주시면 좋겠다. 88개의 소제목 모두 가슴을 두드리는 《일상 예술화 전략》은 절판된 책이다.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한 권 더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