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 페르호넨의 전시를 보고 왔다.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라는 책으로 브랜드를 미리 만나볼 수 있었다. 이 브랜드의 창업자, 미나가와 아키라는 1967년 생으로 육상 선수 출신이다. 육상 선수 출신이 패션 브랜드를 하게 된 서사가 있다.
미나가와 아키라는 육상으로 대학을 가려고 했으나 발목 골절로 계획이 틀어진다.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을 때 프랑스에 에콜 데 보자르라는 국립고등미술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파리로 날아갔고, 열여덟 살 나이에 매일 루브르 박물관을 드나들었다. 파리에 머물며 우연히 패션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고, 일본으로 돌아와서도 그 인맥이 이어져 복장학원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돈이 모일 때마다 핀란드에 간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되고, 어머니와의 만남은 성인이 될 때까지 금지되었으나 외조부모를 만나는 것은 허락된다. 외조부모는 북유럽의 가구 프리츠 한센과 이탈리아 가구점 카시나를 수입해 일본에 유통하는 일을 하셨다. 미나가와에겐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이 심리적으로 가까웠다.
미나가와는 옷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은 핀란드 어로, 옷을 만드는 것도 한 사람의 '나'. 옷을 입는 것도 한 사람의 '나'이기 때문에, '나'라는 자아가 옷을 만들고 '나'라는 자아가 옷을 입기 때문에, 패션은 내가 된다. '페르호넨'은 나비다. 옷과 한 사람의 마음이 만나는 공간. 그렇게 '미나(mina)가 탄생했다.
못하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데는 고작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을 꾸준히 노력하면 어떻게든 성장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칼로 참치를 해체하는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며 옷을 만든다. 직접 만든 옷을 싣고 일본의 북쪽 끝에서부터 남쪽 끝까지 매장을 방문하나 한 벌도 팔지 못 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1995년 처음으로 만든 드레스를 시작으로,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한 마에 25만 원 하는 원단을 만든다. 셔츠 한 벌을 만들려면 2.5마가 필요하니 완성된 옷의 가격은 기백만원을 호가한다. 그러나 이 옷은 입다가 고쳐 입을 수 있다.
오래 미나 페르호넨의 옷을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시 마지막을 장식한다. '비싸지만 옷 제작자의 신념에 대한 공감과 예술품을 손에 넣는 기분으로 큰 결심을 했습니다. 인생을 거듭할수록, 좋아하는 것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행복을 24년 동안 곱씹고 있습니다.'
공예처럼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중요시한다고 했다. 패브릭을 덮어 씌우고 표면을 잘라내 점을 만들어 색을 표현했다. 손으로 종이를 잘라 붙여 패턴을 그리고, 집요하다 못해 징그럽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더 깊이 고민하고 만들어야, 내가 느낀 것과 내 손 기술이 정확히 연결되는 그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그는 책에서 "예술가는 누구나 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을 만드는 일은 평생이 걸려도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인용했다. 미나가와 아키라는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예술과 상업적 성공, 사랑을 모두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