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게 반짝이는 마음
겨우내 유럽 투어를 다녀온다는 지인을 대신해 150평 온실에서 식물을 돌보는 도네이션을 하고 있다. 편히 다녀오시라고 내가 선뜻 나섰다. 식물 집사로서, 목마른 식물이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는, 심장이 쪼그라드는 그 기분을 알고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한편으로는 안 해 본 일을 해 보는 데에 모험심이 작동했다. 그동안 집의 규모에서 200개 정도의 실내 식물을 다뤄봤지, 150평 농장에 가득한 식물을 돌보는 일은 해 본 적 없다. 새로운 도전이 흥미롭기도 했다.
첫날, 지인과 함께 150평 농장에 물을 주는데, 물을 주어도 주어도 끝이 나지 않는 스케일에 놀랐다. 긴 호스를 들고 발 디딜 틈 없이 식물이 빼곡히 들어찬 화분 사이로 몸을 요리조리 비틀어 식물 사이로 들어가 분사기 헤드를 올려놓는다. 큰 식물은 10미터쯤 되는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여인초의 주황색 꽃이 반겨주었고, 립살리스 진주알 같은 꽃도 인사를 해 주었다. 진하게 풍기는 오렌지 재스민의 향기는 호사스러웠다. 처음 해 보는 일이지만, 몇 번 해 보니 또 할만했다. 안 해 본 일을 잘하게 될 때의 기쁘다.
혼자 다녔는데, 지난주엔 일행이 있었다. 한 사람은 나와 분사기를 들고 몸을 바삐 움직여 물을 주고, 한 사람은 가위를 들고 너무 많이 자란 식물의 줄기를 솎아 주었다.
오후 3시 30분이 되면 부직포 커튼이 내려오기 때문에 신데렐라처럼 재빨리 철수해야 한다. 부직포 커튼 아랫단엔 바람에 펄럭이지 않도록 무거운 추가 있기 때문이다. 커튼의 무게에 맞게 비계의 기둥을 추로 써서 대단히 무거웠다. 하루는 물을 주고 나오려는데 커튼이 내려와 있어 기둥을 들고 빠져나오느라 애를 먹었다.
그날은 얼른 철수한 다음, 눈 내린 들판에 뽀드득 발자국을 소리를 내며 이웃 그릇 가게로 걸어갔다. 사장은 냄비에서 끓고 있는 배 대추차를 떠 주었다. 다음 주엔 들깨 수제비를 먹자고 약속을 했는데, 떡도 구워주신다고 하셨다.
수제비를 먹고 또 떡을 먹을 수 있을까, 혼자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린 모양이다. 지인들은 수제비와 떡은 다른 거라고, 디저트는 별도라고 하신다. 먹을 것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무심결에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두 분은 음식을 즐기신다고. 밥을 먹으며 또 뭔가를 먹을까 생각하신다며, 나에게 왜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느냐 물으셨다. 어느 순간부터 먹을 것엔 별 관심이 없어졌는데, 그 시기를 반추해 보면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랬다. 식물 200개와 함께 살며 그들의 효율과 경제성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식물은 자기 먹을 만큼 욕심내지 않고 먹으며 그저 균형을 잡는다. 그러면서도 자기 할 일을 다 한다. 때가 되면 서향동백은 잎끝에 매달린 봉우리를 활짝 피워 꽃 향기를 풍기고, 마지나타는 꽃대를 뻗어 누에고치 같은 꽃봉오리를 점점 더 키운다.
올해도 그렇다. 마지나타는 곧 반짝거리는 응원술 같은 하얀 꽃을 잔뜩 보여줄 것이다. 식물의 에너지 사용법을 생각하니 조리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 정리하는데 들어가는 노동력에 의문이 생겼다. 지인은 따뜻한 시선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먹을 것에 관심이 없더라고 말해주었다.
그 일이 있고서, 유튜브에서 영화배우 배두나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녀는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밥, 김, 김치를 먹거나, 달걀 구운 것을 두고 한 개씩 먹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다. 블랙핑크의 제니도 먹을 것에 통 관심이 없다며, 왜 한 알로 해결되는 알약은 아직도 안 나온 거냐고 말했다. 너무 비슷해 동질감을 느꼈다.
두 아티스트의 압도적인 예술적 성과를 생각해 보면, 먹을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은 작품성을 위한 필요조건일까? 그러고 보니 윤여정 배우도 먹을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했다. 서정적인 애니메이션으로 마음을 잔잔하고 몰캉하게 만들어 주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심지어 도시락 한 개를 싸와 금을 딱 그어 반은 점심으로 먹고, 나머지 반은 저녁으로 먹으며 작업했다. 50년 동안 조수 없이 매일 만화를 그린 스누피의 아버지 챨스 슐츠는 평생 점심으로 햄치즈 샌드위치와 우유 한 잔을 먹었다.
혹시, 훌륭한 예술가의 필요조건 중 하나는 먹을 것에 관심이 없는 걸까?
정재경 작가 | 8년째 매일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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