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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Mar 07. 2022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에도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

[Cloud Mania]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에도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

https://youtu.be/EyFaWoj8b9E

구름 영상 제목: '어느 화려한 시작', 촬영 장소: 포르투갈 알가브, 촬영 장비: 삼성 갤럭시 S9


슬픈 노래


나는 마음을 울리는 슬픈 노래를 좋아한다. 특히,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평소에는 무덤덤하게 듣던 대중가요가 구구절절 가슴을 후벼 판다. 하나도 틀린 것이 없이 족집게처럼 나의 아픔을 집어낸다. 두 눈을 감고 슬픈 노래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뺨을 흘러내리는 사나이의 눈물에 당황해한 적도 있다.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도 내가 좋아하는 슬픈 노래 리스트가 나의 재생 목록으로 저장되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슬픈 노래들이 나를 슬프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나의 슬픔을 공감해 주고 나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점이다. 슬픔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만이 힘든 게 아니다.


슬퍼 보이는 노래


나에게 노래가 슬퍼 보였던 한 장면이 있다. 노래가 슬퍼 보였다기보다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슬퍼 보였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쌍팔년도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공설운동장 가설무대를 TV 카메라가 비추고 있었다. 나는 토요일 오후에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고, TV는 특별한 시청 목적 없이 배경 화면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TV 속에서는 어떤 공식 행사의 식전 공개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장에는 주최 측에서 제공한 동일한 문양의 플라스틱 선캡을 쓴 양복 입은 중년 아저씨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행사 시간에 맞추어 부랴부랴 자기 자리를 찾아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접이식 의자를 다닥다닥 붙여 놓아서 자리를 찾은 아저씨가 중간쯤에 들어가서 앉으려면 그 줄에 앉았던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야만 했다. 무대를 비추고 있던 TV 카메라에 일어나는 아저씨들의 선캡을 쓴 뒤통수가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모든 참석자가 예외 없이 행사의 식순이 적힌 하얀 종이로 뜨거운 햇빛을 가리고 있거나, 바쁘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감정 없이 무심히 무대를 비추고 있는 TV 화면 속에서도 더운 날씨와 소란스러운 주변 상황은 여과 없이 전달되고 있었다.


오늘의 초청 가수


몇 명의 무명 가수들이 시간을 채우고 무대에서 사라지자, 사회자는 이전과는 다른 힘찬 목소리로 다음 가수를 소개했다.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의 마지막 순서로 당시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여자 댄스 가수가 소개되었다. 밥을 먹던 나도 의외의 초청 가수의 등장에 놀라서 화면에 집중했다. "행사 주최 측에서 제법 신경을 쓴 모양이네."라며, 나는 개인적으로 진행하고 있던 토요일 점심 식사 행사를 잠시 멈추고 TV 속 식전 공개 행사의 메인 공연을 숟가락을 든 채 시청하고 있었다. 소개받은 여자 가수는 발랄하게 뛰어나와서 "여러분 안녕하세요?"를 외치고 현재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찍고 있는 밝고 활발한 댄스곡을 신나는 춤과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VIP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무대 앞 1열 주위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무대와 1열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심지어 웅성거리는 소리까지 오디오에 잡혔다. 잠시 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지어 들어왔다. 주변을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따라와서 옆에 앉는 사람들과 뒤를 돌아보며 손을 들어 인사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이 벌어졌다. 아마, 당일 행사의 VIP가 도착을 한 모양이다. 기억에, 대통령은 아니었고, 유력 정치인이나 장관쯤 되었던 것 같다.


흔들리는 눈동자


푹푹 찌는 공설 운동장의 임시 가설무대 위에서 댄스곡을 신나게 부르려고 무척 애쓰고 있는 가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땀이 흘러서 무대 화장은 피부와 분리되고 있었고, 한낮의 자연조명 위에서 땀과 범벅이 된 채 화면 위에 나타난 예쁘고 젊은 여자 가수의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MR로 나오는 반주와 현장에서 부르는 노랫소리와 앞 쪽에 앉은 참석 귀빈들의 반가운 인사 소리가 뒤섞여서 음악이 온전하게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수행원들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으려고 허리를 낮게 숙인 채 무대 앞을 분주히 오가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럴 때마다 가수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보지 않으려고 애써도 눈동자는 자기도 모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가다 멈추기를 계속했다. 흥을 최고조로 올려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 표정이 역력했다. 눈을 감기도 하고, 손을 올리며 과장된 몸짓을 해도 효과가 없었다. 


높은 선반 위로 잘 올라가지 않아서 손을 뻗어 낑낑대며 잡고 있는 무거운 물건처럼, 올리지 못하고 내리지도 못하는 상태로 노래는 계속되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행사 참석자들은 똑같은 선캡을 쓰고 똑같은 자세로 앉아서 노래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만의 박자로 신경질적으로 부채질을 해 대고 있었다.


가수도 쉽지 않겠네


젊은 나이에 가요계에서 정점을 찍은 그녀가 은근히 부러웠는데, 그날은 참 안돼 보였다. 솔직히 불쌍해 보였다. 노래가 끝난 뒤에 자신의 밴으로 돌아가서 그녀는 분명히 울었을 것이다. 완성된 무대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이런데까지 끌려와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자신이 한심해서 울었을 것이다. 그녀는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날 신나는 댄스곡을 화려한 율동과 함께 부르는 모습은 무척이나 안타깝고 슬퍼 보였다. "가수도 쉽지 않네."라는 혼잣말을 하며 나는 남은 밥을 마저 먹었다.


프로라면 그 정도는 참아내야지


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기 싫은 일이 있다.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있다. 하기 싫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프로라면 그 정도는 참아내야 한다.'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 있나?'라며 사람들은, 때로는 나를 다독이며, 때로는 나를 훈육하며, 때로는 나에게 강요하며 말했다. 그래서, 때로는 자발적으로, 때로는 규칙대로, 때로는 억지로, 하기 싫은 일도 잘하려고 애쓰며 살았다.


싫어요


세월이 흘러 제법 긴 세월을 살아온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를. 하지만, 다시 세월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하기 싫은 일은 "싫어요"라고 말하며 살고 싶다. 하기 싫은 일도 "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하며 살아온 내 인생이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기에도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다. 

기뻐하며 살기에도 우리 인생은 너무 짧다. 

슬퍼하며 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ETF0QpWUjGuNrTQWtosx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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