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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Feb 23. 2022

너 담배 피우니?

[Cloud Mania]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너 담배 피우니?

https://youtu.be/AfhxGtjs3PM

제목: 흡연실, 촬영 장소: 포르투갈 알가브, 촬영 장비: 삼성 갤럭시 S9


담배에 관해 생각나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너 담배 피우니? 첫 번째


인사이동이 많았던 선친을 따라서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만 다섯 번의 전학을 다녔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 우리 가족은 작은 지방 도시에 정착을 했다. 1년 뒤에, 전세로 살던 집을 주인이 갑자기 팔려고 했다. 더 이상 이사를 가기가 싫었던 우리 가족은 살고 있던 2층 양옥을 구입하게 되었다. 아래층 본채에 우리 가족이 살았고, 대문에서 들어서면 마당 왼쪽으로 방 한 칸짜리 별채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고, 2층 독채를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가족이 전세로 살고 있었다. 그 당시에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 지붕 세 가족이었다. 드라마처럼 오손도손 산 것은 아니고, 독립적으로 따로 같이 살았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래층 본채의 작은 방을 시작으로, 고등학교 때 아래층 별채로, 대학교 때 2층 작은 방으로, 제대 후에 복학하여 2층 큰 방으로, 그리고 결혼 후에 2층 전체를 사용하는 신분 상승을 거듭한 후에 분가할 때까지 16년을 그 집에서 살았다. 사각형으로 잘 구획된 도시의 주택 단지였음에도 주위 이웃들과 한 동네 사람들로 변함없이 오랫동안 모여 살았다. 그래서, 모두 서로를 잘 알았다. 가령,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도 옆집 뒷집 몇 곳을 다니며 인사를 해야 할 정도로.


서울 유학과 선친의 반대와 나의 시위와 타협의 줄다리기 끝에 내가 서울행을 포기하고 집에 남았다. 우리 집에서 앞으로 한 블록, 좌로 한 블록에 위치한 신발점에 나보다 두 살이 많은 형이 있었다. 그 형은 주위의 모든 부모님이 부러워할 뿐 자기 자녀와 비교할 생각을 하지 않는 울트라 캡숑 짱 '옆집 형'이었다. 시내 명문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을 한 번도 빼앗긴 적이 없는 수재였다. 모두의 기대와 예상대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동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제 우리 동네에서 판검사가 곧 나올 것이라 기대하고 칭송했다.


어느 날 신발점이 문을 닫았다. 사람들이 왜 신발점이 문을 닫았으며 이사를 갔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은, 그 형이 대학에 들어가서 학생 운동을 했고, 시위 주동자가 되어서 지명 수배가 되었다. 그 사실을 안 형의 아버지께서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한 참 동안 길 가의 신발점은 팔리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 집과 같은 블록의 좌측 끝 집에 1년 선배 형이 있었다. 순하게 곱상하게 생겼던 형은 부모님 속을 한 번도 썩인 적이 없는 효자였고, 무난하게 공부해서 연세대 상대에 진학했다. 그때는 서울만 올라가면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 형도 학생 운동을 했고 제적을 당하고 군대로 끌려갔다. 그런 동네 형들을 본 선친은 장손인 아들을 절대로 서울로 못 보낸다고 다짐을 했나 보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았다고 소심하게 '삐뚤어질 테야'를 시위하고 다녔던 나와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않은 부모님의 미안함에 편승하여 대학 신입생이 된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는 아무 일이나 할 수 있는 어른 행세를 하고 다녔다. 그중에 하나가 담배를 피우는 일이었다. 흡연에 관용적인 시절이라 밖에서야 담배를 피우는 일은 쉬웠지만 집에 돌아오면 쉽지 않았다. 집 안에서 피우기가 거시기해서 집 밖으로 나가면 구석진 곳을 발견하기 어려웠고, 모퉁이에서 한 대 꼬나물라 치면 그 때 꼭 동네 아줌마 아저씨가 튀어나왔다. 황급히 뒷 쪽으로 감추며 "안녕하세요?" 인사를 한다. 못 본척하고 지나가지만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까까머리 중학생 때부터 보아 온 아저씨 아주머니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셨을 것이다. "자슥이 마이 컸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딱 한 말씀하셨다. "너 담배 피우니?" 어머니는 빨래를 하거나 방을 치우실 때 이미 나의 흡연을 눈치채고도 모른 척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하신 말씀의 해석은 '동네 사람들 보이는 곳에서는 피우지 마라'였다. 분명, 동네 어느 분이 "00 담배 피우는 것 같데."라고 중요한 정보처럼 우리 부모님께 알려 주었을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의 의무처럼. 나는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사실, 긍정도 부인도 필요하지 않은 질문이었으니까.


너 담배 피우니? 두 번째


첫 발령지는 시골 면 소재지의 종합고등학교였다. 대도시 인근의 면 소재지라 경제력에 따라서 빠르게는 초등학교 때부터, 늦게는 고입 연합고사를 통해서 대부분 인근 도시로 유학을 갔다. 우리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학업 성취가 낮아서 시내 고등학교로 진학을 할 수 없거나 시내 고등학교에 진학할 경제적 여건이 되지 못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글을 못 읽는 고등학생에서 부터 좀 더 좋은 환경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뛰어난 학생들도 있었다.


남녀 공학이었던 우리 반에 부반장에 뽑힌 여학생이 있었다. 키가 작고 얼굴이 통통하고 귀엽게 생긴 아이였다. 항상 밝은 얼굴로 웃고 다녔고, 무질서하고 거친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생글거리며 학급의 일을 잘 정리하고 다녔다. 덜렁대며 허술했던 반장의 빈틈까지 소리 없이 불평 없이 잘 챙겼던 부반장 덕분에 학급 운영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선생님들 마다 칭찬을 했고, 학급 운영에 애를 먹던 옆 반 선생님은 나에게 '복이 많다'며 농담을 했다.


학교에서는 정기적으로 학생들을 상담하고 상담 일지에 기록하도록 하였다. 부반장의 순서가 되어 상담실에 마주 앉았는데,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실려 담배 냄새가 났다. 어디서 나는 담배 냄새지?라고 무심히 넘기려는데 다시 한번 담배 냄새가 났다. 아, 착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이었던 부반장 여학생에게서 나는 담배 냄새였다. 오 마이 갓!


"너 담배 피우니?" 나의 질문에 얼굴이 빨개지며 깜짝 놀라 했다. 그러고는, 부끄러운 듯이 말을 이어 나갔다. "할머니하고 방을 같이 ㅅㅇㅎㄱ...." 마지막은 기어들어가듯 했다. 아차, 내가 당황했다. "하하하, 야 인마 놀랐잖아. 담배 냄새가 나서... 하하하."


어느 날 학교에서 정리를 하다가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쳤단다. 그래서, 내가 태워 준다고 했다. 그 아이의 주소로 적힌 동네 쪽으로 한 두 번 가 본 적이 있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야, 가자." 미안한 듯이 차에 올랐다. 내가 지난 간 적이 있는 동네에 도착하자 부반장 아이가 "여기서 내려 주시면 됩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야, 여기는 길인데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집 앞에까지 태워줄게." "안 그래도 되는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어느 쪽이야?" 아이가 가리키는 쪽으로 들어갔다. 길은 점점 좁아지고 끝이 안 난다. 후회했다. 내려 주라고 할 때 내려 주고 돌아 갔으면 지금쯤은 우리 집에 도착했겠다.


골짜기 골짜기를 한 참을 달려 도착한 모퉁이에 정말 작은 집 하나가 있었다. 초라하게 사는 모양이 부끄럽고, 그곳까지 태워준 것에 미안해하는 아이를 남겨두고 황급히 그곳을 떠났다.  '여기에 내려주면 된다'는 뜻을 나는 신세를 지는 것이 미안해하는 줄만 알았다. 보여주기 싫은 이유도 있음을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때서야 나는 그 아이의 교복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방이 하나밖에 없고, 담배를 즐기시는 할머니 하고 단 둘이 살고 있구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도 희미하지만, 나는 부반장 그 아이에게 존경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자신만을 챙기며 세상에서 제일 이기적으로 살아도 아무도 탓하지 않을 환경에서 어떻게 그렇게 남을 위하고 헌신적일 수 있었는가. 성격이 그늘지고 침울해도 이해가 가는 환경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맑고 밝을 수 있었는가. 비관하고 포기하며 살고 있던 또래들 사이에서 어떻게 그렇게 유연하며 견고하게 살아낼 수 있었는가.


초보 교사였던 나의 미성숙과 부족함에 용서를 구한다. 교복에 배어 있던 담배 냄새는 맡으면서 그 아이에게 배어 있을 외로움과 내면의 슬픔을 맡지 못하였음을.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름대로의 멋진 인생을 살고 있으리라 짐작하고 그대에게 박수를 보낸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ETF0QpWUjGuNrTQWtosx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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