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파도에 대한 날 선 기억
휘몰아치는 파도에 대한 날 선 기억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구름 영상 제목: '하늘 해변의 구름 파도는 오늘도 거칠다'
시내 중심에 위치한 작은 평수의 오래된 주공 아파트에는 전혀 다른 두 부류의 가족들이 살았다. 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연령의 젊은 부부가 대부분 살았다. 그 젊은 부부들 사이에 자녀들이 성장하고 독립하여 더 이상 큰 집이 필요 없는 나이 든 부부가 살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통학이 불편하고 아파트가 좁다며 모두들 떠났다. 그 빈자리를 어린아이들을 가진 젊은 부부가 메웠다. 그래서, 구세대 아파트의 외양과는 달리 신세대 부부들이 교류하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었다.
대부분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유치원에 아이들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거의 매일 만났다. 처음에는 인사를 하고, 다음에는 말을 걸고, 다음에는 같이 아파트로 돌아왔다. 어느 날, 누군가가 자기 집에서 커피 한 잔 하겠느냐고 제안을 하고, 다음 날은 다른 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어떤 날에는 같이 점심을 먹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쇼핑도 같이 갔다. 누군가가 무엇을 배운다고 하면, 다들 몰려가서 배웠다. 살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우리 아파트였다.
우리 집 뒷동에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진입하는 큰길을 기준으로 보면, 그쪽이 우리보다 앞에 위치해 있고, 우리 쪽 통로 입구가 그쪽을 향해 나 있었고, 동호수도 우리보다 빨랐다. 이런 모든 기준에 따르면, 우리가 뒷동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 큰 방과 거실이 반대편을 향해 넓게 열려 있었고,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작은 창들이 그쪽 건물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는 감각적으로 그쪽이 뒷동이었다. 그쪽에서는 우리를 뒷동으로 지칭하였을지도 모른다.
앞동이든 뒷동이든 그쪽에 젊은 부부가 살았다. 부부가 둘 다 인물이 출중하고 세련된 패션으로 옷맵시가 좋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었다. 부부에게는 서너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아직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아서 모임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기회가 없기는 하였지만, 우연히 마주쳐도 부부는 공손하게 인사만 할 뿐 더 이상의 친교를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은 중단하였지만, 예전에, 젊은 부부는 바다낚시를 좋아했다. 연애를 할 때도, 신혼 때도, 가까운 바닷가 방파제에서, 또는 낚싯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를 즐겨했다. 주말이면 부부는 어김없이 바닷가로 달려갔다. 경치 좋은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일출과 일몰을 바라보며 행복해했고, 낚시를 통해 잡아 올리는 짜릿한 손맛은 잊을 수가 없었다. 출산이 임박하였을 때와 아이가 너무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 주말이면 텐트와 낚시 장비를 차에 싣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작은 아파트 단지에 비슷한 연령대의 커뮤니티가 형성이 되었기 때문에 교류가 활발했다. 그래서, 직장을 포함한 기본적인 정보는 서로 잘 알았다. 교류가 없었던 뒷동 젊은 부부에 대한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증폭되었다. 스치듯이 만난 부부의 인상은 고립되거나 단절된 채 살아갈 것 같지 않았지만,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나 뒷동 부부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살펴보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누군가 전해 주었다. 부부에게는 아이가 둘이 있었다고 한다. 딸 위에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한다. 부부를 닮아서 아들도 참 잘 생기고 귀티가 났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딸 하나밖에 없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은 여러 가지 갈래로 짐작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다른 곳에 맡겼을까? 그런데, 전업 주부로 딸을 돌보고 있는 데 어린 아들을 어디에 맡겨둘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그럼, 혹시, 아들을 잃었나?
"에이, 그런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부부는 언제나처럼 주말에 캠핑 장비와 낚시 장비를 챙겨서 바다로 갔다. 날씨는 화창했고, 바다는 잔잔했다. 바닷가 전망이 좋은 곳에 그날 저녁에 머물 텐트를 쳤다. 준비해 간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날이 어둡기 전에 낚시를 하기로 했다. 매주 빠짐없이 다녀간 바닷가는 가족 모두에게 익숙하고 충분히 안전했다.
텐트를 친 아래쪽 바닷가에 제법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었다. 아이들은 늘 평평한 바위 위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아빠가 잡은 작은 고기를 담아서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날은 제법 큰 고기가 많이 올라왔다. 아빠는 신이 났다. 엄마도 신이 났다.
"야, 오늘 대박이다."
신이 난 아빠는 아래쪽 바다 가까이로 내려가서 낚싯줄을 던졌고 연신 씨알이 굵은 고기들이 올라왔다. 미끼를 새롭게 갈고 낚싯대를 들어 길게 던지려는 순간에 갑자기 큰 파도가 쳤다. 피할 사이도 없이 몸이 흠뻑 졌었다.
"에이, 완전히 다 젖었네."
온몸에 물이 줄줄 흐르는 엉거주춤한 상태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언제 그런 파도가 있었냐는 듯이 바다는 다시 잔잔해졌다. 그곳은 원래 그렇게 파도가 치는 곳이 아니다. 특히, 오늘같이 화창하고 평온한 날씨에는 절대로 그런 파도가 오지 않는 곳이다.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으며 아내를 올려다보았다.
"속옷까지 젖었어."
돌아서서 짐을 정리하고 있던 아내도 남편의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물에 빠진 생쥐꼴로 낚싯대를 엉거주춤하게 들고 서 있는 남편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들의 반응이 궁금했던 아빠는 웃는 얼굴로 아들이 놀고 있던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에게 소리쳤다.
"00는 어디 있어?"
아내가 소리쳤다.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남편은 들고 있던 낚싯대를 내팽개치고 바위를 두 손으로 기어서 올라갔다.
"00아~ 00아~"
엄마는 울부짖듯이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아빠는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전해 들은 이야기의 전부다. 그리고, 아무도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젊은 부부와 인사를 나눌 뿐, 우리와 어울리기를 권유하지 않았다. 그들이 감당하는 슬픔의 크기를 짐작할 수 없기에 우리가 감히 위로해 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뒷동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우리에게 슬픔은, 또는 우리 인생의 비극은 순차적으로 전조 증상을 보이며 차근차근 다가오는 줄 알았다. 그래서, 미리 감지하고 준비하고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아파트 뒷동 젊은 부부의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우리에게 슬픔은, 또는 우리 인생의 비극은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한 순간에 우리 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게다가, 그 슬픔과 비극이 초래되는 이유가 엄청난 사건이나 사고가 아니고 너무나 허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동시에, 우리가 거역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 앞에서 초래된 슬픔과 비극보다, 우리가 어찌하면 막을 수도 있었을지 모르는 그 허망한 이유가 우리를 더 슬프고 힘들게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화창하고 평온한 그날 그 바닷가에서 단 한 번의 예기치 않은 파도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허망하고 무기력해진다.
그때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이 운명이고 정해져 있다면 그 어린아이에게 너무 가혹하다. 누가 그렇게 잔혹한 운명을 설계하고 부여하였다는 말인가?
그때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불확실하고 불확정적인가? 우리의 삶을 통할하고 운용하는 원리나 규칙은 없다는 말인가?
SF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는 어느 날 지구가 폭파되고 사라져 버린다. 건설 중인 우주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길목에 지구가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함을 비꼬는 작가의 참신한 설정이지만,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물을 필요도 없이 지구 전체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을 상상하고 나는 무력감에 빠졌다.
그래서, 나는 생각보다 이 우주에서 하찮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거창하게 운명이니 삶의 원리를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하찮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지구를 날려야겠다고 결정하는 더 큰 조직이나 더 큰 존재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신경 꺼. 네가 관여할 일은 아니야.'
우리의 인식 범위 밖에 있는 큰 존재들에게 우리는 벌레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개미집을 내려보고 있듯이.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지금 이곳에서' 그냥 살다가 가면 되는데, 그냥 살다 보면 별 것 아닌데, '스스로를 너무 거창한 존재니, 엄청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존재니'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을 닦달하고, '나는 다른 사람하고 달라, 나는 너보다 나아, 내가 제일 잘 났어'하며 타인을 의식하고 비교하며, 겨우 100년 살기를 목표로 하면서 영원히 죽지 않는 불멸의 삶을 살듯이 뻐개고 잘난척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몰려오는 파도를 볼 때마다 두렵다. 예기치 않은 한 번의 파도에도 허망하게 휩쓸려 사라질 하찮은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나의 하찮음을 알고, 스스로를 낮추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며, 이 땅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매 순간을 기쁘게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