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마니아]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벌레 들어오는데 창문은 왜 자꾸 열어 놓고 그래요."
틈만 나면 침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고, 참다 참다 한계를 느낄 때 아내가 뒤통수에 대고 날리는 핀잔이다.
"잠시 열어 놓는데 벌레는 무슨 벌레."
그 순간, 눈치 없는 파리 한 마리가 곡예비행을 하며 날아들어온다.
"에이, 저 놈의 파리."
나는 구름의 이미지를 포착하여 느낌과 인상을 해석하고 새로운 영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취미다. 일부 국가에는 '구름 감상 협회'가 구성되어 같이 구름을 감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방법으로 구름의 변화를 잡아서 영상으로 만들고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다. 그래서, 스스로 세계적으로도 아직 영역이 정의되지 않은 독특한 예술 영역이라고 선언을 하였다.
"나는 최초의 '구름 이야기꾼', '클라우드 스토리텔러(Cloud Storyteller)'라니까."
그까짓 벌레가 들어온다고 귀한 예술 활동을 박해하지 말라는 뜻이다. 창문을 계속 열어 놓을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알아라는 반항이다.
"참, 여러 가지 한다."
입 밖으로 발설하지는 않았지만, 삼십 년 이상을 같이 살다 보면 아내의 마음도 대충 읽는다. 모르는 편이 나은 속마음까지도.
이른 아침, 침대에 누워 잠을 깨지 못하고 억지로 실눈을 뜨고 창 밖을 보니 여러 층의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야, 오늘 구름이 장난이 아닌데."
나는 벌떡 일어나서 잠옷 바람에 맨발로 달려가서 창문을 열고 카메라를 세웠다. 영상 녹화 시간 설정을 하고, 잠옷 바람으로 엉거주춤하게 서서 현란한 구름의 움직임에 넋을 잃고 있었다.
"마음이 심란한 사람들 많겠네."
빠르게 뒤엉키며 날아왔다가 사라지는 구름들을 보면서 대통령 선거 하루 전날의 한국이 생각났다. 초박빙이라는 뉴스를 통해서 전달되듯이 양쪽으로 나뉘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이 번 대선은 네거티브가 심하고 후보자에 대한 호불호가 선택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어 양측이 마음의 상처가 크고 후유증이 심할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다.
직접 투표에 참여하지는 못하였지만, 나도 마음으로 후원하는 후보를 정했다. 후원하는 후보가 당선이 되면 좋겠지만, 다른 후보자가 당선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마음을 정리해 두기로 했다.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가 민주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다수결을 채택하고 있으니.
다수결을 민주주의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다수결은 의사결정의 방법이지 그 자체가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의사결정 방식으로 다수결을 채택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공산주의 국가도 의사 결정에 다수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인민대표들이 참석하는 북한 최고인민회의의 의결과정도 다수결에 따른다. 역사 속의 많은 독재자들도 다수결의 형식을 취했다. 따라서, 다수에 의한 결정이라고 항상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대부분의 국가 체제나 집단에서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는 다수결이 정당하고 옳은가에 대한 논의는 고대 철학자에서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다수결의 허점으로 인해, 다수결에 따른 의사 결정에 기반하고 있는 민주주의마저 합리성에 대해서 의심을 받을 때도 있다. 역사적으로나 우리의 경험을 통해서 다수의 의견이 반드시 소수의 의견보다 현명한 것이 아닌 상황과 사건을 보아왔다.
최근에는 기존 레거시 미디어 외에도 다양한 개인 미디어가 홍보와 소통의 중심으로 부상되어, 개인의 '인기'가 다수의 지지와 호응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인기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옳다거나 좋은 것이 아님에도 다수의 선택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의 이미지를 올릴 수 있는 전략도 중요하고, 동시에, 상대의 인기를 떨어뜨리기 위한 네거티브도 필요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이번 대선이 이러한 성향이 유독 두드러진다. 그래서, 상대에게 많은 상처를 준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후보에 대해서 알아보고 확인하여 결정하였다. 나의 결정은 정확하고 합리적이다. 도대체, 상대 후보를 선택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런 결점을 볼 수 없는지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그런 결점을 보고도 눈을 감을 수 있는지 분노가 치민다. 양쪽이 모두 이런 심리상태일 것이다.
내일이 지나면 선거의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바램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하지만, 내뜻대로 되지 않아도 나는 다수의 선택을 받아들일 것이다. 어떻게 하든지 나의 마음을 추스르고 쓰린 속을 감추며 상대편을 축하할 것이다. 성숙한 민주 국가의 성숙한 시민이니까. 그렇게 하기로 약속하였으니까.
현란하게 명멸하는 구름을 보고 있다가, 문득 흔들림 없이 화면 아래를 받치고 있는 산들을 보았다. 저 멀리 배경으로 있는 광활한 하늘을 보았다.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어 우리나라가 잘 못되면 어떻게 하지?"
나는 걱정을 멈췄다.
"아,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눈앞에서 활개 치는 작은 구름들이구나."
대한민국은 수 만년을 그 자리에 서 있는 산처럼, 태초부터 있어 온 하늘같이 버티고 서 있구나. 왔다가 사라지는 작은 구름들 때문에 산이 가라앉고 하늘이 무너지지는 않겠구나.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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