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뒤뜰로 나오면 담장 아래 언덕 쪽을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무슨 중요한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날부터 레몬 나무 아래에 동네 고양이가 똥을 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명화된 법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를 받기 시작하며 다소 약해지기는 했지만, 나라는 동물도 영역에 대한 확고한 구분과 침범에 대해서 아주 민감하다. 고양이 똥이 나의 동물적 본능을 되살리며 나를 야성의 초록색 헐크로 만들어 버렸다.
"아니, 어떤 놈이 남의 땅에 들어와서 똥을 누는겨. 요절을 낼겨."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옷 바람으로 슬리퍼를 끌고 뒤뜰을 바쁘게 가로질러 갔다.
"오늘도 똥을 누고 갔으면 극단의 조치를 취해야지."
똥의 존재 유무를 알기도 전에, 벌써 상상만으로도 감정의 게이지가 분노의 붉은 선 바로 아래에서 까닥거린다.
"하~ 참, 또 누고 갔네. 또 놓써"
동해안 휴전선 해변 초소의 초병처럼 매일 저녁에 레몬 나무 아래의 흙을 아주 평평하게 펼치는 작업을 한다. 다음 날 아침에 살펴보면 펼친 모래 위에 찍힌 침투의 흔적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똥을 눈 뒤에 흔적을 감추려고 주변의 흙을 긁어서 덮은 고양이 발가락의 흔적이 180도로 길게 펼쳐져 있다. 언덕으로 나가는 문을 열며 고양이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너도 고양이는 고양이다. 흔적을 감춘다고 더 큰 흔적을 내고 있냐. 멍청하기는."
레몬 나무 아래에 꽂아 둔 나무젓가락을 뽑는다. 지뢰 제거 작업을 진행하는 병사처럼 땅 위에 길게 펼쳐진 흔적을 추적한다. 들국화의 잎처럼 펼쳐진 선들이 만나는 꼭짓점이 예상되는 매설 지점이다. 여러 번 사용했던 흔적으로 반쯤은 검은색으로 변한 일회용 식용 젓가락을 눕혀서 똥을 탐색한다. 낚시의 손맛처럼 젓가락을 타고 예민한 입질이 오면 즉시 멈추어야 한다. 똥의 상태에 따라서 폭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위치를 파악했으니 주변의 흙부터 조금씩 제거해 나가야 한다. 최근에 본 이집트 피라미드 유적 발굴 다큐멘터리가 도움이 된다.
"에이 C, 많이도 싸 놨네."
전체의 윤곽을 확인하고 제거 작업을 시작할 때쯤이면, 발굴 성공에 대한 안도와 함께 분노가 폭죽처럼 터진다. 은근히 올라오는 꼬리꼬리 한 똥 냄새를 맡으면 이성을 잃고 눈이 뒤집힌다. 그 때 눈앞에 고양이가 있었다면 괴수로 변한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너 아침부터 거기서 뭐하니?
어쩌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잠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잠옷 바람으로, 슬리퍼를 신고, 뒤뜰로 나가서, 고양이가 와서 또 볼일을 보고 갔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가장 먼저 시작하는 하루 일과가 되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배설의 흔적이 보이면 바로 달려가서 끝끝내 똥덩어리를 발굴하고 제거하는 불쾌한 싸움을 계속하였다. 젖은 똥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제거하는 호모 사피엔스 코리아누스만이 할 수 있는 초정밀 작업을 온 뇌신경을 집중해서 집도하다 보면 그 잔상이 하루 종일 뇌리에 남아 있다. 꼬리 한 냄새라도 맡은 날이면 후각 정보까지 더하여 강한 자극으로 남아서 하루 종일 기분이 나빴다.
어느 날 아침, 잠옷 바람으로 슬리퍼를 신고 쪼그려 앉아서 젓가락으로 똥을 파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너 아침부터 거기서 뭐하니?"
참 한심했다. 고양이 똥에 꽂혀서 무아지경으로 매일 아침 레몬 나무 아래서 똥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레몬을 뿌리고, 커피 찌꺼기를 뿌려도 조금씩 피해 가며 꼭 그곳에서 똥을 누는 고양이와 같이 나도 똥 파내기에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이기나 한번 보자. 경쟁하듯이. 싸우듯이.
그래 마음대로 싸라 싸
이른 아침에 부스스한 머리로 잠옷 바람에 젓가락을 들고 잡초 난 언덕 위에 서있는 나이 든 동양인 아저씨를 내가 본 날은 충격이었다. 참 한심했다. 또 집착하고 집요한 성질머리가 나와버렸다.
그날 오후에, 커피를 한 잔 들고 레몬 나무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침에 만난 잠옷 입은 아저씨에게 질문을 했다.
"똥은 왜 파니?"
"똥이 나무 아래에 있으면 안 되니?"
집 밖 레몬 나무 아래에 똥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나무 아래에 똥이 묻혀 있으면 안 되는 이유도 딱히 없었다. 고양이 똥을 악으로 규정하고, 정의감에 차서 악을 물리치는 사명에 몸과 마음을 다하려다 보니 상황이 그 지경이 된 것뿐이었다. '고양이 똥은 악'이라는 전제를 부정하면, 한마디로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었다.
"그래 마음대로 싸라. 대신에 이곳저곳에 싸지르지 말고 거기에서만 싸라. 짜샤."
마음을 돌려 먹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여전히 뒤뜰로 나오면 고개를 내밀어 레몬 나무 아래를 살피지만 예전처럼 화가 나지는 않는다. 물론, 아직까지 입맛은 다시지만. 성질머리가 어디 가겠는가.
너 나이 몇 살이야?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났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운전자가 나왔다.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그쪽도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서로 말한다. 처음에는 존댓말을 쓰며 논리적으로 논쟁을 이어간다. 상대의 지적에 기분이 상한다.
"아니, 당신이 이 쪽으로..."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이는 운전자가 언성을 높인다.
"당신? 너 나이가 몇 살이야?"
나이가 조금 젊어 보이는 운전자도 언성을 높인다.
"아니, 이 상황에서 나이가 몇 살인지는 왜 따집니까?"
주위 사람들이 말린다.
"젊은것이 버르장머리 없이 당신이 뭐야 당신이."
"나이가 벼슬도 아니고 참 나."
두 명의 운전자는 애초에 왜 내렸는지와 상관없이 서로의 멱살을 잡는다.
세계 평화보다 더 중요한 고양이 똥
주변에 일어나는 불의한 일과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정의롭지 못한 사건들과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 올바른 가치관과 판단력을 가진 교양있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는 수준으로, 표피적으로 평가하고 건성으로 공감하였을 뿐 나는 진심으로 공감하거나 분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몸이 떨릴 정도로 가장 크게 분노한 것은 고양이 똥이었다.
"나의 관심과 사회 참여가 고양이 똥 수준이 된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과, 분노하고 바로 잡아야 할 것들에 대해, 방향을 상실한 채, 본질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