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마니아]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고양이가 똥을 싸기 시작한 후부터 뒤뜰로 나오면 담장 아래 언덕 쪽을 살피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오늘도 목을 내밀고 레몬 나무 아래를 탐색하고 있었다. 풀 숲에서 무언가 움직이더니 개가 한 마리 튀어나왔다.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개를 한 마리 이상 키우고 있다. 동네에 있는 모든 개들과 일일이 통성명을 하지는 않아서 이름은 모르지만, 대충 생김새만 보면 어느 집 개인지는 알 수 있다. 또, 어느 집 개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면, 비상연락망 가동하듯이 돌림노래로 이어가며 동네 개들이 짖기 때문에, 짖는 개소리만 들어도 누구 집 개인지 구별할 수가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어느 집 개가 평소와 달리 자꾸 짖으면, 대부분 고령인 집주인에게 문제가 발생해서 개가 도와달라고 짖는 것은 아닌가 상상하며 귀 기울여 듣곤 한다.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없는 것을 보면, 내가 똑똑한 개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보았나 보다.
문제의 구석진 레몬 나무 아래에서 튀어나온 개는, 동네 개와 관련된 모든 기억을 더듬어도 분명 우리 동네 소속은 아니다. 부엌에서 밀가루 봉지를 터트리는 사고를 치고 미안한 듯이 올려다보는 아기처럼 어쩔 줄 몰라하며 서 있었다. 정체불명의 개에게 다소 위압적인 자세로 정문 초소 헌병처럼 검문을 시작했다.
"야 인마, 너는 누구니? 어디서 왔어?"
포르투갈 동물들에게 한국말로 시비를 거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목격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차피, 피차 정확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으니 어떤 언어인들 무슨 상관이겠는가. 갑자기 녀석이 올려다 보고 낑낑거리면서 꼬리를 마구 흔든다. 무언가 켕기는 것이 있을 때나 무안할 때, 대충 모른척하고 아양을 떨면서 상황을 넘기려고 하는 행동이다.
"흥, 나는 그런 것에 안 넘어가지."
나는 날카롭게 약점을 바로 찔렀다.
"야, 너도 한 똥 하러 온겨?"
한국말을 알아 들었는지 작은 몸이 흔들릴 정도로 심하게 꼬리를 흔든다. 손가락으로 따라오라는 신호를 하며 뒤뜰에서 언덕으로 나가는 철문을 열었다. 녀석은 잘못이 발각되어 교무실로 호출당한 학생처럼 공손하게 따라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처음 보는 나에게 몸을 비비며 아양을 떤다.
"하~ 넉살이 참 좋은 놈일세. 너, 진짜 사교성이 좋다."
인간 사회에서 한 사교성 하는 나도 녀석을 격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제법 긴 시간 동안, 눈치를 살피고 주변을 맴돌며 아양을 떨다가 돌아갔다.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없는 태도로 보아 주인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녀석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 녀석이 젠(Zen)이다. 이름을 어떻게 알았냐고? 우리가 서로 이름을 알 정도는 친해졌다. 뭐, 정확히는 목에 이름표가 있었다.
지난밤에 밤새 개가 짖었다. 간혹 밤에 개가 짖기도 하는데, 무언가 짖어야 할 이유가 생긴 첫 번째 개가 몇 번 짖고, 다른 녀석이 따라서 몇 번 짖고 나면 동네는 다시 칠흑 같은 어둠과 진공상태의 정적으로 복원이 된다. 그런데, 어제저녁은 달랐다.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 짖어댔다. 언덕 쪽에서 좌측으로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마사 할머니네 쪽이다. 그런데, 짖는 소리가 마사 할머니네 개가 아니다. 창을 열어 목을 길게 빼고 소리가 나는 쪽을 살펴보았지만, 언덕 아래는 평소와 같은 어둠과 고요뿐이었다. 이상할 것이 없었다.
"뭐지? 왜 자꾸 짖는 거지?"
창문을 닫고 돌아서는 나에게 눈을 동그랗게 뜬 아내가 물었다. 나는 양손을 펴고, 팔을 반쯤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하는 서양식 몸짓으로 답변했다. 옛날에 한국에 있을 때, 누군가 해외에서 오래 살았다고 손을 펴고 어깨를 으쓱하며 모른다는 표현을 했을 때, 내가 밥맛 없어했던 그 자세 말이다. 하여튼, 잠에 빠져들며 소리를 기억할 수 없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짖었다.
밤 새 짖던 그놈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 집 레몬 나무 아래로 볼일 보러 왔다가 나에게 들켜서 억지 아양을 떨다간 녀석, 젠이었다. 이웃에 탐문해보니, 옆집 할머니 친구가 리스본에서 잠시 방문을 하였고, 젠은 리스본에서 함께 온 것이었다. 대도시 아파트에 살던 도시개가 작은 산촌 마을로 왔고, 간밤에 도시와는 다른 무엇인가를 발견해서 짖었나 보다.
오늘 밤에 또 젠이 짖었다. 모든 문이 튼튼하게 닫혀있어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한 상태임에도, 개가 짖으면 본능적으로 신경이 예민해진다. 젠은 일정한 간격으로 쉬지 않고 짖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짖고 있는 개에게 어르고 달랠 요량으로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젠, 젠, 젠!... 젠장."
나의 목소리 때문에 잠시 조용하더니 다시 짖기 시작했다. 곧 그만 짖겠지 기대하며 참았다. 그런데, 계속 짖었다.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궁금해졌다.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지면 산으로 둘러싸인 뒤뜰 쪽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너무 깜깜해서 절대로 나가는 법이 없다. 그래도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집 뒤뜰을 지나서 왼쪽 끝으로 가면 옆 집과 담을 공유하고 있다. 위쪽으로는 높아서 볼 수 없지만, 언덕 쪽으로 몸을 길게 빼면 언덕 쪽으로 향하고 있는 옆 집 안을 살펴볼 수가 있다. 휴대폰으로 비춰보았다. 젠이 담 쪽에 붙어 있지 않아서 보이지 않았다. 언덕 아래쪽으로도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서서 몇 걸음을 내딛는 순간 젠이 다시 짖었다. 또, 조금 있다가 짖었다. 나는 얼음 땡 자세가 되어서 귀를 기울이고 서 있었다.
가만히 들어보니 젠이 짖는 소리에 패턴이 있었다. 연속으로 마구 짖는 것이 아니고, 두 번 짖고, 잠시 있다가 두 번 짖었다. 언덕 쪽으로 몸을 기울이자 젠이 짖는 소리 사이에 다른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 언덕과 계곡 사이에서 짖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쪽에는 집이 없다. 당연히 개도 없다. 뭐지? 젠이 짖었다. 다시, 다른 개가 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나는 웃고 말았다.
"멍청한 놈"
뒷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나에게 아내는 물었다.
"왜 자꾸 짖는대요?"
나는 어이가 없는 듯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멍청한 놈이 자기 짖는 소리에 놀라서 짖는 거야."
젠이 짖고 나면, 반대편에서 구슬프게 길게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다소 늘어지는 듯한 소리였지만, 분명히 젠이 짖는 소리였다. 보통 개가 내는 짧은 음절이 아니라 길게 이어지며 웅웅 거리는 괴기스러운 소리였다. 소음이라고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산 중턱에서, 좁은 계곡 쪽으로 멍멍 짖는 소리가 이쪽저쪽으로 부딪히며 왜곡되고, 조금 떨어진 반대편에서 반사되어 되돌아오고 있었다. 도시개 젠의 귀에는 자신과 유사한 개가 반대편에서 자신과 동일한 메시지로 자꾸 짖어대는 것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긴장되고 겁이 나서 계속 짖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밤 잠을 설치곤 한다. 다음날 당장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앞일에 대한 걱정이다.
"만약에 그렇게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처음에 이런 질문들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향해서 짖기 시작한다.
"아, 그러면 큰 일인데."
이때가 되면 마음이 불편해서 뒤척이며 돌아 눕는다. 다음으로, 만약에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에 발생할지도 모르는 큰일이 일어난 상황을 상상하면서 더 격정적으로 더 큰 소리로 마음속에서 짖기 시작한다. 잠이 확 깬다. 내 몸에서 열이 확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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