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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Mar 05. 2022

나를 살리는 제2의 기억

[Cloud Mania]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스토리가 있는 구름 감상] 나를 살리는 제2의 기억

https://youtu.be/Es0Rzap6T_w

구름 영상 제목: 기억의 추적, 촬영 장소: 포르투갈 알가브, 촬영 장비: 삼성 갤럭시 S9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


아버지와 다섯 살짜리 아들이 같이 대중목욕탕에 갔다. 먼저 탕 안에 들어가 목만 내밀고 있는 아버지에게 어린 아들이 물었다. "아빠 물이 안 뜨거워요?" 탕에 들어오는 것으로 매번 아들과 씨름을 해 온 아버지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하나도 안 뜨거워." 탕에 들어와서 앉으려다 화들짝 놀라서 뛰어 나가며 다섯 살짜리 아들이 한 마디 했다.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


두 번째 뇌


잊어버리는 빈도가 높아지고 나의 기억에 빈틈이 생기자, 세상에 믿을 사람 아무도 없다는 타인과의 경험에 덧붙여 나 자신까지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정말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믿을 수 없는 나를 위한 대안이 필요하였는데, 그것은 기록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스스로 기억할 수 없다면, 나의 기억을 보조할 수 있도록 기록하고 필요할 때 찾아볼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나의 생존 전략이었다.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단편 정보를 기록하는 나의 뇌 기능의 일부를 나의 몸 밖에다 두는 것이다. 마치 저장 용량이 적은 컴퓨터의 자료 저장을 보조하기 위해서 외장형 하드 디스크나 쉽게 이동할 수는 USB 메모리 스틱에 저장하는 것처럼 두 번째 기억 장치를 만드는 것이다. 내가 저장된 위치만 최소한 기억할 수만 있다면, 나의 뇌에서 기억하고 끄집어내는 것보다는 시간의 지연은 있을 수 있지만, 엉터리로 기억하는 실수나 기억 상실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는 결론이었다.


적자 생존


매년 연말이면 다이어리나 플래너를 구입하여 기억해야 할 정보나 보존 가치가 있는 자료를 모두 적었다. 연간 플래너 수첩을 항상 분신처럼 들고 다녔다. 적자 생존, 적는 자만이 생존할 수 있다며 빠짐없이 적었다. 연말이나 새해가 되면 이전 다이어리에 있었던 기록 중에서 연속성이 있는 정보를 옮겨 적었다. 일 년을 정리하고 중요 정보를 다시 기록하며 기억을 새롭게 하는 의미 있는 과정이기는 하였지만 바쁠 때는 옮겨 적지를 못해서 1-2월까지 두 권의 수첩을 들고 다닌 적도 있었다. 그런데, 생활에 혁신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스마트폰과 언제나 접근 가능한 클라우드 시스템을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연간 플래너 수첩을 구입하고 중요 사항들을 옮겨 적는 연중행사는 더 이상 거행하지 않아도 되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는 드라마나 문학 작품 속에서 갑툭튀 하여 작품 중의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캐릭터나 연출 요소 등을 일컫는 라틴어원의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말 그대로 'god from the machine',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 즉, '정점에 있는 기술'이란 의미로 차용하여 사용하기를 즐겨한다. 옛날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기가 막히는 신급 테크놀로지 말이다. 그것이 '스마트폰+인터넷'이었다. 노쇠하고 죽어가던 나의 기억력과 지적 능력을 부활시키고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 개념과 기술들이다. 그렇게 나는 부활할 수 있었다.


나를 살리는 제2의 기억


아래 그림이 현재 내가 개인적인 자료를 생성하고 저장하는 방식이다. 만들어지는 모든 자료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백업 및 동기화(sync)가 이루어지며, 노트북 컴퓨터와 스마트 폰에서 그리고 인터넷이 연결된 기기만 있으면 모든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다. 기억나지 않으면 스마트 폰과 노트북 중 하나만 있으면 바로 기억해 낼 수 있고, 늘 둘 중에 하나는 가까이에 있지만, 둘 다 없을 경우에는 인터넷에 접속만 가능하다면 기억해 낼 수가 있겠다.



구글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Google never forgets.


윈도우 컴퓨터와 안드로이드 기반의 스마트폰을 사용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은 구글 서비스로 통합하고 있다. 이메일은 지메일(Gmail)로 통합하여 관리한다. 구글 주소록(Google Contacts)을 사용하여 개인 연락처를 정리하여 스마트폰과 컴퓨터에서 추가 및 삭제하고 있다. 구글 달력(Google Calendar)을 이용하여 일정을 기록하고 알림 기능을 통해서 일상생활을 기억하고 처리한다. 해야 할 일들이나 진척 사항에 대해 확인해야 할 것들은 Google Keep과 Google Tasks를 이용하여 잊지 않고 처리하고 있다. 일반적인 문서 작성이나 수치 자료의 생산 현재까지 주로 MS 오피스 패키지를 이용하고 있으나 Google Docs의 사용도 병행하고 있다. 비정형의 개인 정보와 집필 자료들은 에버노트(Evernote)를 사용하여 정리하고 관리한다. 특별히 건강과 관련된 자료는 블루투스 체중계의 건강 분석 자료를 스마트폰으로 자동으로 전송받고, 걷기 등의 운동 정보는 삼성 헬스와 구글 Fit 등으로 통합되어 확인하고 있다. 모든 자료는 클라우드 서비스인 구글 원(Google One)을 이용하여 어느 한쪽 자료가 분실되거나 파손되어도 걱정이 없도록 안전하게 분산 저장하고 있다. 아이패드를 같이 사용하는데, 보조 장치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자료 통합 기능을 유지하고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엄청나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시골에 사는 꼰대 아재에게 딱 필요한 최소 수준만큼 활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효율적인 방식이 있으면 조언해 주시기 바란다.)


당신은 은하철도 999를 탈것인가?


인간의 학명을 기능적으로 분류하여 호모 비블로스(Homo biblos, 기록하는 인간)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나빠지는 기억력을 보존하고자 나는 기꺼이 기록하는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날로그로 기록된 자료들은 아쉽게도 창의적으로 재활용하는데 제한적이었다. 이름 없는 개인의 사생활이 역사적 자료의 가치를 가지기 만무해서 책꽂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두꺼운 종이 더미에 불과했다. 계속 보존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버리기는 서운해서 결정을 미룬 채 방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새로운 기록의 패러다임은 달랐다. 이제 기록은 단순한 보존을 넘어서서 생성의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터미네이터에서 매트릭스, AI에 이르기까지 기계와 기술이 인간을 속박하는 디스토피아적 관점이 존재하지만, 나는 기술과 과학의 진보에 긍정적이다. 기술과 과학의 진보를 통해서 우리 인간의 정신과 삶이 더 높이 고양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기꺼이 나는 은하철도 999를 탈 것이다. 같이 가시죠? 옆 자리 비었는데.




https://www.youtube.com/channel/UCETF0QpWUjGuNrTQWtosxx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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