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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재 May 26. 2024

포르투갈에서 한국처럼 커피 마시기

여행이라는 것은 말이야


여행이란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지역 새로운 나라로 떠나는 일을 말한다. 그래서, 여행자는 새로운 지역과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딱 여기까지.


파리의 맥도널드


가난한 유학생 시절에 큰맘 먹고 가족 여행을 간 곳이 프랑스 파리였다. 꼼꼼한 기획과 계획으로 동선을 체크하고 파리의 주요 관광지로 이동이 쉬운 적당한 가격의 호텔을 예약하여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이 보였다.


딱 여기까지.


어린 아이들과 아내는 나만 쳐다보고 따라다녔다. 알아도 모른 척하는지 나의 영어는 외면을 당했고, 교양 불어 수준의 나의 불어로는 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때는 스마트폰도 없었고 구글맵도 없었다. 종이 지도와 버스 노선표만 들고 파리를 헤매었다. 찾는 곳이 모두 유명 관광지였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문제는 먹는 것과 화장실이 문제였다.


빠듯한 예산에 무턱대고 번듯해 보이는 레스또랑에 들어가기가 겁이 났고, 그렇다고 마냥 길거리에 서서 크레뻬만 먹을 수는 없었다. 때때로 아이들은 화장실이 급하다고 재촉했다. 화려한 샹젤리제 거리에서 화장실을 찾느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녔다.


맥도널드.


낯선 타향에서 고향 사람을 만난 듯이 반가웠다. 어떤 음식이 나올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익숙한 메뉴와 예상 가능한 가격과 화장실이 있었다.


예상하지 않는 상황을 만나는 것이 여행의 묘미겠지만, 하루종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면 여행이 스트레스가 된다. 맥도널드를 누가 정크 푸드라고 말했던가? 파리 여행 내내 맥도널드는 우리의 안식처였고, 휴식처였고, 최고의 레스또랑이었다. "저기 맥도널드에 가서 쉴까? 화장실도 가고." "점심은 맥도널드에서 먹을까?" "마음껏 먹어."


한국 같으면


"한국 같으면", "한국에서는". 내가 딱 듣기 싫어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외국에 나온 한국 사람들이 현지 상황에 불만을 터트리며 시작하는 첫마디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에요."라고 톡 쏘아주고 싶은 감정을 일으키는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여기가 한국이 아님에도 한국에서 마셔 온 방식과 유사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내가 파리에서 만났던 맥도널드처럼 편안하고 익숙하게.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음식이나 다양한 맛의 커피는 다른 작가들의 소개글을 통해서 살펴보기 바란다.


한국 같지 않네


커피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제일 애호하는 음료수다. 커피에 대한 애착은 이탈리아 사람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는 뜻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익숙한 통상적인 커피 메뉴가 아닌 독자적인 메뉴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커피가 서양에서 들어온 음료수니 한국식 영어 메뉴로 말해도 다 알아듣겠지라는 기대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동네마다 있는 작은 카페에서는. 뭐 우여곡절 끝에 결국은 커피를 주문해서 받아 오겠지만 무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아쉬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미지 출처: coffeebi.com


딱 세가지만


한국에서 스타벅스 같은 곳에 가서 주문을 하듯이 무엇에 무엇을 더해서 무엇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물론, 대도시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스타벅스나 글로벌 프랜차이즈에 가서는 자신의 기호를 마음껏 뽐내면 되겠다. 포르투갈 도시나 시골에 있는 포르투갈식 카페에서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주문 방식 딱 세가지만 살펴보자.


포르투갈만의 고유한 커피 문화가 오래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포르투갈만의 독특한 커피 메뉴가 있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있으면 이것 저것 시키고 다양하게 시도해 보기 바란다. 때로는 뭐지? 때로는 이게 아닌데? 경험하면서. 나도 다양하게 시도를 해 보았지만, 결국에는 마시는 커피 메뉴는 몇가지로 한정되었다. 내가 파리에서 만난 맥도날드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메뉴를 찾게 되었다. 힘든 여행 일정 중에 (복잡하고 새로운 것 말고) 편하게 한국에서 마시던 것과 비슷한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메뉴를 정리해 본다.


1. 에스프레소(Expresso)


포르투갈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커피 한 잔(um café)"이라고 하면 에스프레소(Espresso)를 뜻한다. 손에 잡히지도 않을 정도의 작은 잔에 한번 탁 털어 넣을 정도의 양을 담아서 준다. 예상한 것 보다 훨씬 작다. 그래서, 주문해서 선채로 탁 입에 털어 넣고 사라지는 사람들도 많다.



한국어: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포르투갈어:  Um expresso, por favor. (웅 에스쁘레소 뽀르 파보르)

영어: One espresso, please.


"Café Normal(카페 노르말)?"이라고 되물을 수도 있는데, "보통 커피?"라고 되묻는 것이니, 당황하지 말고, "Sim por favor(싱 뽀르 파보르)"나 "Yes, please(예스 플리즈)"로 답하면 된다. '예스'는 어디서나 그 느낌 아니까. Expresso의 포르투갈 발음이 우리나라 사람 귀에는 [쉬쁘레소] [이스쁘레소] 같이 들리기는 하지만 계속 '에스쁘레소'라고 우기면 되겠다. 리스본에서는 Bica(비카), 포르투에서는 Cimbalino(씸발리노)라고 부르기도 한다지만 "에스쁘레소"라고 해도 다 알아 듣는다. 한국에서 부추를 경상도에서는 정구지, 남도에서는 소풀이라고 부르지만 부추라는 표준말로 통용이 되듯이.


손가락으로 잡히지 않는 작은 잔에 반쯤 찬 커피를 보고 "애개 양이 이게 뭐야?"라고 느끼실 분은 '더블 에스프레소'를 주문하면 된다.


한국어: 더블 에스프레소 한 잔 주세요.

포르투갈어:  Um café duplo, por favor. (웅 카페 두플로, 뽀르 파보르)

영어: One double espresso, please.


2. 아바타나도 (Abatanado)


대부분 포르투갈 버전의 아메리카노라고 설명을 하고 있지만, 경험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상하는 '그' 아메리카노는 아니다. 일단, 특히 남부지방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직원이 당황하는 눈빚을 보일 수가 있다. 아메리카노가 메뉴에 없을 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메리카노를 한번도 마셔본 적이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야 서양 문명이 미국을 통해서 들어와서 미국식 커피가 표준이 되고 '얼죽아'가 유행하게 되었지만, 아메리카대륙은 자기 조상들이 한창 잘 나갈 때 우연히 발견한 땅일 뿐이다. 아메리카노에 대해서 이탈리아 사람들처럼 분노하지는 않지만 듣보잡 메뉴일 뿐이다.


그리고 아바타나도라고 해도 커피잔의 크기가 우리가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작다. 보통 우리나라 가정용 커피잔 세트의 크기로 보면 된다.



한국어: 아바타나도 한 잔 주세요.

포르투갈어:  Um abatanado, por favor. (웅 아바타나도 뽀르 퐈보르)
영어: One abatanado, please.


(단어의 마지막에 오는 'O'를 '우'로 발음한다고, '아바타나두'라고 신경을 바짝 쓰고 힘주어 말하다 보면 장음 '두~'라고 발음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실제로 단음으로 짧게 발음하면 '도'나 '두'나 비슷하다. 외국인답게 보이는대로 '아바타나도'라고 편하게 하면 된다.) 


가득차게 채워서


아바타나도를 주문하면 사진과 같이 2/3 수준으로 채워서 주는데, 잔에 찰랑찰랑 채워서 주라고 요구할 수 있다. '가득차게'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 'cheio(쉐이유)'를 덧붙이면 된다.


한국어: 아바타나도 가득차게 한 잔 주세요.

포르투갈어:  Um abatanado cheio, por favor. (웅 아바타나도 쉐이유, 뽀르 퐈보르)


그러나, 가득채워준다고 해서 한국의 아메리카노처럼 커피가 묽어지는 것은 아니다. 에스프레소 추출 방식에서 잔을 그대로 두고 더 많은 물을 내려서 잔을 채우기 때문이다. 커피 양은 많아지지만 여전히 맛은 쓰고 진할 수 있다.


한국 같이


한국식 연한 아메리카노 맛에 길들여진 아내는 제일 비슷하다는 '아바타나도 쉐이유'로도 도저히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해 보았는데 쉽지는 않았다.


방법1. 보통의 아바타나도를 시킨 뒤에 잔의 남은 부분에 뜨거운 물로 채워 달라고 부탁한다.


한국어: 뜨거운 물 부탁해요. (잔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포르투갈어:  água quente por favor. (아구아 꿴트, 뽀르 퐈보르)

영어: Hot water, please.


문제점: 포르투갈 카페 에스프레소 기계에서 뜨거운 물을 채우는 방법은 쉽지 않다. 뜨거운 물이 수증기와 함께 나오기 때문에 작은 커피잔을 들고 남은 공간에 채우기란 위험하고 쉽지 않다. 어쩔줄 몰라하는 직원을 보면 미안하다.


방법2. 차라리 뜨거운 물 한잔을 부탁해서 알아서 섞어서 마신다.


한국어: 뜨거운 물 한 잔 부탁해요.

포르투갈어:  Um copo de água quente, por favor. (웅 꼬뿌 드 아구아 꿴트, 뽀르 퐈보르)

영어: A cup of hot water, please.


얼죽아


예상하듯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메뉴에 없다(글로벌 프랜차이즈에는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면 양쪽이 멘붕에 빠질 수 있는데, 첫째로 아메리카노도 메뉴에 없는데 아이스까지 붙은 주문을 받은 직원이 어떻게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할 것이고(직원이 난감한 이유: 계산대 POS기기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메뉴가 없어서 주문과 계산 처리가 안된다.ㅎㅎ), 둘째로 어떻게 소통은 해서 주문에 성공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온 것은 커피 한 잔에 얼음 한 컵이 나란히 나오면 받아든 사람도 당황할 것이다.(현명한 직원의 선택: POS기기에서 일반 커피를 선택하여 계산하고, 얼음은 공짜로 준다.) 어이없어 하지말고 대부분 얼음 값을 따로 받지 않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좋겠다. 혹시 얼음이 없다고 답을 해도 실망하지 마시라.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메뉴에도 없을 뿐더러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대한 개념이 없을 수도 있다. 물론, 담아낼 컵도 마땅한 것이 없다.



3. 갈라옹(Galão)


찐한 커피가 부담스러워서 조금 연하게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우유를 섞는 방법이다. 가장 대표적인 메뉴가 '갈라옹'이다. 포르투갈식 밀크 커피도 다양하게 있는데, 우유에 커피를 추가하는 방식, 커피에 우유를 추가하는 방식, 거품낸 우유에 커피를 넣는 방식, 커피에 따뜻한 우유를 넣는 방식, 커피 반 우유 반을 넣는 방식 등 다양한 방식이 별도의 메뉴로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라떼(Caffè latte)와 가장 유사한 것이 '갈라옹'이다. 커피 1/4에 거품낸 우유 3/4의 비율이다. 우유가 든 커피라고 해도 다른 메뉴들은 에스프레소잔이나 보통의 커피잔에 우유를 넣는 것이라면, 갈라옹은 제일 큰 별도의 유리잔을 사용한다. 크다고 해도 다른 커피잔에 비해서 크다는 것이지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길고 큰 잔은 아니다.



갈라옹에 간혹 긴 티스푼을 친절하게 잔에 꽂아서 준다고 해도 놀라지 말자. 그렇게 서빙하는 카페도 있다. 작은 받침에 손잡이도 없는 긴 잔을 들고 잘 올려지지도 않는 긴 티스푼을 떨어뜨리지 않고 들고 가기란 쉽지 않다. 차라리 잔에 꽂혀있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편할 수도 있다.

 


참 편한 나라 포르투갈


갈라옹을 주문해서 마실 때면 이해하기가 참 어려운 상황이 있다. 잔은 엄청나게 뜨거운데 유리잔에 손잡이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 손잡이가 있는 잔을 사용하는 곳이 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동네 카페에는 여전히 손잡이가 없는 유리잔에 뜨거운 갈라옹을 담아서 준다. 빨리 마시고는 싶은데 잔은 뜨겁고 해서 한 손으로는 가장 온도가 낮아 보이는 위쪽을 살짝 잡고 잔받침을 들어서 마시곤 한다. 참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어느 날 포르투갈 친구에게 물었다. "야, 갈라옹은 원래부터 손잡이가 없었어?" 친구가 무심히 대답했다. "응." 답답한 듯이 따진다. "뜨거운데 어떻게 마셔? 손잡이가 있으면 좋잖아."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는 듯이 포르투갈 친구가 말한다. "그러게."   


"'한국 같았으면' 벌써 싹 갈아 치웠을 것 같은데... 그래서 포르투갈이 발전이 없는거야." 한국식 판단이다.


"뭐 없으면 없는대로 문제가 있어? 너도 지금까지 잘 마셨잖아? 손잡이가 있어야 한다고 뭐 그리 야단이냐. 있는대로 그냥 편하게 살어." 이것이 포르투갈이다. 기준을 정하지 않고 살면 참 편한 나라가 포르투갈이다.


손잡이도 없는 뜨거운 유리잔에 담긴 부드러운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이렇게 주문하면 된다.


한국어: 갈라옹 한 잔 주세요.

포르투갈어:  Um galão, por favor. (웅 갈라옹, 뽀르 퐈보르)

영어: One galão, please.


카푸치노(Cappuccino)


원래는 포르투갈 커피에는 없는 메뉴지만 카푸치노 메뉴를 제공하는 커피 전문점이 최근에 늘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동네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주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어 숫자


딱 한 잔만 시키면 위에서 든 예문을 사용하면 되지만, 동행이 있다면 2-3잔 시켜야 할 것 같아서 3까지만 정리했다.


1: um [웅]

2: dois [도이스]

3: três [트레스]

and: e [이]


한국어: 아바타나도 두 잔하고 갈라옹 세 잔 주세요.

포르투갈어:  Dois abatanado e três Galão, por favor

                 (도이스 아바타나도 이 트레스 갈라옹, 뽀르 퐈보르)

영어: Two abatanado and three Galão, please.


이 정도면 포르투갈 어느 카페에서나 편안하게 커피 한 잔은 마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적한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이며 포르투갈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 인생은 별거 없다.


착한 커피 가격


게다가, 커피가 국민 음료인 포르투갈에서는 참으로 가격이 착하다. 동네마다 도시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동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가 60센트(890원), 아바타나도가 80센트(1180원), 갈라옹(Galão)이 1.2유로(1770원)이다.


슈퍼마켓 카페에서는 커피 한 잔과 포르투갈 에그타르트(PASTEIS DE NATA) 하나가 1유로면 충분하다. 물론, 스타벅스와 같은 글로벌 프랜차이즈를 찾는다면 비슷한 커피에 3-4배의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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